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을 생각한다면 살아있음에 감사해야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가습기 살균제로 죽어간 이들에게 엄청난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며 우리가 그러한 탓에 화학물질의 심각한 위험성을 확실히 인지하게 되었으며
그 이후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우리 가족을 조금은 더 지혜롭게 지켜내는데 도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습기 살균제로 사망한 피해자가 몇십 명에서 현재는 천명을 넘어서 1,431명에 이른다.
이 사망자 수치는 대한민국 역사상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우리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잃었으면서도 이들의 귀한 목숨을 대가로 이 사회에서 무엇을 만들어냈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이 사회에서 이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기억하고 두 번 다시 이러한 피해를 만들지 않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말이다.
최소한 정부는 이 피해자들의 목숨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아직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목숨을 죄여 오는 고통은 현재 진행 중이고 하루하루를 목숨을 지켜내기 위한 싸움을 처절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이 아깝고 귀한 목숨을 대가로 무엇을 기억하고 이런 비극을 또다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우리 국민들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이 있는지 말이다.
최소한 이렇게 사망한 피해자들을 통해 우리가 얻은 뼈아픈 사실 중 하나는 정부의 역할이었다.
피해자들이 속출하는 와중에도 정부의 늑장대응은 피해를 더욱 키웠다.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하고 판매한 기업들을 국민들 앞에서 발표하기 몇 달 전부터 제품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한 사실을 알려주면서도 국민들에게는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에 방치한 셈이다.
수많은 피해가 발생되고 이것이 의심된다는 사실을 인지한 그 순간부터 정부는 제품 수거와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에 경고하며 국민들에게 사용하지 말 것을 대대적으로 발표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 몇 달의 기간 동안 그렇게 국민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사용을 계속했고 발표를 한 시점에도 시중에 판매되는 모든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지 않았다.
마치 일부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이다.
이것은 피해를 최소화할 또 다른 기회였지만 또 그 기회를 저버렸다.
정부는 이렇게 여러 차례의 기회 속에서도 국민들을 우선해 지켜내려 하지 않았다.
항상 국민보다 기업이었고 공무원들이 책상에 앉아 문서 몇 장을 보고서 판단하기만 했다.
이렇게 정부의 무책임 속에서 국민들이 목숨을 수 없이 잃고 나서야 발표가 되었고 세상에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정부의 잘못이 자꾸 드러나는 것이 불편한 것인지 가습기 살균제를 통해 얻은 교훈이 있긴 한 것인지 의문이고, 그것을 통해 재발방지, 엄격한 제도를 만드는 것 역시 소극적이었다.
우리가 진정 가습기 살균제로 너무나 아깝게 빼앗긴 수많은 생명에 진 빚이 없는 것일까?
살아있는 피해자들도 이렇게 원통하고 억울해하며 싸우고 있는데 이미 피해로 사망한 이들이 죽어서도 하고 싶은 말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나 역시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너무나 당연하던 것들의 소중함, 내가 누리던 것들을 다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의 그것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충분히 깨닫고 살고 있다.
숨 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던 내 삶에도 가습기 살균제가 나도 모르게 내 몸을 잠식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목숨줄을 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은 호흡곤란이 오면서였고 그렇게 숨을 쉬지 못한다는 것.
내가 숨을 들이마시는 것이 누가 장난이라도 치듯이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들이마시는 저 숨을 내가 아무리 들이마시려 해도 내게 들어오지 않았고 그것은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한 경험을 몇 번을 겪어보니 죽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오는 것이구나...
숨을 쉬지 못한다는 공포가 이런 것이구나...
숨을 들이마셔도 아주 얇은 빨대 하나로 누군가 입과 코를 틀어막고 숨을 쉬게 하는 그런 기분이었다.
이것은 정말 겪어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공포다.
그렇게 숨을 제대로 못 쉬면서 몸은 쇠약해지고 온몸의 면역체계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려 온갖 병들이 내게 다 들러붙어 작정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드는 생각은 이렇게라도 살아있는 것이 감사해야 할 일인가, 아니면 고문을 받듯이 이렇게 평생 사는 것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인가... 여러 가지 두려움과 고통에 계속되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 아이까지도 피해를 입힌 엄마였다. 그렇게 나는 아이에겐 또 다른 가해자였다.
아이가 나와 똑같이 호흡곤란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내게 공포에 휩싸여 울며 매달린다.
엄마 나 숨 좀 쉬게 해 줘요...
엄마 나 숨이 안 쉬어져...
엄마 나 좀 살려줘요...
꼬맹이였던 아이가 공포에 잔뜩 휩싸여 울며 나를 쳐다보며 애원하며 한 말들이다.
내가 만약, 숨 쉴 수 없는 공포를 느껴보지 않았다면 어쩌면 아이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얼마나 무서운지, 그것이 정말 죽을 것 같은지를 나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아이와 병원을 가는 것이 너무나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응급실과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어떨 때는 나 역시 몸이 안 좋아 응급실에 들러 링거를 맞고 아이와 한 침대에 누워 조금의 치료를 허락받기도 했었다.
이렇게 일상이 엉망이 되고 아이를 통해 내가 꿈꿨던 아이의 미래에 조금씩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느낌이었고 내가 꿈꾸던 아이의 미래를 아이에게 기대하며 조바심 내는 것이 너무나 큰 욕심이라는 것을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저 건강만 하다면, 내 곁에 이렇게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해야 했다.
공부? 특기? 학원? 이런 것들에 욕심을 내는 것이 나는 아이나 나를 심적으로 힘들게 하기만 했다.
지금도 제 몸하나 추스르는 것도 버거워하며 병원을 학교보다 더 많이 다니며 노인 같은 몸이 되어 아이에게 다른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들을 바라는 게 무리가 돼버렸다.
아이가 이런 말을 내게 몇 번 했었다.
엄마 건강한 폐로 숨 쉬는 기분은 어떤 건지 느껴보고 싶어요. 나도 그런 적이 있긴 했었다는 게 기억이 안 나...
엄마 나 이렇게 열심히 병원 다니고 약 먹고 하니까 낫긴 하는 거죠? 나는 대체 언제 낫는 거예요?...
나는 아이의 이러한 질문에 아무 말을 할 수 없다.
우리의 피해는 한, 일 년쯤, 몇 년쯤 약 먹고 치료받으면 낫는다고 약속을 받을 수 없는 피해라는 걸 알고 있다.
내가 접한 수많은 화학물질에 대한 노출의 예후들을 보며
우리 아이가 그 많은 보고서들에서 보았던 증상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나는 사실 더욱 두렵다.
나도 아이에게 일 년만 치료하면 건강해져서 너 하고 싶은 것, 우리 못했던 공부 다 할 수 있어 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렇게 내가 아이의 질문에 바로 대답을 못하면 아이는 스스로 답한다.
엄마 과학이 발전해서 우리 나중에 다 나을 거야 엄마도 낫고 나도 낫고...
우리는 무엇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누군가 확실히 답해주면 좋겠다.
사람은 누구나 불확실성을 안고 살아가지만 우리는 너무나 잔인한 결과를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우리를 부끄러운 존재처럼 숨기려 했고 축소시키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