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10년 만에 처음으로 정년퇴임을 보았다.
이전 직장들은 직원들 평균 연령이 20~30대였다. 가장 나이가 많은 상무님조차 50대였으니, 회사에 정년퇴임 제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다. ('퇴사'는 흔했지만)
부장님은 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으시지만 특별히 '직책'은 없었다. 그냥 부장님이었다.
그래서 처음 입사했을 때 저 부장님은 대체 무슨 일을 하시는걸까 싶었다.
새로운 툴은 잘 못쓰시는데 관심은 많으시고, 팀장님은 묘하게 부장님을 불편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팀장님은 부장님을 존중하고 식사와 회식도 함께했지만 어떤 일도 부여하거나 요청하지는 않았다.
팀 내에서 R&R을 나누거나 회의를 하는 날에 부장님은 공교롭게도 늘 외근 일정을 잡으셨다.
입사하고 3개월차가 되었을 때야 부장님이 곧 정년퇴임 예정이라는 '정보'를 들었다. 부장님의 잦은 외근이 꼭 일이 있어서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년 전에 30년 근속했던 회사에서 정년퇴임을 맞은 아빠가 생각났다.
정년퇴임을 1년 앞둔 시점에 아빠가 회사에서 어떤 직책을 맡게 되었다며 저녁식사 자리에서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냥 보여주기식 감투인 것 같아"
아빠는 민망하게 허허 웃으면서 소식을 전했지만, 왠지 들떠보였다.
퇴직날짜가 다가오자 거실 한켠에 놓인 컴퓨터 책상에 퇴직 이후를 준비하는 사내교육책자가 놓였다.
'대기업은 이런 것도 해주나보네' 생각해며 펼쳐본 책자 안에는 '이력서 쓰는 방법'이라는 페이지가 있었다.
나는 첫직장부터 당연히 온라인에서 서류지원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HWP 파일로 작성했을법한 인쇄버전의 이력서는 처음 봤다. 이런것도 배워야하나? 하며 책자를 덮었다.
퇴직 후 아버지는 1년만 쉬고 재취직하겠다고 선언했다. 30년을 대기업에서 일했지만 다시 일자리를 찾으려면 새로 시작해야 했다. 바리스타, 정원관리사 자격증을 따고 기타 강습도 들었다. 하지만 그 자격증들이 실제로 문을 열어주지는 않았다. 퇴직 5년째 되던 해, 아버지는 옆 동네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직했다. 24시간 근무, 24시간 휴무를 하는 고된 일정이다. 평생을 대기업에서 전문직으로 일한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고된 스케줄밖에 없다니 조금 씁쓸했다. 하지만 아빠는 오랜만에 출근할 곳이 생겼다는 사실을 기뻐하셨다.
이제 부장님과 함께 일했던 분들은 회사에 많이 남아있지 않다. 팀장님은 물론 임원진까지도 부장님보다 젊은 분들이 더 많다.
퇴직하면 이제 뭐하고 지내실거냐는 질문에 부장님은 '그냥 푹 쉴거에요'라고 웃었다. 다들 '부러워요~'라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진심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정년퇴임할 때까지 회사에 붙어있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퇴직 이후에는 무엇을 해야할까 하는 의문, 지금부터 일찌감치 퇴직 이후를 준비해야 할까 하는 조바심.
다양한 감정이 뒤섞인채로 부장님의 마지막 퇴근을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