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 저 무대에 설 수 있을까

by 솔의눈

어제 디지털마케팅서밋에 다녀왔다.


입장하면서 이름표를 목에 걸었다. 회사명, 이름, 직급이 인쇄되어 있었다. '또 어떤 회사에서 왔을까?'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름표에는 이름이 가장 크게, 회사 이름은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티나지 않게 곁눈질을 했다. 누구나 이름만 말하면 알법한 회사들의 이름이 많이 보였다. 현대자동차, LG전자, 삼성전자. 제일기획이나 이노션같은 광고대행사에서는 아예 단체로 왔는지 같은 회사 이름표를 한 무리가 우르르 지나다녔다. 내가 한때 가고 싶었던 회사 이름표를 단 사람도 보였다. 말을 걸어볼까, 명함을 건네볼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혼자 자리로 돌아왔다. 조금 초라해진 기분이었다.


그래도 강연이 시작되자 마음이 달라졌다.

김난도 교수는 말했다. AI를 잘 쓰는 인간이 AI를 잘 못 쓰는 인간을 대체한다고 했다. 마케팅을 원래 잘하던 사람이 AI를 쓰면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지지만, 못하던 사람이 쓰면 오히려 의존도만 높아진다는 MIT 논문 이야기도 했다. 좋은 프롬프트보다 중요한 건 결국 '당신이 그 일을 잘 하느냐'라는 것이다.

파리바게뜨 마케팅 본부장은 입사 2년 7개월 만에 1200억 매출의 제품을 런칭한 이야기를 했다. CJ제일제당 공채 1기 출신 작가는 "기획의 성공은 질문의 밀도에서 나온다"고 했다. CJ온스타일 팀장은 콘텐츠를 마케팅 소재가 아닌 비즈니스 자산으로 재정의한 이야기를 풀었다.

강연자들은 모두 자신이 만든 브랜드의 성과를 무대 위에서 발표했다. 듣는 내내 심장이 뛰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었다. 마케팅이 좋아서 이 일을 시작했던 20대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업계에서 난다긴다하는 선배의 특강을 보며 꿈꾸던 학부생 시절이 생각났다.

동시에 씁쓸했다. 내가 20대였다면 앞으로 시도할 기회가 훨씬 많이 남아있을 텐데 지금의 나는 30대 후반 과장이다. 도전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직 '나는 이런 브랜드를 런칭했어요', '이런 성과를 냈어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 그래서 이력서를 쓸 때마다 없는 성과를 있어 보이게 포장하느라 얼마나 애를 썼던가.


행사장을 돌아다니다가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첫 직장 입사 동기였다. 10년 만이었다. 이제 두 아이 아빠가 됐다고 했다. 여전히 마케팅을 하고 있다는 말에 괜히 반가웠다. 인사하고 명함을 주고받고 헤어졌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같은 업을 붙들고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 묘하게 위로가 됐다.


집에 오는 길에 트레바리 독서클럽을 신청했다.

대학원을 생각했던 것도 사실 지식보다 네트워킹이 더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업종,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오늘 행사장에서는 말 한마디 걸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이런 소규모 모임에서 먼저 말을 건네는 연습부터 해봐야겠다 싶었다.

심장이 뛰는 느낌을 오래 유지하고 싶다. 도전할 기회가 많지 않다고 느낄수록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