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소비자에서, 피해자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이유로 끔찍한 피해자가 되어버렸고 그렇게 버려졌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11년 8월 31일.

질병관리본부에서 원인미상폐손상의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하면서,

대한민국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망자와 피해자를 발생시킨 예가 없을 정도로 참담한 재난의 역사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부끄러운 세계 최초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2011년 8월 31일 세상에 드러났지만 훨씬 그 이전인 1994년 국내에서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의 광고를 통해 대한민국에 첫 지옥문을 연 SK케미칼이 존재했다.

SK케미칼은 1994년 11월 '가습기메이트'라는 가습기 살균제를 대한민국에 제품으로 출시하면서 주목을 받으며 인체에 무해하며, 면역력이 약한 어린아이, 노약자, 호흡기가 약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사용하면 건강에 더욱 도움이 되는 것처럼 광고하고 소비자를 유혹했다.


그러한 제품에 대해서 옥시나 애경 등은 뒤쳐질세라 비슷한 제품을 안전성 검증 없이 제품화시켰다.

그렇게 1990년대에 SK케미칼에 이어 뛰어든 기업들은 분명히, 판매 후 고객들의 클레임으로 제품의 안전성 문제를 인지했음에도 그 순간에도 기업들 모두가 눈감았고 귀를 닫고 제품 판매에만 열중했다.

그렇게 2011년까지 어느 기업 하나 안전성 검증을 하지 않은 채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팔아왔고 그 긴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건강상 피해를 입거나 사망에 이르렀더라도 그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일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게 이유도 모른 채 억울하게 죽어갔고 건강을 빼앗긴 피해자들은 이들의 책임에 대해 묻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그 고통을 혼자서 감당해 온 것이다.


이것이 비단 기업들만의 잘못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미상폐손상의 원인이라고 발표하던 2011년 8월 31일 직전인 2011년 8월 29일까지도 정부 부처에서는 가습기 살균제를 허가해주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확인된다.

질병관리본부에서는 8월 31일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하며 원인미상폐손상의 원인으로 확인이 되었다며 대국민 발표를 하면서 다른 부처인 기술표준원에서는 새롭게 가습기 살균제를 허가해주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대한민국 정부의 부처 간 협조 시스템이 얼마나 엉터리로 움직이고 있는지, 중대한 사안에 대한 공유가 전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는 8월 31일 발표 몇 달 전부터 관련 기업들을 불러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해 공유해 주며 정보를 준 것으로 확인이 되기도 했다.

솔직히, 이러한 정보를 사전에 공유해 주는 목적이 소비자들의 피해를 예측하고 그 피해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것에 목적이 있었다면 충분히 그러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가 사전에 기업들에게 이러한 정보를 알려준 것이 실제로는 피해자 발생에 대한 대책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되려 기업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소비자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모두가 부정하고 대책조차 마련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질병관리본부가 그러한 정보를 안겨준 것이 기업들에게는 관련 중요 증거 자료들을 미리 폐기하거나 조작하도록 기회를 준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것이 소비자들의 피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자 하는 자리였다고 한다면 기업들이 2011년 발표 후 수년이 지난 2016년 검찰의 수사로 기업들이 안전성에 대한 검증을 하지 않고 더 나아가 고의적으로 위해성을 여러 가지 계기들로 인지했음에도 숨겨왔고 보고서까지 조작하는 등 심각한 위법성이 드러나면서 등 떠밀리듯 정부가 인정한 소수의 피해자들에 한해 사과를 하며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를 본다면 질병관리본부가 마련해준 그러한 자리가 결코 소비자들의 피해 대책 마련에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패와 유착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오랫동안 사실이 감춰지고 왜곡되어 올 수 있었던 것은 정부와 기업의 유착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겪어온 수많은 피해로 인한 고통 외에 정부와 기업들 간의 부패가 더욱 고통스럽게 여겨지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원인과 이유이기도 하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6천 여명에 이르고 사망자는 1천4백여 명에 이른다.

이것은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다루는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빙산의 일각이라고도 표현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들이 단순히 몇 명에 이른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여겨지는 것도,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지고 있는 피해라는 사실과 판매기간이 상당히 길었다는 점, 그렇다 보니 피해자들의 구매를 입증할 영수증 확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점, 의료기록이 결국은 이 피해에 대한 마지막 남은 증거자료가 되는데 이 의료기록 역시 병원 보관 기간이 5년에 불과하고 건강보험공단에서도 간단한 의료급여기록 정도의 10년 치 자료만 개인이 확인할 수 있다는 어려운 상황들 때문에 분명히 썼고 피해가 의심되지만 이러한 증거들이 시간이 너무 경과함에 따라 억울하게도 입증이 어려운 문제로 피해자 신고를 단념하는 피해자들이 상당하게 많다.


나 역시 SNS를 통해 접하는 피해 신고에 이르지 못한 피해자들을 많이 접해왔다.

하나같이 피해는 의심되지만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서 단념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정부와 기업이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을까?

절대 아니다.

정부와 기업들은 피해자들이 오랫동안 다양한 문제들을 호소하고 개선을 요구해 왔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도 당연히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이에 대해서 어떠한 구체적, 현실적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법에 막혀 하지 못한다는 핑계만 댈 뿐이다.






그들만을 위한 법


법이란 누구를 위해 만들어져야 하고 만들어진 것인가?

국민을 위해 만들어야 하고 만들어진 것이라고 믿고 있고 그렇게 살고 있다.

하지만 내 경험 상 법이란 것은 국민들 편의에 맞게 국민들의 억울함이나 누구나 공평한 기회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란 것을 절감하고 있다.

법과 제도는 공무원들 편의에 맞춰져 만들어진 법이다.

공무원들이 불편한 것은 만들지 않는다.

국민들이 불편한 것을 개선해 달라는 법은 절대 반영되기 어렵다.

그렇다고 공무원들이 국민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또 모르는 것도 아니다. 너무나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하지 않는다.

책임을 더 지도록 하는 법은 공무원들이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 않는 그들(정부, 기업)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 재난의 피해가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해결되지 못하고 책임조차 제대로 묻지 못한 채 이어진 이유고 원인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우리가 국민이 맞느냐,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이 맞느냐, 우리도 국민이다. 우리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민 가고 싶다. 우리는 국민이 아니다.', '우리가 개, 돼지냐, 왜 피해자들에게 등급을 매겨 짐승들이나 받는 등급으로 같은 취급을 하느냐.', '짐승들도 죽이면 벌을 처벌을 받는데, 우리 피해자들 피해에 대해서는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우리가 짐승보다 못한 것이냐.' 등등

한 맺힌 원망만 가득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라는 이름이 붙고 난 이후의 대한민국은 그 이전과 너무 달랐던 것이 사실이다.

질병관리본부에서 환경부로 이어지고 또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 국회의원 등 관련된 많은 부처와 정치인들을 만나면서 피해자들의 삶은 완전히 전혀 다른 삶 속으로 던져졌다.

그동안 내가 알던, 믿고 있던 그 나라가 아니더라는 말을 피해자들이 많이 내뱉었다.

그렇게 일반 시민들이었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고 가족단위의 피해자들이었다.

그저 우리가 원한 것은 정상적인 가해자들의 처벌과 책임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단순한 논리였던 가해자와 피해자가 각각 갖는 의미와 이들이 갖는 책임들이 전혀 적용되지 못했다. 아니, 그렇게 안됐다.




우리의 단순한 이 논리는 여전히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피해자 다움만 강요할 뿐 가해자들에게는 가해자 다움 조차 강요하지 않는다.

그렇게 여전히 우리는 또 싸우고, 싸우고...

오늘도 그 싸움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