거기 사람 살아요
* 사건의 대한 모든 내용은 실제 사건들을 기반으로 각색되었으며, 피해자의 이름은 연합뉴스의 22년 9월 11일 기사 "[10년전N] 60년 통틀어 남자·여자 가장 인기있던 이름은?"에서 무작위로 따왔음을 알립니다.
흔히 모텔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어떤 게 있을까? 얼마 전 드라마 '굿 파트너'를 보던 중에 나온 모텔은 드라마의 주제를 반영하듯 불륜의 장소였다. 그리고 내가 일하면서 가장 모텔을 많이 접하는 건 성범죄 사건의 발생 장소.
모텔을 생각했을 때 긍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밝음보다는 어두움에 가까운 곳. 이런 모텔이 집이었던 아이가 있었다.
새벽 3시쯤 오래된 모텔에서 불이 났다. 나무가 많이 쓰였고 오래된 모텔 건물은 스프링클러가 없었고 건조주의보가 한창이던 가을의 날씨는 불이 번지기 딱 좋았다. 장기투숙객이 있던 1층에서 시작된 불은 위로 타고 올라 3층 건물을 전소시켰다. 3명이 죽고 10명이 다쳤다.
지은이는 그 모텔이 집이었던 아이였다. 지은이는 모텔 주인의 딸이었다. 나이가 많은 모텔 주인 부부가 얻은 늦둥이 외동딸인 아이는 모텔이 공부방이었고 엄마아빠의 일터였으며 집이었다. 남들은 몰래몰래 드나드는 곳이었지만 하나뿐인 공간이었던 그곳이 하룻밤새에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엄마아빠가 동시에 실직을 했고 지은이의 교복도 교과서도 가방도 모두 타버렸다.
다른 것보다 아이를 구하는 게 너무 중요한 문제가 되어버렸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학교에 가야 하고 학원에 가야 하고 친구를 만나야 하니까. 건물을 다 태운 불길이 아이의 일상을 더 건드리지 않게 해야 했다.
하지만 아이가 첫 번째일 수는 없었다. 그 불로 인해 다친 사람들, 사망한 사람들의 가족들이 있었다. 그때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통해서 생계비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게 좋았다. 해당 지원제도는 범죄피해를 입은 가정의 아동을 위해서 지원금이 나가게 되고, 용처를 후에 확인하게 되어있다. 지원서를 쓰면서 환경조사를 해야 하는데, 그중에 지은이의 장래희망을 물을 때 제법 뭉클했던 기억이 있다.
지은아. 장래희망이 뭐야?
간호사요.
간호사요. 하고 배시시 웃는 모습에 그렇게 안도감이 들 수가 없었다. 그때 그 불이 아이를 집어삼키지 않은 것 같아서. 그냥 그 또래 애 같은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그냥 몰라요, 모르겠어요, 없어요, 아니고.
그래서 오히려 그 뒤에는 어른들을 위한 일을 할 수 있었던 거 같다. 현장정리제도를 통해서 다 타버린 모텔의 폐기물을 치워주고, 다친 사람들의 의료비를 처리하고.
당시 투숙객 대부분이 일 때문에 잠깐 거기 숙박하는 아빠들이었다. 일하는 가장이 다친 상황이 되니까 그 가정의 생계를 위해서 그분들이 사는 지자체에 긴급 생계 지원 대상들에게 검토해 달라고 요청하고, 아이가 있는 집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지원을 요청하고.
이것저것 지원하는 와중에 몇 달의 시간이 정신없이 흘렀을 때 방화범이 징역 30년의 형을 받았다는 언론보도를 보았다.
30년 뒤에 지은이는 어떤 간호사가 되어있을까. 아니 간호사가 되어있지 않아도 괜찮을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