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의 경험에 '소중함'이라는 태그가 달렸다.
#나를 찾아가는 기록들3
2023. 09. 28
내겐 언제나 다른 양상으로 면밀하게 관찰해야지만 보이는 다양한 모습의 에고가 있다. 어떤 녀석은 너무 강렬해서 아주 오래 전부터 관리를 해야 했던 녀석도 있고, 열심히 깎아 내려 하지만 또 다시 얼굴을 들이미는 그런 류의 에고도 있고, 살아가면서 새롭게 생겨나는 에고도 있다.
사소한 행동을 스스로 절제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있을 때, 특히 그런 약한 시기에 녀석들은 금방이고 얼굴을 들쑥들쑥 내비치는데, 요즘 스스로 자주 발견하는 에고들이 바로 이 녀석들이다. 눈에 빤히 보이면서도 조절이 되지 않는 것이, 항상 내뱉고 바로 부끄러워지곤 한다. 힘들 때에는 어떤 스탠스로 있어야 그 녀석들을 잘 통제할 수 있을지 요즘 새로운 고민이 생긴다.
한편 아주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최근에서야 깨닫게 된 새로운 모습의 에고가 있는데, 이 녀석은 바로 위 소제목과 맥락을 함께한다. 에고이기도 하고, 겸손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일, 누구든 할 수 있는거 아니야?'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잘못된 생각이랄까. 겸손함이라는 양의 감정이 섞여 있어 빠르게 캐치하지 못했던 야박한 마인드셋이기도 하다.
캠퍼스타운 멘토링 사업에 참여하며 네 개의 스타트업 대표님들과 긴밀히 연락을 주고 받았다. 진단시트를 통해 사업 현황과 애로사항에 대해 사전 전달을 받아 1회차 멘토링을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오랜 시간 플레이어로서 고민한 깊이와 너비를 간접적으로 들으며 각 팀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이 무엇일지 오래간 고민 했다. 린스타트업과 관련한 기본적인 사업 마인드셋과 방향성에 대해 왈가왈부 하기에는 모두 고민의 깊이와 시간의 차원이 달랐다. 그 과정에서 뱅크샐러드에서 일했던 경험을 떠올렸고 그 도움을 많이 받으며 다음 멘토링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뱅크샐러드에서의 경험이 참으로 값진 경험이었음을 나는 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떠올렸다. 아, 그 경험을 가벼히 여긴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다만, 느낌이 조금 다르달까. 나는 경험을 대할 때 '이 일, 누구나 할 수 있는거 아니야?' 하는 생각을 해왔던 것 같다. 어떤 일을 잘 해낼 때마다 나는 '이 일, 특별한 일은 아니잖아?'하는 생각이 오랜 훈련으로 다져진 이상한 모습의 '겸손'이기도 하였지만, 겸손의 가면을 쓴 교만이기도 하였던 것 같다. '교만'이라는 녀석을 나는 나도 모르게 열심히 키워나갔다. 그런 의미에서의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다른 일, 새로운 경험'을 찾아 헤맸다.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은 없다. 그러니 목적지도 없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길을 잃었던 것은 사회적 기준을 좇아 목적 없이 표류했기 때문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이렇게 드러내기도 부끄러운 나만의 요상한, 하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이상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도 크게 기여하는 것 같다.
지난 월요일, 멘토링 사업의 결과보고서의 최종본을 정리하고 마무리하며 잠시 추억과 생각에 잠겼다. 뱅크샐러드 CX 리서처로, 업계 선배들이 짜놓은 탄탄한 FGI, IDI 질문지를 접한 것, 확보된 수많은 로그데이터를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견을 받고 싶은 유저 대상 브레이즈 설계를 하던 것, 설문 대상 선정을 위해 스크리닝 목적의 설문트리를 설계하고 익히던 것, 우리가 검증코자 하는 가설을 위해 사용성 테스트 질문지를 설계한 것, 피쳐 개발 및 개선을 목적으로 진행한 수많은 사용성 테스트 및 유저 인터뷰, 만나고 소통하였던 수많은 고객들, 경험한 다양한 리서치 내용들과 그 모든 것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접하고 배우고 공부하고 실전에서 경험할 수 있던 그 환경이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그 시간, 그 곳에서만 할 수 있던 특별하고 소중했던 일'로, 이제는 좋음을 넘어 애호의 대상으로 느껴진다.
이번의 아하 모먼트에 덧붙여 지금 경험하고 있는 나의 환경, 업무 내용과 언제나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영감을 주고 이끌어주는, 함께하는 사람들에까지 폭넓은 감사함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익숙함과 당연함이 짙어질수록 겸손은 희미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예전에 썼던 독후감 중 '익숙한 것들을 흔들어 버려야 한다'고 했던 내용이 떠오른다.
가끔은 꼭 시간을 내어, 내게 정말 소중하지만 익숙해져 버린 것들에 대해 적고 그것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지며 그들을 대하는 나의 마음 가짐을 한 번씩 거세게 휘저어 원점으로 돌려놔 버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