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외적으로' 다이어트 중이다.
"네?! 뺄 살이 어디 있다고.."
"곧 수영장 갈 일이 있어서요"
다이어트를 선언하면 자동반사처럼 뒤따라오는 예의상 리액션에, 주말에 수영장을 가야 해서 노출을 대비해 부기라도 뺄 생각이라며 말을 더했다.
사실 진짜 다이어트를 하지 않은지는 꽤 됐다. 어젯밤에도 반건조오징어에 버터를 한 덩어리나 올려 에어프라이어에 돌려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어트 중'이라고 선언한 것은 '나 홀로 점심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좋은 핑계이기 때문이다.
"미진 대리는 왜 맨날 밥을 안 먹는대요?"
"점심때 일이 있나 보더라고요"
'밥보다 낮잠'이라며 매번 점심식사에 빠지는 재무팀 미진대리를 두고 팀장님이 내게 물은 적이 있다. 그녀의 속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지만 차마 솔직하게 '편하게 쉬고 싶은 거죠'라고 말하지 못하고 적당히 둘러댔다. 하지만 윗분들은 '동료들과 소통의 장'인 점심식사에 빠지는 것이 탐탁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점심시간에 근처 카페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내겐 큰 즐거움이다. 어제도 볼일이 있다며 슬쩍 빠져나와 혼자 카페로 피신을 갔다. 그런데 이런 일탈이 반복되니 점심 멤버들이 '왜 밥을 안 먹냐'라며 근심 섞인 추궁을 하기 시작했다. 매번 '볼일이 있다'라고 말하기도 민망했다. 그래서 아예 중장기적으로 식사에 불참할 수밖에 없는 합리적인 이유를 생각해 냈다.
바로 다이어트.
뺄 살이 없다, 무슨 다이어트냐 볼멘소리가 나와도 '다이어트 중'이라고 하면 모두가 암묵적으로 '그럼 밥을 안 먹는 게 당연하지'하고 넘어가는 분위기다.
이보다 간편하고 깔끔한 핑계가 어디 있을까.
마침 어제부터 팀원들끼리 '근무시간에 간식 먹지 않기' 챌린지를 시작한 터라 알리바이는 더욱 완벽해졌다.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안면을 트고 대화하는 게 회사생활에서 꽤 중요하다는 점은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매일 소통하는 건 좀 피곤하다. 가끔은 법정휴게시간을 진짜 휴게시간으로 보내고 싶다.
하지만 길면 꼬리가 밟히는 법. 다음 주에는 점심식사에 참여해야 할 것 같다.
다이어트는 언제든 그만두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