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채널에서 상생을 도모하는 스타트업, Telio와 Kilo
베트남의 유통시장은 도입기 단계이다. 도시화가 40%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전통 채널이 우세하다. 인구의 60%는 시골지역에 살고 있고 도시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재래시장이나 오토바이로 직접 찾아가기 편한 구멍가게(Mom & Pop Store)에서 상품을 직접 보고 구매하는 것에 익숙하다. 칸타 월드패널에 따르면, 도시에는 전통 채널 비중이 60%, 시골지역은 90%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도시에 사는 젊은 세대 중 회사에 다니거나 전문직에 종사하여 시간이 많지 않은 중상층 소비자들은 현대식 유통채널(Modern Trade)를 선호한다. 재래시장보다 위생적이고 구매할 때 마다 가격 흥정을 하지 않아도 되며, 다양한 이벤트 및 배송 서비스 등이 있어 편리하기 때문이다.
또 코로나로 인해 베트남 역시 빠르게 온라인 쇼핑 구매도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 트렌드에서 기회를 읽은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잠재시장 베트남에서 현대식 유통 포맷인 편의점(CVS)이나 전문점(Specialty store), 그리고 이커머스 플랫폼(E-commerce) 시장에서 시장 선점 기회를 노리며 베트남의 현대채널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시장은 근대화 ∙ 현대화를 향해 변화하기 때문이다. 아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2017년까지 베트남 유통시장은 전통채널이 80% 이상을 차지했으나, 하노이나 호치민 등 도시 중심으로 현대 유통 채널이 빠르게 증가하여 2020년 기준, 전통 채널 비중은 74%, 현대유통은 22%, 그리고 나머지는 온라인 4%로 시장 구조가 빠르게 변해 온 것을 볼 수 있다.
(출처: Cimigo <Vietnam 2021 Consumer Trends)
잠재시장이란 말은 참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 말의 이면에는 아직 현대식 채널을 수용할 만한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금광을 먼저 차지해 보라 유혹하는 미개척된 잠재시장, 베트남은 글로벌 기업을 끌어당기고 베트남 현지 대기업과 경쟁시킨다. 글로벌 기업과 베트남 현지 대기업은 아직 전통시장과 오프라인 구매에 익숙한 베트남 소비자들을 계몽시켜 현대채널로 시장을 이끌어가려 한다. 골리앗 같은 이 거대기업들은 20% 남짓 시장규모를 형성한 베트남 현대채널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 엄청난 자본을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실재하는 거대 시장은 70% 이상을 차지하는 전통 채널이다. 이 시장은 잡화점(cử a hàng tạp hóa)이라 불리는 구멍가게 스타일의 맘앤팝 스토어(Mom & Pop Store, 이하 M&P)들로 매우 파편화 되어 있다. 대부분 1층은 가게이고, 윗층에서 가족들이 사는 가족형 비즈니스가 많으며, 고객은 인근에 사는 이웃들이다. 가게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가게 주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단골이 되고, 오토바이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편리함을 선호한다.
<베트남 M&P 이미지>
(출처: https://directory.myaladdinz.com/)
현지 시장을 잘 아는 베트남의 빈그룹은 M&P의 간판을 빈마트 플러스(현재는 Marsan 그룹이 인수)로 바꿔 편의점 매장수를 빠르게 확대할 수 있었다. 유통이 발달된 나라의 사례를 보면, 일반적으로 편의점은 인당 GDP가 $5,000이 넘는 곳에서 출현하는데, 아직 $3,000도 안 된 베트남에서 편의점이 빠르게 증가하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시장 선점을 노린 글로벌 편의점들로 인해 공급자 중심으로 베트남 유통시장이 압축 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베트남 편의점 현황>
(출처: Q&Me <Modern Trade Store Trend>, 2020년 3월)
한편 현대유통이 아닌, 70%이상을 차지하는 전통채널에 집중하는 스타트업이 등장했다. 이들은 베트남 현지 시장과 소비자의 소비 관행을 너무 잘 알기에, 단번에 현대채널로 고객의 구매습관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다. 그래서 전통채널의 주류를 차지하는 M&P 자영업자들이 가진 운영 상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집중한다. IT를 접목한 솔루션을 제공해 M&P 오너들의 어려움을 해결을 도와 이들의 삶을 개선시키면, 궁극적으로 베트남 전체의 유통 생태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비전을 가진 베트남 스타트업 2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번째 스타트업은 2018년에 설립된 텔리오(Telio)이고, 다른 하나는 2020년에 설립된 킬로(Kilo)다. 이들이 진단한 베트남 M&P의 문제점은 유사하다. M&P은 매장 규모가 협소해 취급상품이 500~1000개 SKU에 불과하다. 그런데 상품을 납품해 주는 도매상 50여곳을 상대하다 보니 가격도 늘 들쑥날쑥하며, 심지어 주문 후 배송되는데 1주일 이상 걸린다. 그로 인해 재고 관리 역시 예측할 수 없어서 M&P 오너들은 상품 운영을 위한 자금 관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텔리오는 M&P이 직접 브랜드나 도매상과 소통할 수 있는 B2B 플랫폼을 만들었다. 텔리오 앱을 통해 쉽게 더 많은 상품을 취급하도록 지원하고, 투명한 가격 정보와 함께 24시간 안에 배송이 되는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매장은 더 효율적으로 현금 흐름과 재고 관리를 할 수 있고, 하루 종일 걸렸던 주문 시간을 단 10~15분만에 해결할 수 있다. 그 결과 M&P 오너들은 편리하게 매장을 운영하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지게 되는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창업자 시퐁 부이(Sy Phong Bui)는 알리바바의 마윈에게서 텔리오의 영감을 얻었다. 항저우에서 진행한 알리바바의 이파운더스 프로그램(eFounders Program)에 참여했던 그는 이커머스, 물류, 결제라는 골든 트라이앵글이 알리바바를 테크 유니콘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모두가 알리바바를 이용할 수 있고, 그 결과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도울 수 있다’는 마윈의 사업 미션에 고무되었다. 베트남으로 돌아온 그는 “99%가 하지 않는 것을 우리가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등한시됐던 전통채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베트남의 소상공인은 베트남 경제의 허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의 성장을 돕는 것이 곧 베트남 경제 전체의 성장을 돕는 것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시퐁은 현대채널의 등장으로 낙후되고 영향력을 상실해가는 수백만 소상공인들에게 텔리오를 통해 다시 힘을 부여하여, 최종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더 잘 하게 만드는 것을 사명(mission)으로 삼았다.
베트남 M&P에는 킬로그램으로 무게를 재는 저울이 있다. M&P을 상징하는 브랜드명을 가진 킬로는 M&P과 도매상(wholesaler)이나 유통업체(distributor)를 연결해 주는 마켓플레이스다. 가격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M&P 오너들이 원스탑으로 주문을 할 수 있으며, 자동화된 재고관리를 하도록 지원한다. 텔리오가 상품 사입을 통한 이커머스, 물류, 결제를 모두 담당한다면, 킬로는 그저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해 주는 마켓플레이스로 아직은 가벼운 모델이다. 시드 투자를 받았고 시리즈 A를 준비하고 있는 초기 스타트업이기 때문이다. 2021년 상반기까지는 공급자를 확보하는 데 집중했고, 하반기에는 엔지니어 고용을 통해 소매점들에게 맞춤화 된 판촉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는 단계다.
‘Next-generation Retail Platform’으로 소개하고 있는 킬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사업을 접근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오랜 소비 관행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키는 것 보다, M&P에 더 나은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도록 도구를 제공해 주는 것이 킬로의 미션이다. M&P 오너들의 삶을 더 편리하게 만들면, 가업으로 M&P을 물러받는 다음 세대들에게 선택받는 툴이 될 것이라는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있다.
킬로의 창업자는 아마존, 그루폰, 쿠팡, 티끼 등 이커머스 분야의 전문가로, 인도계 미국인 카틱 나라얀(Kartick Narayan)이다. 이커머스 경험을 발판으로 더 큰 시장에서 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킬로를 런칭했고, 이를 통해 베트남 유통 시장의 생태계를 개선시키고자 한다. 현재는 M&P과 도매업자를 연결해 주는 마켓플레이스지만, 유통 사업에 연관된 6개 부문, 즉 소비자, 브랜드, 소매업자, 도매 및 유통업자, 대출기관, 물류업체들을 하나로 연결한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킬로의 궁극적 목표다.
<킬로의 비즈니스 모델>
베트남의 스타트업의 특징은 첫째 IT를 통해 오프라인에서 파편화된 영세기업들을 연결하여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형태가 많다. 마치 고래도 이기는 정어리떼의 모습과 같다.
(출처: 국제신문)
둘째 역발상을 활용해 기존에 있는 본질을 파고들어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자본력으로 승부하는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는 현지 시장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고객 문제의 근원까지 파고들어, 고객이 원하는 적합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획력이 승부를 좌우할 것이다. 새로운 현대 채널을 공략한 골리앗과 기존 거대 시장인 전통 채널을 선택한 다윗의 싸움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현지 시장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으로 도전하는 두 스타트업에 응원을 보내 본다.
[참고] 안타깝게도 텔리오의 창업자는 현재 기업 지배구조 관련 이슈로 법정소송에서 패소하였다. 연쇄창업자인 그가 세 번째 회사인 텔리오를 준비하면서, 두 번째 회사인 OnOnPay(OOPA)의 기업 네트워크, 인적 자원 및 지적 재산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소송에 휘발렸고 USD 174,000을 보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은 이번 글의 주제와 관련은 없지만 스타트업을 할 때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