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휴대전화를 들고 통화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오전 시간은 방해받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네 어머니~”
또 지수어머니다.
“그 정도는 선생님께서 처리해 주셔야죠. 공부하러 가는 건데 방해받으면 안 되잖아요. 선생님께서 안 해주시면 제가 전화할 거예요.”
이번 전화는 반 친구들이 지수에게 오징어라고 놀린 것 때문이었다. 요 장난꾸러기 녀석들. 수업 시간에는 당연히 친구를 놀리지 않는다. 선생님이 안보는 잠시를 틈타 그 어마어마한 사건이 생긴 모양이다.
“그럼요 어머니~ 우리 지수가 많이 속상했겠어요. 그런 기분으로는 공부가 안되죠. 아이들 그런 일 없도록 신경 쓰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전화를 마치고 보니 오전 8시 35분. 아이들 등교시키고 바로 전화하신 모양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나의 베프에게 전화를 건다. 그 어머니는 왜 아침 댓바람부터 전화냐며 방금 있었던 통화 내용을 모조리 쏟아 버린다. 이걸로 속이 다 풀릴 리 없지. 카페 앱을 켜고 '학원장 모여라'에 들어가 글을 작성하기로 한다. 제목은 뭘로 할까? [진상 어머니 대처법] 그게 좋겠다. 혹시 댓글이라도 올라올까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리기를 몇십 분. 아침식사를 하지 못했단 사실조차 잊어버렸지 뭐람. 시계를 보니 어느새 11시가 다 되어간다. 11시 30분에 운동 예약해놨는데 이러다 늦겠다. 대충 보이는 대로 입고 보이는 대로 가방에 넣고, 한 손엔 마스크 한 손엔 비타민과 물통을 움켜쥐고 집을 나선다.
사진출처 - 픽사 베이
오늘 운동은 너무 힘들었다. 하체 집중. 끄응. 배가 고파온다. 앞에 보이는 '알로하포케'에 들어가 튜나&살몬포케를 주문하고 물을 한잔 마신다. 이제야 정신이 드나 보다.
‘어머니들께 전화해 있었던 일을 말씀드려야 하나? 지수에게 너도 당하지 말고 똑같이 되갚아주라고 해야 할까? 아, 아니지. 댓글 올라온 건 없나?’ 온갖 생각이 스치고서야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내 편안해진다. 이어폰을 꽂고, 블루투스를 연결하고, 유튜브를 켜고. 구독하는 온갖 교육 유튜브 채널 중 맘에 드는 영상을 픽했다. 드디어 맛있는 점심시간이다.
벌써 정해놓은 시간이 되다니. 2시에는 집에 도착해야 출근 준비를 마치고 늦지 않게 학원에 들어갈 수 있다. 오늘 첫 타임이 지수네 반이니, 아까 계획한 대로 잘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지수보다 용찬이와 민서가 먼저 와있다. 운이 좋다. 용찬이와 민서를 조용히 원장실로 부른다.먼저 지수를 놀렸는지 진위를 확인하고, 아이들을 단단히 단도리한다. 꽤나 말귀를 알아듣는 아이들이라 어렵지 않았다. 한 번 더 그러면 엄마한테 전화할 거라 하니 다시는 안 놀리겠다고 약속해준다. 다행이다. 그 이후로 더는 그런 일이 없었으니.
이제 좀 있으면 꽉 찬 3년 차 원장이 되는데.아직까지 이런일로오전 내 오르락내리락하는지. 갈길이 멀다. 휴.
아니다. 괜찮다. 반만 유지될 수 있다면. 뭐든 괜찮다. 3년 차 수학 원장의 가장 큰 목표는 ‘원활한 반의 유지’.아, 이것은 나의 영업기밀이다. 엄마들은 영원히 모를 나만의 영업기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