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의 본질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한겨레21 이문영 기자님의 <웅크린 말들>을 읽었습니다. 가장 존경하는 언론인을 꼽으라면 저는 망설임 없이 이문영 기자님을 말하겠습니다. 저에겐 어느 문장가들의 글보다도 울림이 강했습니다. 읽으면서 저널리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책은 '말해지지 않는 말들'을 담아냅니다. '말해지지 않는 말들'이란 말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세상에 드러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언론은 항상 권력과 함께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출입처 기자가 가장 많은 곳이 국회, 청와대, 그리고 검찰이라고 하는데요. 이들은 대한민국의 권력을 상징하는 세 기관이죠. (사실 법원이 검찰의 자리에 들어가는 게 맞지만 우리나라는 검찰의 권력이 이상하리만큼 비대한 현실입니다.) 언론은 매일같이 이곳의 말을 세상에 실어 나릅니다.
'뉴스가치'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말 그대로 뉴스의 가치를 매기는 척도입니다. 시의성, 저명성, 근접성 등이 있습니다. 학문적인 용어지만 기사를 접해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하는 개념입니다. 메이저 신문의 탑은 보통 세상을 뒤흔들 만한 소식, 지금 당장 우리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소식으로 장식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주목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수백, 수천개의 사건들이 쏟아지고 이를 적절히 필터링해서 세상에 실어나르는 건 언론의 의무이자 역할입니다. 이때 작용하는 게 뉴스가치들입니다. 지금 당장 일어난 사건일수록, 유명한 사람의 이야기일수록, 나와 물리적 심리적으로 근접한 환경에서 발생한 사건일수록 뉴스가 되는 것이죠. 공직자 비리 스캔들, 전염병 발생, 국내사고 소식 등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 보도관행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언론의 다수 인력은 권력기관에 포진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을 세상 밑변의 이야기는 '뉴스가치'가 되기 힘듭니다. 선택과 배제의 논리가 작용하는 보도 현실에서, 언론이 쏟아내는 보도들은 본질적으로 균형적일 수 없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언론의 보도 잣대에 '균형성'과 '객관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포털 기사 댓글란만 봐도 '치우쳐있음'을 비판하는 댓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기사를 비평할 때 균형성과 객관성은 중요합니다. 균형적이다는 건 한 마디로 대비되는 입장을 양적으로 동등한 수준에서 다루었나를 따지는 것입니다. 객관적이다는 건 기자의 주관성을 내포하는 언어 사용을 충분히 지양하고 있는가를 따지는 것이고요. 필연적으로 정파성을 띌 수 밖에 없는 보도 매체가 균형성과 객관성을 지키는 것은 기본적인 윤리 원칙과도 같은 거죠.
하지만 그 원칙들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양쪽의 입장을 언론에서 동등하게 다루는 것만으로 본질적인 힘의 균형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말의 창구가 부족한 이들에게 확성기를 갖다대는 것이 주관적인 견해를 주입하는 것과 같을까요. 말했듯이, 뉴스가 생산되는 과정에서 이미 선택과 배제의 논리가 작용하는 게 보도 현실입니다. 여태 말해지지 않았던 사람들의 입장을 충분히 실은 기사가 '뉴스'가 되는 게 그들에겐 더 공정하고 객관적인 세상이지 않을까요.
책은 그 모든 관행을 져버리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고 말해지지 않는 삶과 사실들을 이야기합니다. 기자 스스로 그에 빙의해서 말이죠. 어떤 하루를 보내고 어떤 언어를 쓰는지 낱낱이 보여줍니다. 또, 보도와는 거리가 먼 문학적 글쓰기를 차용합니다. 발생한 사건 자체보다는 사건이 일상에 남긴 파장을 기록하고요. 이문영 기자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애써 말해야 하는 삶들이 있다. 말해질 필요를 판단하는 것이 권력이고, 말해질 기회를 차지하는 것이 권력이다. 말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권력과 거리가 먼 존재일수록 말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