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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검 Mar 15. 2023

재미있는 연변말 5탄-가마치


이번에는 음식과 관련된 연변말을 언급하려고 한다.

연변음식 자체가 짬뽕처럼,  함경도의 음식과 중국 동북삼성과 사천식 음식 그리고 후에는 한국과 일본의 음식이 이리저리 섞여서 새롭게 태어났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와중에 청출어람이라고 연길냉면(延吉冷面)은 중국 상무부와 중국 레스토랑협회에 중국 10대 국수에 선정되었고,  풍무양꼬치를 비롯한 양고기음식점들도  연변을 넘어 북경. 상해. 강소. 심양, 장춘, 서안 등 중국 내 중요 도시에 진출하였으며, 이젠 한국이나 일본과 미국에도 풍무가 분점을 차렸다고 하니 다른 말이 더 필요 없다. 연변만의 특색을 제대로 살리면 세계 어디에서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는 사례다.

물론 연변 말도 K드라마나 K영화에 진출하여 심상찮게 자주 듣게 되지만은 앞으로 부정적인 의미지만 부각하지 말고 적극적인 것도 함께 부각했으면 한다.


지금 말하려고 하는 연변말은 "가마치"이다.

가마치는 누룽지를 가리키는 함경북도 및 연변말이다. 가마+치 조합으로 보여진다. 즉 풀이하면 가마 밑에 깔린 치 (찌꺼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원래 자주 사용하던 말인데 요즘 mz세대들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른다.


그래서

사라져 가고 있는 연변말 중의 하나인 가마치에 대해서 풀어보려고 한다.


연변이란 지명은 그 유래가 연길(延吉,청나라 광서황제가 지어준 延续吉祥에서 따옴)에서 나오며 어원은 연집(烟集,과거 주변에 산에 막혀 연기가 자욱함에서 기원)에서 나왔 듯이 예로부터 가마아궁이에 불을 자주 피웠다. 때문에 안이 푹 들어간 가마에 여러 가지 야채에 돼지고기를 넣고 펄펄 끓이는 음식과  평평한 무쇠가마 위에 밀가루를 반죽한 음식들을 굽거나 익히는 조리법이 발달되었다. 이러는 과정에 음식이 타면서 굳어진 형태로 되는 궈바(锅巴)가 가끔 나오게 되고,

조선반도에서 온 이주민들이 벼농사를 시작하면서 아궁이에 얹은 무쇠가방에 밥을 짓는 음식조리법이 자연스럽게 성행하면서  그 부산물인 가마치가 대량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니깐 본래 이 지방 사람들이 먹던 궈바에 조선족들의 밥문화가 결합하면서 가마치의 전성기를 일으킨 것이다.

물론 가마치도 음식물이 풍부할 때 제대로 즐길 수 있었을 터,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기근이 심한 데다 공사(公社)가 유행하던 시기라 정상적인 밥보다는 大锅饭(큰 무쇠가마에 넣어 짓는 밥)이  위주였다. 훨씬 많은 물을 넣고 지어 밥보다는 먼 그리고 죽보다는 가까운 ‘밥’을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을 수밖에 없었으며 가마치는 당연 나오기 힘들었다.  


아직도 필자가 어렸을 때 먹었던 옥수수죽이 생각난다. 그땐 입쌀 밥은 집에 귀한 손님이 오시거나 중요한 활동 즉 생신날이 거 하면 잠깐 먹을 수 있었다.


후에 초중을 다닐 때쯤 농촌에서도 承包라는 부르는 도급제를 실시하면서 농사상황이 많이 좋아졌고 밥문제도 해결되었던 것 같다. 삼시세끼 밥도 지어먹게 되고 가마치도 많이 나오게 되었다. 하여 어머니께서 가마치를 모았다가 양봉 가는 아버지한테 보내 밥 대용으로 보냈다.

양봉하면서 다망할 때 뜨거운 물을 부어서 밥처럼 드실 수 있으니깐.

후에 내가 집을 떠나 고중에서 기숙사생활을 하면서 가마치가 다시 나한테로 오기 시작했다. 물론 나뿐만 아니고 연변 곳곳에서 온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보통은 부모님들이 오실 때 밑반찬 몇 가지에 가마치 한 마대씩 가져오셨는데,  그때는 왜 다들 그렇게 위가 컸는지 아니면 학창 시절은 항상 배고팠던지…

그렇게 많아 보이는 가마치도 밑반찬도 결국 1끼 2끼에 가장 길어 하루를 넘지 못하고 소진되었다. 가끔 옆의 숙소 애들이 벤또(도시락의 연변말. 일어에서 기원)들고 달려들 때면 그 자리에서 게눈 감추듯 없어지는 기적이 발생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불가사의하지만, 작은 음식도 맛이 있으나 없으나를 떠나 나눠먹던 그때가 그리운 같다.

가끔 일부 부모네는 미숫가루도 보내주셨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보냈던 고 중시절 미숫가루는 먹기가 너무 번거뤄웠다. 다들  일분일초를 시간 아껴 공부하던 때라 가마치만큼 환영받지 못한 같다.


뜨거운 물로 불궈놓으면 몇 분 만에 밥이 되고 먹고 나서는 물로 몇 번 헹구면 그릇이 깔끔해지는 가마치.

게다가 무쇠가마에서 지은 밥 부산물이니 철을 비롯한 영양물도 풍부했던 터라,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때기가 아닌가.ㅎㅎㅎ


북경에서 대학을 다니면서부터는 가마치를 많이 보지 못한 같다. 고향에서 멀어 매번 보내기도 번거로운 점도 있고, 다닌 대학이 提前录取에 속하는 대학이라 형식적으로 내는 학비나 숙소비보다 국가에서 받는 돈이 더 많았고 내 때만 하더라도 생활비용이 적게 들었다.

호랑이 같은 강직하고 용맹한 주용기총리가 물가를 내리누른 덕분이랄까?


후에 직장생활을 할 때는 경제적으로 많이 좋아지다 보니 더욱더 그랬고. 결혼한 후에는 전기밥가마가 보급되면서 더욱더 그러했다.


이젠 우리 후세대들에게 가마치라고 말히면 십중팔구는 모른다. 궈바(锅巴)하면은  편의식 식품 중에 이 이름을 붙인 제품이 있어 안다. 누룽지도 그 이름을 붙인 제품이 있어 안다.


우리 앞의 세대들에 의해 태어나고, 우리 세대에 가장 유행했었고 이젠 사라져 가는 그 이름-가마치.


그 가마치가 역사적 사명을 다하고 이젠 우리의 생활에서 시야에서 추억에서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다.


아마 언젠가는 박물관 사진으로만 남아질지도 모른다.


아, 가마치와 내 학창 시절

그리고 정을 나눴던 가마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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