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이 뭐라고

by 백검


이름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아비이(연변말, 할아버지)다. 우리들의 이름을 거의 전부 아바이가 지었기 때문이다. 문화대혁명이 마무리될 쯤에 태여난 손자들에게 아바이는 봄 춘(春) 자 돌림으로 이름을 지으셨다. 추운 겨울이 지나서 따스한 봄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이름을 짓지 않았나 싶다.

대신 아바이는 자식들에게 모택동(毛澤東) 동(東) 자 돌림으로 이름을 지어주셨다. 50년대나 60년대에는 동(東) 자 돌림이나 문화대혁명과 관련된 혁(革) 자 돌림으로 이름을 짓는 게 유행되었다. 비상시국에 이름에 혁명적이고 열정적이며 적극적인 사상을 붙여야 안전해서일까 아니면, 그 시대 흐름에 묻혀가기 위해서일까?

여하튼 우리 이름 세 글자에는 자식들이나 손자들이 어두운 곳보다 밝은 곳에서, 추운 곳보다도 따슷한 곳에서 별 탈 없이 자랐으면 하는 아바이의 소박한 바램이 있었던 같다.


이름의 역사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있는 이름이다. 성명(姓名)이라고 하여 앞에 혈통이나 가문을 나타내는 성(姓)을 붙이고, 그 위에 개개인을 구분하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성을 풀이하면, 姓은 여자(女)가 낳다(生)이다. 성씨가 생긴 이래 인류는 원래 어머니의 혈통과 가문을 따랐다. 후에 인류사회가 벌전함에 따라 생존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인류무리의 정착활동에 있어서 농업활동과 수렵 등 활동에서의 남성의 활동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면서 자연스럽게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변천하게 되고, 자식들의 성씨도 아버지의 혈통과 가문을 따르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누구나 처음부터 성을 다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 같은 경우, 희(姬) 성씨는 황제부락에서 기원하였는데, 주(周) 나라 때 자식들과 전쟁에서 공훈을 세운 장군들한테 제후국 53개를 분봉(分封)하면서 동시에 성씨를 하사하여 411개 성씨가 새로 생기게 된다.

강(姜) 성씨는 염제(炎帝) 신농씨에서 기원하였는 데, 직계자손 강상(姜尚)이 제나라를 세우면서 귀족과 장군들한테 102개 성씨를 하사한다.

이러다가 진시황이 6국을 통일한 후 호적과 군역 그리고 형벌 관리의 효율성을 위하여 평민까지 성을 사용하도록 했다. 이때부터 성씨는 귀족 전유물에서 일반 백성들까지 사용하는 행정적인 식별 도구로 전락한다.


한반도에서는 중국과 같은 듯하면서도 또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조선의 국왕들도 귀족들이나 공신들한테 성씨를 토지와 함께 하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새로운 성씨를 하사하는 경우보다는 국왕 자기의 성씨를 하사하여, “왕의 사람”이라는 정치적 증표로 삼기도 하였다. 어찌 보면 왕권은 성씨를 통해 지배층을 통제하고 족보라는 보이지 않은 끈으로 정통성 경쟁을 유도하고 거기에 유교의 삼강오륜(三綱五輪)이라는 교묘한 족새를 채웠다. 한반도에서 중국이나 일본과 다르게 김씨 이씨 박씨 이 3가지 성씨가 고도로 집중된 것은 , 이러한 역사와 무관치 않다.

여기에 조선후기 특히 임진왜란 이후 경제적으로 성장한 천민이나 노비들이 공명첩을 사거나 족보를 위조하는 일이 생기면서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자연스럽게 국가나 사회에서 잘 나가는 김씨 이씨 박씨 성씨를 따라 하게 된 것 같다.


섬나라 일본의 성씨의 역사는 메이지유신 전후로 나뉜다. 과거에는 일왕이 귀족들한테 하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다가 점차 말단 사무라이들에게 까지 성씨가 보급되었으나, 일반 백성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찌 보면 수백 년 동안 성씨는 사무라이의 특권으로 인식되었다.

메이지 시대에 와서 더욱 정확하고 효율적인 징병제와 조세제를 실시하기 위하여서는 세밀한 호적제도가 선행되어 동명이인을 구분하고 탈적(脫籍)자 부랑자를 통제해야 했다.

하여 1870년 “平民苗字許容令”을 실시하여 일반백성들도 성씨를 가질 수 있도록 허락하나 과거 성씨가 사무사리 특권으로 인식되고 평민들이 성씨를 갖다가 혹독한 처벌을 받던 아픈 기억들 때문에 흐지부지해진다.

하여 1875년 “平民苗字必称義務令”로 업그레이드하여, 모든 백성들이 반드시 성씨를 사용하도록 하였다. 동시에 백성들이 자유롭게 성씨와 이름을 짓도록 허락했다.

이 법령의 실시로 말미암아 에도시대에 3만 여개에 달하던 성씨가 메이지시대 후반에는 12만 개로 확대되었다. 平民苗字必称義務令의 실시로 말미암아 기상천외한 성씨들이 많이 탄생하였는데, “我孫子(나의 손자)” “上床(침대에 오르다)” “一二三(일이삼)” 등이 전형 적이다.


이름과 권력의 결합 그리고 명휘(名諱)

성씨가 혈통과 가문을 구분하는 문자 부호라면, 이름은 그 개인을 특징하는 부호라 할 수 있겠다. 성씨 못지않게 이름을 둘러싸고 권력 술수와 혈투가 난무했다.


우선은 하늘이 내린 사람이란 얼토당토않은 소리로 사람을 현혹하게 하는 황제(皇帝)나

신의 아들이나 아예 신 그 자체라고 스토리를 만들어낸 인간들이 똑같게 하는 일이 있다.


이름을 신성화 신격화 하는 것이다. 특히 5000년 이상의 봉건제도를 실시하여 황제의 인격을 하늘의 인격으로 올려 천자(天子)라고 부르고 황제의 모든 행동을 하늘의 뜻으로 세탁한 중국에서 더욱 특출했다. 이것이 유명한 명휘(名諱) 혹은 벽휘(避諱) 제도이다.


名諱란 단어는 “사람 생전에는 이름(名)을 부르고, 죽은 후에는 휘(諱)를 부른다”에서 기원하였으며, 춘추공양 전(春秋公羊傳)에 기재된 것처럼 춘추시대 연장자나 부모님이나 조상님 그리고 현명한 자를 존경하기 위하여 길에서 만나게 되거나 서류상으로 직접 이름을 부르지 못하도록 하는 당시 민속습관이다. (春秋為尊者諱,為親者諱,為賢者諱)


예를 들면 송나라 때 유명한 시인 소동파 소식(蘇軾)은 그 증조부의 이름이 序여서, 후에 유명해진 다음에 다른 사람들한테 책의 서문(序文)을 작성해 줄 때, 序라고 쓰면 증조부한테 불경스럽다 하여 서(序) 대신 인(引)이나 서(敘)라고 썼다.


명휘가 실시된 이래 초기에는 같은 이름만 피하면 되었지만 후에 황권과 종법제도가 점차 강화됨에 따라 그 범위가 점점 더 넓어지고 엄격화되었으면 법률에 명시화 하였다.

당나라 때 황제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은 대불경(大不敬) 죄에 해당되며 사면 불가하였다.

당나라의 법률 당율소의(唐律疏議)에 의하면, 문장을 작성할 때 대화 할 때 황제의 조상들의 이름이 들어가면 매를 80대 쳤으며, 현재 황제의 이름이 들어가면 태형 50대를 때렸으며, 이름을 지을 때 황제의 이름이 들어가면 3년 유기도형에 처했다.


명휘(名諱)는 실제 후기에 와서 더욱 엄격해졌으며, 실제 말 한마디에 유배당하거나 심한 경우에 가문이 몰살을 당하기 도 하였다.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기원 304년~439년) 시기 전진(前秦)의 국왕 부생(符生)은 외눈박이였는데, 하여 명휘의 범위를 이름뿐만 아니라 신체의 불건전함을 나타내는 "부족(不足)" "불구(不具)", "소(少)" "무(無)", "결(缺)", "상(傷)", "편(偏)", "직(只)"등 문자도 사용을 금지하였다. 이를 어기면 관련 자를 다리를 자르거나, 배를 가르거나, 늑골을 빼거나, 톱으로 머리를 잘라버리는 극형에 처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래물이 맑다고 황제가 이러하니 지방에 있는 관원들이나 사대부들도 따라 하였는데 자기 관할 구역에 있는 수하사람들이 자기나 조상들의 이름을 피하도록 하였다.


이름 때문에 살고 이름 때문에 죽다


성명 특히 성씨가 갖고 있는 가문과 혈통이라는 상징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자기 성씨를 아주 소중히 여겨왔다. 하지만 과거에는 성씨가 표적이 되어서 불이익을 받거나 더 나아가 숙청당하는 일들이 있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시골로 들어가 살거나 아예 성씨를 완전 다른 성씨로 바꿔 연명하는 비참한 경우가 있었다.


특히 일부 성씨는 그 성씨가 갖고 있는 독특한 의미 때문에, 그 후임들에게 미움의 대상이거나 경계의 대상에서 반드시 숙청하거나 몰살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중국 고대에서는 황(皇)씨, 한국에서는 고려시대 왕(王)씨이다.

황 씨는 중국 상고시대 삼황오제(三皇五帝)중 삼황”燧人氏(天皇)、伏羲氏(地皇)、神农氏(人皇)”에서 기원했다고 전해진다. 후에 진나라 왕 영정(嬴政)이 6국을 소멸하고 전국을 통일하면서 진시황(秦始皇,진나라 첫 번째 황제)이라고 자화자찬하면서 대부분 황씨들은 부득불 성씨를 皇氏에서 黃氏나 皇甫氏로 변경하였다. 이름 그리고 이름이 갖고 있는 삼황의 후손이란 표시 때문에 역대 황제들에게 있어서는 항상 잠재적으로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여기와 비슷하게 고려시대 왕족에 속했던 개성 王氏 역시 조선왕조가 들어서면서 탄압을 받기 시작하였다. 조선 초기 권력층의 눈에는 왕 씨 성은 전대 왕조의 잠재적 반란의 씨앗으로 인식되었고 이성계가 고려 왕조를 배반하고 이 씨 조선을 세웠을 듯이 언젠가는 기회만 되면 고려왕족들에 미련이 남은 신하들과 지지층들을 규합시켜서 다시 권력의 정점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공포감에 사로 잡혀 있다 보니, 결국 왕씨 지우기 작업에 들어갔다. 태조 3년의 박위의 점괘사건으로 왕위에 가까운 고려 제34대 공양왕의 남자 후손 135명을 삼척, 강화도, 거제도에서 처형되고 나머지 방계 후손들은 성씨를 바꿔야 했다.

하여 살기 위하여 고려 왕족 방계 후손들은 외가의 성씨를 따르거나, 성씨를 왕 씨에서 옥(玉)씨 전(全)씨 등으로 바꿔 살아가야 했다.


원래의 혈통을 숨기고 목숨을 유지한 사례는 20세기 초반에도 진행되었는데, 청나라가 1911년에 멸망한 후 살아남은 황족들이 전형적이다. 청나라 황제 후손들은 정치적 박해나 불이익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부득불 아이신기로(愛新覺羅) 성을 포기하고 김(金), 조(趙) , 조(肇), 나 (羅) , 악(鄂), 동(佟)등으로 개명하였다.


이름 개명(創氏改名)을 통한 민족말살정책과 민족대이주

이름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창씨개명(創氏改名)이다. 일본은 조선을 병탄 한 후 조선민족을 말살하기 위하여 조선어 사용을 금지하고 강제로 일본어를 사용하게 하였으며, 민족의 종교를 탄압하고 조선 민족의 역사를 부정 왜곡하였으며 창씨개명을 진행하여 모든 조선인들이 일본식 성과 이름을 갖도록 강요하여 민족의식을 철저히 지우려 하였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피하여 민족이 고유언어와 이름을 비롯한 민족의 정통성을 지키고 민족독립을 쟁취하려는 노력이 당시 느슨해진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관리와 맞물려,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고 연해주를 건너게 하였다.

물론 19세기 후반 이후에도 자연재해와 경제난 때문에 만주개척을 위한 생계형 이주가 있었지만, 일제 식민통치가 확산되고 31 운동 후 독립운동 공간과 정치적 회피를 위한 이주가 대규모로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눈물 젖은 두만강”이 1938년에 발표된 곳도 민족의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고향을 떠나 타국으로 가야만 했던 당시 독립운동 선구자들의 서러움과 그리움이 반영된 시대상 때문에 아닌가 싶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젖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든 그 배는 어데로 갔소



이름 뒤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들


인생 희로애락(人生喜怒哀樂), 세상을 살다 보면 인생을 살다 보면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노여울 때도 즐거울 때도 있는 법이다.

등산할 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이, 인생에 있어서도 그래서 어떤 순간은 자랑거리로 인생을 빛나는 순간으로 기억나고 어떤 순간은 인생의 밑바닥으로 암흑기로 기억나게 된다.


그러다 보니 혹자는 불편했던 순간들을 감추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게 된다. 그래서 그때를 꽁꽁 감추려고 한다. 그때 대두되는 것이 이름이다.


이름을 고치고 아예 불편하고 불쾌하고 어찌 보면 역겨웠던 과거를 감추고 새로운 사람으로 사는 것. 마치 암흑한 곳에서 기여 나온 카멜레온이 기온과 기분에 따라 그리고 주변에 포식자나 사냥감이 있냐 없냐에 따라 피부색깔을 갈아엎듯이 말이다.


이름으로 인생을 성형하는 화류계 그리고 연예인들

5년 전인가 종로구 관철동에 있던 김두한 옛 활동무대였던 우미관 자리라고 추측되는 곳에 벽화가 그려져 세상을 떠들 썩 하게 했다. 진실 여부는 아직도 베일에 쌓여 있지만

다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이나 다 통하는 게 있다. 사회 밑바닥에서 엘리트층으로 올라가려면 가문이라는 든든한 사다리가 없는 이상 엄청 힘들다는 것이다. 남성주도 사회에서 여성이 성공하려면 곱절로 되는 노력과 땀을 흘려야 한다는 점도 마찬 가지이다.


하여 간혹 패스트 트랙(Fast Track) 혹은 우리말로 동아줄을 찾게 되는데, 그래서 수많은 젊은 이들이 이름을 바꾸고 화류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물론 자기 이름 그대로 미스코리아나 아나운서 등에서 활약하다 재벌가와 결혼하거나 제3자로 살아가는 경우도 가끔 있기도 하지만, 필경 누구나 미스코리아나 아나운서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깐.


물론 사회적으로 화류계에 대한 평판이나 수용정도가 나라와 지역에 따라 다르다. 제도적으로 불법으로 규정된 중국이나, 사회윤리적으로 여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 주변의 눈치를 많이 보게 되는 한국보다는 일본에서는 그것이 더욱 뚜렷하게 로골적으로 나온다. 세계적인 성인 엔터테인먼트산업-AV의 출현할 수 있다는 점도 이런 일본의 풍토와 관련 있다. 하여 매년 정상적인 연예계에서 인기에서 밀려난 전직 가수나 아이돌그룹이나 모델과 대학생활을 금방 시작한 새내기들이 그 앞에서 서성이게 된다.


물론 화무백일홍(花無百日紅)이라고 아름답던 순간도 벚꽃처럼 한순간이니깐,

청춘이 지기전에 좋은 동아줄을 찾아야 하니깐 그 전에 신분세탁을 해야 되기 때문에 항상 본명은 꽁꽁 숨겨야 한다. 본명이 드러날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하여, 일부는 2개 혹은 3개 더 나아가 더 많은 가명을 쓰는 경우도 있다.


이름을 감춰야 만 하는 것은 결코 화류계 계통뿐만이 아니다.

말 한마디 혹은 글자 한 마디에 불이익을 당하거나 지어는 독재자의 기분에 따라 극형까지 당할 수 있는 그런 곳들이 있다. 왕정을 실시하는 아프리카나 중동이나 그리고 일부 아시아 국가들이 그러하다.

생명이 가끔 태풍 속 초불처럼 너무나도 꺼질 수 있고 지어는 시신 한 조각까지 카슈끄지처럼 철저하게 사라질 수 있는 그런 동네에서, 또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항상 목숨을 담보로 한다.

하여 부득불 이름을 감춰야 하고, 생활 흔적도 꽁꽁 감춰야 한다.


비극적이지만 이것이 또 다른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모습이다. 달이나 화성에 날아갈 준비가 되었지만 어느 구석인가 에서는 아직도 원시인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착잡하게 하지만 이것이 지구이고 이것이 인류의 현재 모습이다.



이름 감추기의 달인들-파나마 파일


앞에서 맛보기 식으로 이름 관련된 재밋있는 일들을 큰 잠자리가 물가 스치듯 풀어 보았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김병만처럼 달인이 있는 법이다.


이름 감추기에도 달인이 있다. 그 달인들이 정확하게 10년 전에 파나마 파일(Panama Papers)을 통해 폭로되었다. 간단히 정리하면 독일의 모 신문사를 통해 폭로된 세계에서 가장 엘리트란 인간들이 세계각국 조세피난처를 통해 돈을 세탁한 자료를, 전 세계 80여 개 국가 100곳의 양심 있는 언론사와 언론인들이 손을 잡고 진위를 검증하고 파헤친 대형 폭로사건이다.


수차적으로 2.6 테라바이트에 달하는 1970년대부터 2016년까지 이르는 약 11,500,000건의 자료에 담겨 있는 214,000곳의 기업의 조세 회피와 관련되었는데, 가장 큰 문제는 당시 각국의 정치 지도자, 마약상, 무기상,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등이 포함되어서 충격을 주었다.


거의 당시 중요한 국가의 지도자가 다 망라되어 충격을 주었으면, 당연히 얼마 지나지 않아 일부 국가에서 여론통제에 들어가면서 잠잠해졌다.



이름 바꾸기의 달인-한국의 정당들


이름 감추가의 달인이 있으면 이름 바꾸기의 달인이 있는 법이다. 바로 한국의 정당이다.

진보도 보수도 아닌 내가 괜히 분쟁에 끼어들기 싫으니 아주 객관적으로 정리해 볼까 한다.


한국은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양대 정당이 있고, 그 사이에 작은 정당들이 끼여 있다.

일단 보수 계열 정당의 이름 변천사를 둘러보자.

1951년 자유당

1963년 민주공화당

1981년 민주정의당

1990년 민주자유당

1995년 신한국당

1997년 한나라당

2012년 새누리당

2017년 자유한국당

2020년 미래통합당

2020년~2026년 국민의 힘

2026년 이후 새로운 정당명으로 바꿀 예정


이에 진보를 대표하는 주요 정당의 이름 변천사를 둘러보자.

민주당

신민당

1987년 평화민주당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2003년 열린 우리당

2008년 통합민주당

2011년 민주통합당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2015년 현재 더불어 민주당


과거에는 그래도 아주 심중 하게 당명을 바꾸었는데, 최근에 보면 갈수록 당명을 바꾸는 속도가 빨라지는 같다.


30여 년 전에 삼성 이건회 회장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보자”하여 과거 3류의 삼성을 현재의 세계 1류 기업으로 성장시켰지만, 한국의 양대 정당은 사람은 그대로인데 이름만 바꾸고 또 바꾼다.


이름을 바꾼다고 정당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인가? 이것은 마치 호박에 줄 하나 긋는다고 수박이 되냐라고 묻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본다.


너무나도 가벼운 한국의 정당의 이름들,

마치 뿌리 옅은 한라산의 나무들을 보는 같아 씁쓸하다.


이상으로 이름에 대한 내 생각들을 글로 남겨 본다.

물론 맞다 틀렸다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나한테 있었서도 과거와 지금과 미래에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인생살이가 깊어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의 깊이가 달라지고 각도가 달라지다 보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란다.

오직 변하지 않은 것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마도 10년 후에도 나는 누군가가 아니고 내 이름 그대로 나대로 살아갈 것이라는 점이다.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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