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후 인지하지도 못한 채 얻게 된 많은 피해들과 죽음이 코 앞에
다가와 있다는 공포감마저 느꼈던 무서운 이 피해를 나는 계속해서 감당해 나갈 수 있을까?
나의 아이의 고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고문과도 같은 그 죄책감과 고통을 견뎌낼 수 있을까?
나는 매일 이러한 질문을 머릿속에서 수도 없이 반복한다.
나의 고통뿐 아니라 아이가 내가 사용한, 내가 더 좋을 거라고 열심히 써댔던 그 가습기 살균제가
아이를 죽이고 있던 행동이었다는 사실과 그 사실을 인지한 후 너무나 소름 끼치게도 싫었던
나 자신에 대한 원망...
나는 이러한 고문과도 같은 고통을 앞으로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까?
아이는 이 피해에 대해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이가 나에 대한 원망을 얼마나 하게 될까?
이러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런 끝에 왜 나만 이렇게 고문처럼 매일 고통받아야 하는지 분노가 일어난다.
왜 그들은 이 고문에서 제외되어 나와 아이가 빼앗긴 일상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인지.
내가 가해자라면 그들도 가해자여야 하고 최소한 나보다 더한 고통을 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그들이 책임지지 않기 위해 그동안 벌여왔던 수많은 불법행위들에 대해서 그대로 돌려받아야 한다.
내가 이러한 말을 그들에게 한 적이 있다.
아이가 지금 아픈 폐와 심장 등등의 여러 장기들 건강한 장기로 되돌려 달라고...
돈 필요 없으니 아이가 건강하게 원래대로 살아갈 수 있게 건강한 장기로 돌려달라고...
아이는 병원 치료에 불만 없이 힘들어도 잘 참고 따라와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과정이 너무 힘드니까 언제 낫느냐고 물어본다. 이렇게 병원 열심히 다니고 치료도 열심히 하는데 언제 낫는 거냐고...
나 역시 이 질문을 하고 싶다. 대체 우리의 병은 언제 낫는 것인지, 낫긴 하는 것인지 말이다.
그렇게 몇 년 고생하면 건강해질 거라고, 분명히 낫는다고...
이러한 대답을 얼마나 듣고 싶은지 그들은 알까...
내가 아이의 피해를 하나하나 확인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두려웠고 겁이 났다.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의 두려움이었고 겁이 났다.
아이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조차 없었다. 볼 때마다 눈물이 흘러서 차마 얼굴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병원에 갈 때마다 듣는 이야기들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만 싶은 이야기들 뿐이었다.
폐기능이 점점 떨어지고 있고, 1분도 안 되는 검사마다 심전도에서 확인되는 부정맥과 위, 십이지장 궤양으로 많이 고생하고 코에 생긴 섬유화로 수술이 여러 차례 필요하다는 이야기와 눈에 대한 문제, 또 뇌의 문제까지...
지금 아이는 수차례 입퇴원을 해오고 있고 병원 진료로 학교보다 병원을 더 많이 다니면서 몸 상태 또한 노인의 몸처럼 기력이 거의 회복되지 못한 채 아이만의 일상을 점점 빼앗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아이에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미안하단 말을 해야 할지, 용서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가능할지,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피해자 활동을 하면서 기업들의 책임을 묻는다면 조금은 변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으로 정말 열심히 해온 피해자 활동이었다.
비겁하게도 내가 아이를 위해서 조금의 죄책감을 덜어볼 요량으로 시작했고 더 열심히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열심히 해왔고 여러 가지 성과가 있었음에도 아이에게 변명의 말을 꺼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이렇듯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던 한 아이의 엄마가 그 아이는 순식간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라는 이름표를 달면서 삶이 완전히 무너졌고 뒤엉켜졌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내야 원래대로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짐작하기 어렵다.
아이에게 내가 피해자라는 힘든 삶을 살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 피해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아이만큼은 그 억울함에 피해자 활동을 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해온 것이지만 이것을 벗어나는 일은 피해자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는 것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처절하게 느껴진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면 사용한 이유로 피해자인 거다.
그리고 그 각자의 피해에 따라 기업과 정부가 책임지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그 일을 고의적으로 피했고 덮으려 했고 축소하려 했고 지금 까지도 책임 회피를 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죽어간 수많은 귀한 생명들에 최소한의 예의가 있다면 이들은 몇 번이고 사죄했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가 인정한 소수의 피해자들에게만 사과하는 것이라며 선까지 긋고 사과를 했다.
그리고 그들이 재판에 넘겨지고 처벌을 받았다.
소수의 피해자들을 제외한 수천 명의 피해자들은 어떠한 존중도 배려도 받지 못하고 그들의 사과도 책임도 묻지 못하도록 피해자들을 부정해버렸다. 그렇게 피 눈물을 흘리며 피해자들은 책임을 물을 기본적 권리마저도 박탈당한 채 피해자라는 이름만 붙들고 버텨내야 했다.
사람들의 무관심과 고의적인 회피의 태도를 보였던 정부를 상대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잊히지 않도록 기사 한 줄이라도, 우리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았다고 외치듯이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시작했고 여기까지 왔다.
가장 두려웠던 무관심 속에 피해자들은 관심을 구걸해야 했고 국회든 어디든 찾아가 허리를 숙여야 했다.
종종 그들의 들러리 역할도 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했던 건 그렇게라도 가습기 살균제 단어가 기사에 남겨져야 했기 때문이다.
관심 없는 언론과 국민들 책임지지 않기 위해 회피 해 온 정부...
이 사이에서 버텨온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그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화학물질 노출에 의한 피해 대책 마련은 제대로 나온 것이 없다.
피해든 재난이든 사람이 막는 데는 늘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 피해나 재난을 대응하는 것은 해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정부는 그것을 지금까지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사실상 관심 밖의 사안이라는 것도 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또 다른 나라를 수 십 개 만들어 내고 있는 중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처럼 수많은 피해자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피해자들의 나라는 또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대한민국 안에서 낯선 나라에 부끄러운 존재처럼 구석으로 내몰려 보이지 않도록 취급받는 것은 원치 않는다. 나는 그러한 존재도 아닐뿐더러 우리 피해자들은 그럴 취급을 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남기는 이유 역시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말하고 싶어서 이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아닌 누구의 엄마로 각각의 자신들의 원래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되돌려 줘야 한다.
그러한 선례가 없다면 피해자라는 이름표가 붙으면 일회용의 가치마저도 사라져 버린 그저 쓰레기,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상태로 전락해 버리고 말 것이다.
이 나라가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했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가 살 수 있도록 안정적인 제도 마련이 꼭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아이가, 또 다른 피해 아이가 일상으로 돌아가 살 수 있기를 나는 희망한다.
잘못된 것들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일을 자꾸 시도해야 하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고 책임이다.
이 나라는 어느 국민 한 사람도 일회용 취급을 해선 안된다.
국민이 늘 우선되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의무가 있듯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게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