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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TORY Mar 25. 2018

인생 9회 말 2아웃, '나'라는 '승리투수' 등판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인생 9회 말 2아웃, '나'라는 이름의 '승리투수'가 등판했다 .                                                                                                                    

떼구르르.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서 힘차게 방망이를 휘두른다. 공은 담장 밖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못 잡겠지’ 하며 바짝바짝 약을 올리기도 하고, 때로는 정확히 1루수 앞에서 ‘어서 날 주워요’라고 유혹하기도 한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아웃이 되거나 점수를 낸다. 그도 아니면 1루나 2루에 있다가 어정쩡한 자세로 경기장 밖을 나간다. 1점이 되어 나가느냐 0점이 되어 나가느냐는 순전히 공이 굴러가는 방향과 거리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게 게임이 진행되고, 한 회가 끝난다. 그리고 아홉 번이 지나가면 끝난다. 하지만 전광판이 9개 칸의 발광다이오드를 밝히는 수고로움을 행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있다. 콜드게임으로 지게 되는 날이다. 9회 말 2아웃부터가 진정 야구의 시작이라는데…….     


사는 곳이 프로야구의 연고지가 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은 열광한다.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야구 이야기를 하고, 박식한 야구 상식을 추앙한다. 그런 세태에서 청소년이라고 시류를 따르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나와 조성훈은 프로야구와 만난다. 그리고 그들은 삼미와 함께 자란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점퍼 안에 ‘프로야구 개막’을 욱여넣었으며, 가방에 ‘삼미의 우승’을 넣고, 명찰에는 ‘자랑스러운 삼미의 연고지’를 단다.               


하지만 승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들의 바람은 무너졌다. 결국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삼미 슈퍼스타즈는 해체되고 나와 조성훈은 삼미를 떠난다. 그 후 고등학생이 된 나와 조성훈은 보통의 길을 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힘겨운 성인식이 시작된다. 나는 꽤 우수한 성적으로 속칭 일류대라고 불리는 대학에 입학했지만, 사랑에 실패하게 된다. 조성훈의 행보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부모의 부재, 그리고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다 드러낸 다툼을 지켜본 그는 한국을 떠난다.               


그들이 다시 삼미를 만난 것은 ‘나’의 실직과 이혼 그리고 ‘조성훈’의 깊숙한 상처 때문이다. 시간의 여유로움은 그들에게 아련한 향수를 기억해 내는데 일조했고 그렇게 그들은 다시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이 된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만난 삼미는 그들에게 ‘비워놓음’을 알려준다. 그렇게 욕심 부리지 않는 삼미의 방식대로 사는 그들에게는 실직자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하지만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 것이 삼미의 정신이다. 아등바등 앞만 보며 달려갔던 그들에의 시야에 옆이 보이고, 뒤도 보인다.     


삼미 슈퍼스타즈. 그들은 특별하다. 똑같아서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달라서 특별하다. 그렇다면 그들만 특별하냐? 아니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특별하다. 그러니 지금 주변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비슷하지 않다고 절망하지 마라. 당신은 9회 말 2아웃 상황에서 역전 홈런을 날릴 타자다.     


9회 말 2아웃의 승리투수, 바로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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