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쉬는 청년의 시점
3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고, 4대 보험에 가입된 지 10년을 넘긴 나로서는 ‘20만 청년, 쉬었음’ 이란 말을 코로나 시대 이후에 처음으로 들었다. 인생 전반을 게으르게 살지 않았던 나로서는 [20만 청년]에게 의문조차 갖지 않고, 누군가에게 붙어있는 식충이거나 ’아직도 꿈이라는 것을 좇는 어른‘이라는 단순하고 이견 없는 생각으로 정의를 내렸었다.
도래한 2025년은 [20만 청년]을 [30만 청년]으로 드라마틱한 경제성장의 표징으로 보여주었고, 여기서부터 그들의 쉼이 [휴식]이 아닌 [숨 참기]로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에 많은 기업이 있고, 많은 직업이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았던가? 30만 명의 상태가 전부 똑같은 상태라고 생각하려니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20만 청년 쉬었음]의 때에는 나도 젊음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변명할 여지가 있다만, 이제부터는 청년과 어른의 경계에 서서 그들을 걱정하는 것이 나의 생존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으로 근로소득을 얻은 해인 2014년으로부터, 가장 길게 쉬어본 것이 약 10개월 정도였다. 블랙기업이었을지도 모르는 중소기업들에 취업해 전전긍긍하며, 이직과 개인사정들을 포함해도 만 2년 미만의 시간 동안 휴식을 가져보았던 입장에서 ‘쉬었음’은 굉장히 파급적인 상태로 느껴진다. [20만 청년]의 시점에서는 어렴풋이 ‘부러움’이라는 하찮은 감정을 가졌었을지도 모른다. M세대를 바라보는 X세대들이 철없이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생각이 나서 그런지, 다행히도 나는 [쉬는 청년]들을 쉽게 단정 짓지는 않았다.
“젊을 때 도전도 해보고,
꿈도 꾸고 하는 거지 뭘”
치열하게 살아본 청년들이라면 이제 어른이 되어 저 말씀이 얼마나 형편없는 회고인지 잘 알 것이다(놀랍게도 틀린 말은 아니다). 단군이래 가장 극악무도한 학력전쟁에서 살아남은 일반직 근로자들에게 꿈을 꿀 시간도, 도전할 용기도 모종에 특권이었으리라. 같은 세대의 청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다음 선수인 [30만 숨 참는 청년]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선배들이 되었으면 한다.
자신이 그저 운이 좋아서 숨을 안 참고 있는 사람에 속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늘도 감사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