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 관하여
언제나 따뜻한 미소로 인사해주는 Z, 저에게 첫 직장을 선물해준 J, 그리고 O. 이번엔 그들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려 합니다.
첫 번째로 Z. 앞에서도 간단히 소개해 드렸지만 Z는 인도 출신으로 집 근처 예술학교에서 미술공부를 하고 있는 남자입니다. 나이는 31살로 아마 Empress ave. 집에서 저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친구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집 와이파이 공유기의 주인으로 Z 없이는 인터넷조차 할 수 없었기에 더 많이 의지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심이 담긴 선물을 받고 싫어할 사람은 없잖아요? 사실 제가 Z에게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온 부채를 선물했었습니다. 2개를 사 왔었는데 그중 하나를 가장 처음에 만났던 룸메이트인 Z에게 선물했던 거죠. 다행히 반응은 제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부채를 받자마자 Z의 눈은 휘둥그레 졌고, 사실 예전부터 동양미술에 관심이 참 많았다며(인도는 동양에 포함 안 되나요?) 한지에 그려진 소나무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고 연신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그 작은 부채에 마음이 열렸던지 Z는 자신의 방으로 저를 불러들였고, 저는 처음으로 외국인 친구의 방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미술 전공자인 만큼 방은 전부 그림들로 채워져 있었고 미처 끝내지 못한 작품들과 미술도구들로 책상은 뒤덮여 있었습니다. 제가 그림들에 관심을 보이자 Z는 서랍 속에 있던 그림, 책장 뒤에 있던 그림까지 꺼내 보이며 보여주었고, 하나하나 그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인도의 슬픈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림입니다. 종교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남녀를 가운데에 빙 두르고 군중이 돌을 던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었는데 그림에 대해 설명해주던 Z의 진지하고 슬픈 표정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내 Z는 웃음을 보이며 "이 그림이 인도의 전부는 절대 아니야! 인도는 아름다워."라고 말하며 자신의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보였습니다. 저의 많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인도를 여행해 보는 건데, 만약 제가 인도를 여행할 때 Z가 그곳에 있다면 가이드를 부탁해야겠어요.
Z는 솜씨 좋은 요리사이기도 합니다. 집에서 가장 자주 요리를 해 먹는 룸메이트이기도 했죠. 그럴 때마다 저에게 맛보라며 조금씩 나눠주던 인도음식은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인도 사람이 만들어준 인도음식이라! 생각만 해도 정말 근사하죠. 집에서 직접 빚은 반죽으로 만든 ‘난’과 함께 먹는 커리.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침이 꼴깍 넘어갈 정도로 정말 맛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저도 가끔 제가 한 요리를 나눠주곤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달걀말이'입니다. 제가 채소를 썰고 달걀 물을 풀 때만 해도 “오믈렛 만드는 거야?”라고 하며 크게 신기해하지 않은 Z는 둥글게 말아가는 달걀말이의 모습을 보고 "AWESOME!"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번 먹어보라고 권하자 살짝 망설인 Z는 “시도해 볼게.”라고 말하며 한입 먹더니 맛있다고 연신 엄지를 세웠습니다.
Z가 망설인 이유는 제가 달걀말이에 햄을 넣었기 때문입니다. Z는 종교적인 이유로 돼지고기는 먹지 않는데 햄이 들어간 달걀말이를 먹기 전에 고민했던 것이죠. 저는 미처 그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고 Z를 배려하지 않은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Z는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근데 이것 참 맛있다.”라고 말해주며 미안해하는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이렇듯 Z는 외로운 캐나다 초기 생활에 큰 힘이 되어준 든든한 형 같은 존재였습니다.
두 번째로 소개할 룸메이트는 J.
J는 멕시코계 캐나다인으로 이곳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여자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첫 직장을 소개해준 고마운 친구죠. 하지만 Empress ave. 집에서 지내는 동안 크게 친해지지는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생활 패턴이 저와는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J는 록 음악을 정말 사랑했습니다. 시간 날 때마다 콘서트, 라이브 바 공연을 보러 갔고 그 열정은 집에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J의 방을 한번 구경한 적이 있는데 그녀의 방 안엔 큰 전축과 갖가지 앨범들, 그리고 가수들의 수많은 사인이 가득했습니다. 그것들을 본 순간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는지 단번에 느낄 수 있었죠.
하지만 그 열정이 밤까지 이어질 줄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J의 방과 제 방은 바로 붙어있었는데 잘 시간이 되어도 그녀의 음악소리는 끝날 줄을 몰랐죠. 저는 11시~12시쯤엔 잠을 자곤 했는데 J는 그때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항상 밝은 성격의 그녀 덕분에 즐거운 점도 많았지만 약간 힘들었던 기억이 많은 건 어쩔 수 없네요. 그래도 퇴근 후 집에서 J의 위스키로 Z와 함께 나누던 시간은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O.
이 친구에 대해선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 캐나다인으로 추정하고, 나이도 얼추 저와 비슷하거나 조금 어린것 같다는 것, 그리고 여자 친구가 거의 집에 살다시피 할 정도로 자주 드나든다는 것, 정도가 그에 대한 정보의 전부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저와 싸웠다는 거죠.
룸 셰어는 말 그대로 각자의 방을 갖되 부엌이나 화장실은 공유하는 주거 형태입니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필수적이죠. 하지만 O는 그 선을 넘은 친구입니다. O가 사용하고 난 후의 화장실은 항상 더러웠고, 부엌 또한 이루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저를 포함한 4명의 룸메이트들 중에서도 항상 혼자 겉도는 친구였기에 밤에 다 같이 위스키를 한잔 할 때도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최악의 상황은 지금부터입니다. 그가 제 밥솥을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제 쌀에(감히 한국인의 쌀을) 손을 댄 거죠. 그 사실을 알게 된 저는 화를 참지 못하고 혼자 손을 떨어가며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내 의사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결과는 ‘쪽지’를 쓰자고 결심했습니다. 아무래도 그 상황을 발견한 직후에 찾아가서 얘기를 하면 감정적으로 밖에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영어로 그를 이길 자신이 없었습니다. 화를 식힌 후 책상에 앉아 차근차근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적었고 그의 방문에 붙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O가 쪽지를 읽고 제 방으로 찾아와 사과할 줄 알았어요. 하지만 결과는 빗나갔습니다. 완전히 말이죠. 제방으로 찾아오는 대신 제가 쓴 쪽지 뒷면에 대충 휘갈겨 쓴 글씨로 ‘Come talk to me. We are both adults’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죠.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잠깐 생각한 시간을 가진 후에 당당히 그의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바로 양치질을 하고 있는 O가 나왔습니다.(양치질을 왜 방 안에서 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입니다.) O는 입에 물고 있던 거품을 현관 밖 화단에 급히 뱉은 후 저와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야기했죠. “네가 알다시피 나는 이 밥솥을 매일 사용한다. 만약 네가 쓰고 싶다면 나에게 미리 말을 했어야 한다. 그리고 왜 내 개인 선반에 있는 물건에 손을 대는지 모르겠다. 어젯밤 바로 얘기하고 싶었지만 너는 여자 친구와 함께 있었고, 여자 친구 앞에서 싸우고 싶지 않아서 메모를 남긴 것이다.”라고요. 그때는 문법이 맞는지 틀리는지도 모른 채 생각나는 대로 말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말한 영어가 제 감정을 가장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 말을 들은 O는 사과 비슷한 것을 했고,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싸움은 일단락됐습니다. 이 일 이후로 원래도 어색한 사이였던 저와 O는 더 어색한 사이가 되었지만, 저는 스스로 제 의사를 당당히 표한 그때 그 일을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닌 건 아닌 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