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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공방 May 13. 2022

민들레 홀씨는 젖지 않는다

친구와 카페에 갔다가 민들레 꽃이 모양 그대로 보존된 문진을 보았다. 생각 없이 예쁘다 - 고 남발을 하다가 둘 다 문득, 이거 대체 어떻게 만든 거지? 라며 혼란에 빠졌다. 여린 홀씨 하나하나가 뭉개지지도, 서로 붙는 일도 없이 어쩜 저렇게 솜털을 활짝 펼치고 있는 거지?

https://ohou.se/productions/351746/selling


유튜브에 민들레 홀씨 문진 만들기,라고 쳐보니 경화제와 레진을 혼합한 용액에 조심스레 민들레 홀씨를 담그면 아주 수월하게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도 혼란은 가시지 않았다. 꽃이 부드럽고 얇을수록 용액 속에서 모양을 잡기가 쉽지 않아 생화보단 드라이플라워를 많이 사용하던데, 대체 민들레 씨는 어떻게 모양이 유지되는 걸까. 그러던 중 관련 영상으로 민들레 홀씨를 물에 담갔다 뺐더니 바로 다시 뽀송해지는 영상까지 보고 나니 이 연약해 보이는 홀씨를 내가 단단히 얕보아왔구나 싶었다.


후 - 하고 불면 그야말로 깃털처럼 흩어지는 주제에, 표면장력을 가진 갓털 때문에 물방울이나 물 덩어리가 씨앗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흘러내려 물에 젖지 않는다고 한다. 솜뭉치 같아 보여도 사실은 갓털 사이에 미세한 공간들이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나약하게 날아가버리는 듯해도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며 드론처럼 몇 킬로미터까지도 날아가 낙하산을 단 듯 안정적이게 착지한다고. 그러니까 입으로 불든,  물에 담그던, 민들레 씨는 꽤나 온전한 것이다.



이 작은 꽃 또한 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시간을 버텨온 자연의 산물이라는 것을 깨닫자 무언가 겸허해졌다. 그리고 한없이 부드러운 듯하여도 제 세상을 지킬 이런저런 장치가 있다는 게 조금 부러워졌다. 바람이 불면 그 풍랑을 타고 자유로이 떠나가는 것, 물에 빠지더라도 뭍으로 나오면 거짓말처럼 건조해지는 것. 좀처럼 어디로도 잘 떠나지 못하고 과거가 꾸덕히 늪을 이루는 수면 아래 발이 묶인 내가 간절히 원하는 모습이 아닌가. 자꾸 자연 속에서 의미와 교훈을 찾고 꽃 사진을 찍는 것을 보니 의심할 여지없이 늙어가고 있거나 - 여름방학 숙제를 하던 초등학생 때의 마음가짐으로 회귀하는 것 같지만, 뭐가 되었든 - 이젠 작은 구름처럼 날아와 내 바지 끝에 내려앉는 민들레 씨를 조금 더 소중하게 다룰 것 같다


이상, 용케도 젖지 않고 몽글몽글 새로운 집을 향해 날아가는 늦봄의 함박눈들에 대한 글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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