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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마박사 Sep 13. 2021

푸꾸옥 주민들 90%가 진짜 백신을 맞았을까?

베트남 푸꾸옥에 금방이라도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요 아니었습니다


베트남 남서부에 있는 푸꾸옥(Phú Quốc) 섬은 베트남에서 가장 큰 섬이자 섬으로선 유일하게 행정구역상 '시'로 분류되는 곳이다. 푸꾸옥(혹은 푸꿕. 저는 푸꿕이 입에 익어 푸꿕으로 쓰겠사와요)의 후추와 느억맘(피시소스)은 베트남에서도 으뜸으로 손꼽힌다. 길고 늘씬하게 뻗은 몸매, '나 날쌔오'를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푸꿕의 개들은 '푸꿕 리지백'이란 품종으로도 유명하다. 사냥도, 수영도 잘하는 푸꿕의 개들은 베트남의 국견(國犬)으로 꼽힌다. 끝도 없이 펼쳐진 비취색 바다와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둘러싼 섬에서 자란 후추와 물고기가 맛이 없을 수도 없고, 그런 섬을 누비고 다니는 개들이 총명하고 수영도 잘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다. 



푸꿕은 최근 들어 휴양지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외국 관광객들이 열심히 다낭과 냐짱으로 휴양을 떠날 때 현지인들이 조용히 푸꿕을 찾더니 이제는 메리어트와 노보텔도 들어섰고 빈그룹이 빈펄을 짓고 동물원(사파리)까지 차려놨다. 케이블카도 걸렸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 관광객들의 발걸음도 뚝 끊겼다. 푸꿕으로 놀러 가겠다며 호시탐탐 연차 낼 기회를 노리던 한국 친구도 올여름 휴가와 적금을 고스란히 제주도에 상납했다. 


그러던 찰나 나온 소식. 푸꿕이 10월에 백신 접종 해외 관광객들에게 다시 문을 연다는 것이다. 당일날 현지 보도를 봤는데 6월, 7월에 하던 말과 크게 달라진 내용이 없었다. 6~7월에도 푸꿕은 10월에 백신 여권을 소지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섬을 개방하자고 중앙정부에 제안을 했고, 1단계(3개월)에선 매달 2~3000명의 관광객들이, 그다음 2단계(3개월)에는 매달 5000명에서 1만 명의 관광객들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11일께 나온 보도에서 새로운 것이라면 총리가 계획을 오케이 했다는 점과 10월에 그렇게 재개방을 하기 위해선 빠른 백신 접종이 필요하다는 당국의 강조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언론에는 뭔가 이상한 보도가 나갔다. 


베트남 정부가 푸꾸옥 재개방 시범 사업을 위해 주민들 백신 접종을 우선 실시했고 "현재 주민의 최소 90%가 2차례 백신 접종을 마친 상태"라는 연합뉴스의 보도


연합뉴스의 기사를 보자. 푸꾸옥 재개방 시범 사업을 위해 주민들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을 우선 실시했고, 주민의 최소 90%가 2차례 백신 접종을 마친 상태라고 현지 매체 VN익스프레스를 인용해 보도했다. 


지난 9일 기준, 베트남 전국의 백신 2차 접종 완료율은 5%가 되지 않는다. 베트남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고, 그래서 그만큼 정부에서 백신을 '몰빵'해준 호찌민시도 12일 기준 2차 접종 완료율이 20%에 미치지 못한다. 지난 12일 호찌민시가 백신 접종을 완료한 시민들에게 그린 패스·옐로 패스 등을 발급하며 단계적으로 봉쇄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논의하고 있지만 "인구 679만 명 중 2차 접종을 마친 인구는 130만여 명으로 이마저도 고령자·기저질환자라 우선 접종한 사람들"이라 정책 실효성 부분이 우려스럽다고 발표할 정도의 상황이다. 


그런데 무려 푸꾸옥 섬 주민들의 최소 90%가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쳤다니. 현지에 사는 사람으로서도 의아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네이버나 구글에 베트남 백신 접종률만 쳐봐도 뭔가 '어? 이상하지 않나?' 내지는 '진짜 그렇다고?' 싶을 부분일 수밖에 없다. 아마도 VN익스프레스 영문판을 보고 쓴 기사일 테니 그 영문판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관련돼 나온 영문판 기사에 90%란 수치와 관련된 부분은 정부가 보건부에 푸꾸옥섬이 재개방 준비에 있어 주민들의 최소 90%가 완전히(2차까지) 접종을 받을 수 있도록 백신을 우선 할당할 것을 지시했다는 내용뿐이다. 그러니까 주민들의 90%가 2차 접종까지 완료한 게 아니라, "섬 주민들 90%가 2차 접종까지 다 마칠 수 있도록 백신을 먼저 배정해라"라는 것이다. 사실관계까지 바꿔버린 오역이다. 


유감스럽게도 현재 푸꿕이 속해있는 끼엔장성(省)의 18세 이상 성인 백신 1차 접종률은 23.6%에 불과하다. 푸꿕만 따로 떼놓고 보자. 

뚜오이쩨 기사

푸꿕시 인민위원회는 11일 푸꿕섬 개방·백신 접종과 관련해 "현재 약 3만 5000명이 1차 접종을 마쳤고 5000명이 2차 접종까지 마쳤다"라고 밝혔다. 백신 접종 대상자인 18~65세 주민들을 대상으로 했을 때 1차 접종률은 35%, 2차 접종 완료율은 5%에 그치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은 90%가 아니라 5%다. 5%. 


참고로 앞서 백신 접종 완료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푸껫섬을 개방한 태국은 섬 주민들의 70%가 2차 접종까지 마친 후에 문을 열었다. 베트남에서도 태국의 모델을 예의 주시하고 있으니 적어도 개방을 위한 최소 접종 완료율은 70% 이상으로 잡을 것이다. 90%란 기준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푸꿕시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이달 21일 1차 접종자 9000명을 대상으로 2차 접종이 우선 진행된다. 10월 초에는 나머지 10만 9000명에게 1차 접종을 실시하고, 10월 말까지 18~65세의 섬 주민들 모두의 2차 접종을 완료한다는 것이 계획. 그러니까 아무리 빨라도 10월 말, 11월은 돼야 재개방이 가능한 것이다.

 

여하튼 5%란 사실 관계를 90%로 바꿔 버린 오역이다. 연합에서 잘못된 내용을 담고 있는 기사를 냈는데 조선, 중앙, SBS에 한국일보, 한국경제 등 10개가 넘는 매체들이 받아썼다. 통신사인 연합에서 (잘못) 나온 기사를 확인도 없이 받아 썼더니만 결국 10개가 넘는 주요 언론들이 연달아 우르르 사실이 아닌 기사를 내는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베트남이 아무리 영미권 국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언어까지 따로 챙겨 배울만큼의 강대국도 아니라지만 참 씁쓸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그냥 '에구 또 그러는구나' 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한국에 있는 친구가 난리가 나서 썼다. 그리고 난 마침 브런치도 열었다. 조만간 푸꿕에 가면 너도 올 수 있겠느냐거나 비용이 코로나 전보다 많이 비쌀까, 얼마 정도 할까 묻는 연락들이 왔다. 회사 때려치웠으니 다녀와서 한국에서 2주 격리하더라도 자기는 무조건 갈 것이라는 조.. 조금 많이 극단적이었던 친구까지. 


말이 10월이지 실제로 하려면 제법 걸릴 텐데 대체 왜들 이러나, 왜 다들 그렇게 금방 올 수 있을 것처럼 그러나 했더니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되묻는다. "야. 한국에 기사 다 나왔어. 주민들 90%가 백신 접종 완료했으면 금방 열리는 거 아냐?"라고. 오역과 받아쓰기로 빚어진 촌극의 파장이 주변까지 미친 셈이다.


어제오늘은 관광·항공업계 관계자들의 전화도 받았다. 자기들이 보고 느끼는 상황과 너무 다른데 한국(본사)에선 이런 기사 나왔는데 뭘 하고 있냐고들 그런다며. 조선비즈에 중앙일보에 주요 언론들이 다 기사를 냈으니 그것을 본 본사는 언론사 보도가 잘못됐다는 생각은 못하고 주재원이나 담당자를 쪼아버린 것이다. "기사가 나올 정도인데 업계 관계자가 그것도 미리 모르고! 보고도 안 하냐?!"라며. 이젠 영어 원문기사 확인이 어려운 시대도 아니다. 심지어 베트남어 원문 기사도 확인할 수 있는 사람도 서서히 늘어나고 있는 시대건만, 무지함과 게으름에 웃지 못할 촌극이 펼쳐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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