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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검 Mar 15. 2023

재미있는 연변말, 변화 중의 연변말

중국 조선족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라고 말하면 그 범위가 너무 넓다. 구한말 일제의 식민지 착취와 압박을 피해 두만강을 눈물지으며 건너온 사람들은 어찌 함경도 사람들뿐이겠는가? 조선팔도가 다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연변에는 함경도 사람들이 많이 건너와 자리 잡고, 평안도나 황해도를 포함한 기타 지역 사람들은 연변을 거쳐 다시 흑룡강이나 요녕성 더 멀리는 산해관이남으로 넘어가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걸 처음으로 피부로 느낀 것은 대학시절이다. 고중 다닐 때만 해도 주변 동창들이 쓰는 언어가 거의 같은 사투리였는데, 북경에서 대학 다니면서 우리 민족 사투리도 이렇게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흑룡강 이나 료녕 내몽골에서 온 친구들도 자주 만나게 되었는데, 말투가 연변에서 온 친구들과 많이 달라 있었다.

어떤 지역은 부모님이나 집안 어르신들과 얘기할 때 야자 타임을 한다 하여 문화충격을 느끼기도 했었다. 연변이라면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옆의 나이 많은 분들한테서  예절 없다고 귓방망이를 선사받을 일이니깐.  

 

한 마디로 조선팔도의 사투리가 지역별로 대동소이하게 그리고 혹은 찐하게 혹은 옅게 섞여 있는 중국의 조선족 사회다. 이래서 중국 전체 조선족의 말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쓰기에는 언어학자도 아닌 나의 능력치를 크게 벗어나는 일 같고, 두 번째는 연변 밖의 기타 사회에 대해서는 내가 왈가불가할 정도로 익숙치 않은 일이기도 하다. 하여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입에 익혀온 그리고 귀에 익혀온  연변말을 위주로 해서 그 특점을 간추려 본다.

하오니 혹시나 이 글을 보고 계시는 분들은 그런 점을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여 주셨으면 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연변말의 근원 즉 뿌리는 함경도 사투리이다.

연변은 지리적으로 함경도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고 있다.  그 유명한 노래 "눈물 젖은 두문강"의 첫 절처럼 뱃사공이 노를 젓어야 하는 깊은 곳도 있겠지만 반대로 종아리가 살짝 잠길 정도까지 물이 옅은 곳도 많았으며; 폭도 좁아서 엎드리면 코 닿을 데란 속담처럼 가까운 거리다 보니, 이쪽에서 바라보면 저쪽 마을이 빤히 보이기도 하였다.

옛날에는 이쪽에서 좋은 음식을 해 놓으면 저쪽에서 식사하러 강을 건너오기도 했고, 반대로 저쪽 마을에 경조사가 있으면 이쪽에 살고 있는 친척들이나 지인들이 건너가 참가하기도 하였다.

너무나 가깝고도 먼 거리, 나라만 다를 뿐 얼굴도 습관도 언어도 거의 한 가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뿌리는 함경도 방언이되, 역사적 경제적 정치적 풍파와 시련 속에서 그리고 주류문화와의 융합 속에서 새로운 가지를 쳐 나가기 시작하였다. 때문에 함경도 사투리에서 기원하였음에도 조금씩 변화를 이루다가  최근 몇 년에 와서는 관련 정책기조가 변함에 따라 급격하게 탈바꿈하고 있다. 기쁘다고 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잘 모르겠지만, 일단 잊어버리기 전에 차곤차곤 정리해 두는 것이 정확하고 책임성 있는 선택인 같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외 필자는 언어학자가 아니니깐 엄격한 학문적 잣대를 들이대지 말았으면 좋겠다. 학술적 용어보다는 재미로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 써보려고 한다.


첫째, 언어구조상 연변말은 우스개로 "슴다체"라고 부르듯이 말끝에 어째슴다. 저랬슴다를 많이 쓴다. "**슴다"는 표준어에서 "**습니다"와 같은 의미이다. 젊은 여자들이 많이 쓰는 경향이 있으며,  보통 여자들이 아양을 떠듯이 쓰는 때가 많다.

"**슴다"보다 좀 더 묵직하게 쓰는 게 "**소"이다. 특히 남자들이 많이 쓴다.

간단히 구분하면 "**슴다"는 여자들이 많이 쓰며 "**소"는 남자들이 많이 쓴다는 거.


둘째,  연변말도 시대를 따라 진화하고 있다. 어제의 연변말이 다르고 오늘의 연변말이 다르며 내일은 또 달라질 것이다. 과학적 근거나 통계적 근거가 없지만, 필자가 느끼기에는 연변말의 발전이 아래와 같은 단계를 지나왔다.


ㄱ. 연변말의 탄생: 구한말 초기 함경도민들이 두만강을 건너 연변에 들어오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린다고 생각한다. 이때에는 함경도 말이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면서 연변말의 근간을 구축했다고 본다.


ㄴ. 연변말의 1차 발전: 일제의 압박과 착취를 피해 평안도를 비롯한 기타 지역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연변말이 함경도 바탕에 타 지역 방언 일부 첨가됨.


ㄷ. 연변말에 대한 일본어 침투: 1930년대부터 본격화한 일본군국주의의 중국에 대한 침략 및 동북삼성에 대한 식민지화가 본격화됨에 따라 일본의 문화침투도 본격화되었으며 이 과정에 연변말에도 영향 주었다고 보인다. 물론 그 썩 오래전부터 조선반도에서 실행되어 온 황국화교육, 창씨개명, 조선어 금지 일본어 강제교육이 조선반도에 있던 사람들에 대한 악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필자가 깊은 인상에 남은 것은 아매 생전에 일본동요를 유창하게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안 사실이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어렸을 때 일본인들이 강제 배워 준거란다.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된 일본어교육이 우리 민족에게 다방면적인 악영향을 끼쳤음을 미리 짐작할 수 있다.


ㄹ. 연변말에 대한 조선 및 한국의 영향:  신 중국이 건립된 후 연변이 위치한 지리적 조건도 그렇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의 교류와 협력 특성상 중국 조선말의 기준을 부득불 북조선의 관련 언어 규정에 맞춰었다. 실제 많은 중국 및 조선족 엘리트출신들이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유학을 거치기도 하였다.  가장 전형적인 사람이 중국전인대 위원장까지 역임한 장**다. 더 말해 뭐 하겠는가.

하지만 1992년 중한수교를 거치면서 중국과 한국의 경제교류 활성화 및 한국의 대중소기업의 대규모적인 중국진출과 맞물려 한국어가 연변말에 1차적으로 영향 주고, 후에 한국취업이 활성화됨에 따라 수많은 중국 조선족들이 한국에 진출하게 되고, 잘 만들어진 한국영화 드라마 그리고 노래가 인기몰이를 하면서 한국어가 연변말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되었다. 이 부분은 현재도 진행 중이라고 보인다.


ㅁ. 중국의 정치 및 정책이 연변말에 대한 영향: 사실 이 부분은 상당히 민감한 부분이어서 펼치기 껄끄럽다.

사실에 입각해서 정리해 본다. 중국 54개 소수민족의 하나로서 조선족의 지난날과 오늘 그리고 앞으로의 발전은 이 부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사료된다.

과거 민족정책 덕분에 연변에 거의 마을마다 우리말을 가르치는 유치원이 있고 소학교와 중학교가 있었다. 적어도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서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연변조선족 아니 중국조선족 전체의 새로운 인구이동이 발생하였다. 조선족 인구가 연변에서 북경 상해로 그리고 한국일본 더 나아가 미국으로 퍼지면서, 조선족 인구 비례가 현저하게 낮아지고 지어 일부 마을에는 인구가 줄어듬과 동시에 한족들이 조선족보다 훨씬 많아졌다. 상대적으로..... 인구비중이 떨어짐에 따라 입김이 점차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연변 조선족 엘리트들의 탈연변추세와 맞물리다 보니 관공서나 사업단위 그리고 중요한 기업에서 연변 조선족이 차지하는 입지가 점점 줄어드는 악순환이 형성되고 있는 같다.

이렇다 보니 필자가 어렸을 때 한족들이 연변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열심히 연변말을 배웠다면, 지금은 일부 조선족들이 아예 자녀를 한족학교에 보내 공부시키는 일들도 부지기수로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소수민족정책의 보호를 받으면서도, 연변조선족의 수량이 급격히 줄어드고 있다는 긴박감이다.

이대로 발전하면 자치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고 언젠가는 연변시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든다.


역사의 추세를 뒤돌릴 수는 없지만, 우리 민족은 어떠한 민족인가? 위기 속에서 더욱 빛나는 민족이 아니었던가.  수천 년의 외세와 외민족의 압박 속에서도 자기의 문화와 언어를 굳건하게 지켜 나간 민족이 아니었던가?


언어가 없는 민족은 기초가 부실한 집처럼 작은 풍파 속에서도 쉽게 허물어져 내린다.

언어

만 제대로 지켜나간다면 동북아정세의 변화에 따라 언젠가는 다시 부상하지 않을까? 앞날 어떻게 될지 예상하기 힘들지만은 소위 먹물을 먹었다는 우리들이 하나라도 언어를 지켜야 하지 않겠나 하는 사명감에서  이 문장을 쓴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좋은 사명감에 갖췄으나 한참 모자라는 언어에 대한 지식을 총동원하여 쓴 것이니 귀엽게  봐주셨으면 감사하겠다. 이외 잘못된 부분이나 건의 사항들이 있으면 댓글이나 본인의 이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다. 이상.


백검 연길에서 적음.


2023년 2월 24일 오전 12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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