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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스쿨 김영학 Sep 28. 2018

나는 나를 감당할 수 있을까

Work&Life Balance 대신에 hope to life를...

대부분 스스로를 '감당할 수 있다'라고 믿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원인은 거의 나와 주변의 여러 요소와의 회색 지대 속에 나름의 중심 잡기의 실패로부터 나타난 결과이다.


우리의 삶은
본래 갈등 투성이다
돈이 많아 아무거나 다 살 수 있다면, 최소한 쇼핑 선택을 위한 자아 분열에 가까운 갈등은 없지 않을까

현실 속 이상과의 끊임없는 갈등, 혹은 남들이 바라는 나와 본연의 나 사이의 갈등, 조직에서 바라는 모습과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 등 다양한 갈등 국면에서 늘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킬 수 없기에 100%의 완벽한 행복을 늘 놓치고 산다.


여기서 보이는 반응은 두 가지, 달성 불가능한 행복을 포기하지 않고 추구하는 사람과 반대로 일부만 포기하고 몇몇의 행복은 꼭 쟁취하려는 이들,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행복 자체를 내려놓고 사는 이들.


이직스쿨을 찾아오는 이들 중 대다수가 위와 같이 자신의 삶, 그 속의 일에 대한 충분한 행복감을 가져보지 못했거나, 과거에는 가졌지만 현재는 누리지 못하고 있어 이를 되찾기 위해 찾아온다. 이런 분들에게 드리는 질문이 그 일의 "최초 선택 시에 무엇을 고려했는지" 묻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일을 통한 자신의 성장 가능성을 고려한 이들은 거의 없다. 그저 눈에 보이는 조건만을 좇아서 해당 직장에 들어갔거나, 어쩌다 보니 그 일을 운명처럼 시작하게 됐고, 생각보다 너무 쉽거나 어려워서 적응하지 못하고 새로운 일을 찾는 것을 반복하게 된다.


물론, 병가지 상사(─兵家─常事)하면 그만이지만, 그것이 실패가 아닌 실수라고 여기면서 불행의 반복이 시작된다. 실수를 계속 반복하는 것이 사람인지라, 같은 실수를 또 하면서 자신의 삶 자체를 불행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다음 선택에도 이전과 똑같은 잣대로 바라보고 선택하면서 결국 같은 선택을 두 번하게 되는 꼴이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늘 실수에 대한 원인을 남 탓을 하거나, 또는 '오답 체크'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갈등을 먼저 겪은 이로부터 이야기라도 들었으면 낫지 않았을까.




삶의 성장 속 갈등은
타인과 나 사이에서 벌어지지만,
결국 답은 '나'이다


삶 속 갈등은 전부 각자가 원하는 성장의 방향에 있다. 단, 그 성장이 대부분 누군가와의 경쟁에서 승리해야만 스스로 쟁취했다고 여기기 때문에(일명 사다리 걷어차기),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사고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시험에서 만점을 받으면 좋아했다. 입시부터 취업까지 게임의 룰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믿었고, 그렇기에 만점을 위해 노력했으며, 나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이보다 적어도 뛰어나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 경쟁을 의심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런 순간이 일시적 희열감을 준 것은 분명하지만 인생의 행복과는 큰 관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내가 얼마나 원하는 분야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는지가 더 중요했다. 이런 부분에서 타인은 일시적 자극을 주는 대상이었지, 근본적 동기부여 요인으로 작용하지 못했다.

졸에서 왕으로 이끄는 것은 남도 아닌 나라는 평범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생각 외로 행복이 '자기 주도성'에 있었고, 단순히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닌 이미 선조들의 다양한 연구로서 입증되었다는 사실도 함께 깨달았다. 다윈의 진화론 포함, 인간의 생존을 목적으로 한 성장에 포함된 활동 등에 공통적 요소가 곧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임을 알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많은 이들이 자신이 처한 현실과 꿈꾸는 이상 가운데에서 갈등한다. 스스로가 처한 현실에 불만족하지만, 그 현실이 녹록하지 않아서 이상을 바라보기에도 버거운 것이다. 잃어버린 달성 불가능한 이상, 특히 남들과 비교해서 더욱 높은 단계를 추구하던 이의 상대적 박탈감이 연속되면 패배감을 갖게 된다.


기업으로 따지면, 리더가 조직의 목적이라고 이야기 한 내용이 사실은 리더 자신의 목표였고, 이를 위해 함께 일하는 부하직원들을 닦달하여 목적 달성을 강요하고, 달성하지 못하면 자신이 아닌 부하직원 탓을 돌리는 것을 말한다.  


결국, 갈등의 대상이 남이 아닌 나와의 갈등으로 바뀐 이후로는 경쟁 상대는 '어제의 나'가 되었다. 남과의 비교는 잠시 빌리는 것일 뿐 더 이상 Main Game이 아니다.


물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직접적 경쟁으로 견주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적어도 어제보다 오늘 더 행복하기 위해 오늘 얼마나 더 내가 바라고 원하는 활동 여부에 따라서 내 행복이 결정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양한 갈등 상황 속
나만의 기준 잡기
특히, 진정한 일과 삶의 균형이란
내가 바라는 모습에 대해 구체화 해본 적이 있는가

첫 번째 단계는 "내가 바라는 현실적인 모습"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막연하게만 느껴진다. 대충 꿈(Dream)이라는 이름으로 유년 시절에 생각해 본 적 있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는 특별히 신경 써본 적도 없고, 일(Job, Career)과 연결 지어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삶 전체를 관통하지 않고, 우선 일만 바라보자. 그 일 속에서 내가 바라는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조건 등을 구체화시켜보는 것이다. 단, 그 조건을 눈에 보이고 쉽게 비교 가능한 조건부터 구체화하기 어렵지만 막연하게 바라는 것까지 여러 관점에서 접근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직장도 "나는 어떤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싶은가"라는 물음을 스스로 던져 보는 것이다. 당장 보이는 것은 주변 동료들의 부정적 모습이겠지만, 그 보다는 긍정적인 부분에 대한 세심한 관찰을 통해 「내가 바라는 행동을 하는 순간의 합이 더 많은 동료」의 특성을 발굴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함께 일을 통해서 보여주는 내 모습 중에 최대한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 보여주기 싫은 모습을 구분해보자. 단, 보여주고 싶은 모습에 집중해서 나와 주변 동료들 모두가 만족하는 내 모습이 무엇인지, 그 모습을 지속적으로 나타내고 발전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 등이 필요한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예전 조직에서 일을 할 때, 나도 동료들도 회의 및 각종 연단에 서서 사람들을 이해 및 설득하는 모습을 가장 높게 평가했다. 그래서 이러한 모습에서 더욱 강력함을 드러내기 위해 기회를 엿봐서 다양하게 시도했고, 특히 비즈니스 및 마케팅 영역을 특화시키려고 했으며, 현재는 어떤 자리에 가도 떨지 않고 말할 수 있을 수준이 되었다.


세 번째는 일의 구체적 성격과 속성을 대변할 수 있는 산업 속의 전문가 집단을 표방하는 것이다. 「세상에 새로운 비즈니스는 없다. 단, 새로운 브랜드만 있을 뿐이다.」라는 말처럼 포함된 시장 속 전문가는 어디든 존재한다. 이제 막 촉발된 사업이라고 해도 최초 그 일을 만든 사람이 있기에, 그들처럼 되거나 그들에게 어느 정도 인정을 받는다면 분명 잘하고 있다는 신호로 봐도 충분하다.


예를 들어, 현재 '이코노믹리뷰'에서 쓰고 있는 "직장에서 살아남기" 전문가 칼럼도 위와 같은 활동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한 모임에서 존경하던 대표님으로부터 빈말인지 모르지만, 쓰고 있는 칼럼 재밌게 보고 있다는 이야기는 그날 마신 술보다 나를 더 붕 뜨게 만들었던 것을 보면, 스스로가 전문가가 되려고 하는 노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경험이었다.


네 번째는 일을 둘러싼 내 삶(Life)의 모습 속의 행복의 요소를 찾아보는 것이다. 일과 삶은 분리할 수 없고, 일은 온전히 내 삶을 지탱하는 하나의 축에 불과하다. 일이 내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건강한 내 삶을 일구기 위해서 필요한 여러 조건 등을 위와 같은 형식을 빌어 스스로가 정한 행복을 기준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정한 '사람답게 살기 위한 조건' 등을 설정하고,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소확행'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일 이외의 것 중에 중요한 것의 우선순위를 메기고, 각각의 요소들이 어떤 상태가 되어야만 자신의 행복 지수가 감소하지 않을지 나름의 경계선을 그어놓는 것을 말한다.


다섯 번 째는 위 둘 사이의 나름의 균형점을 시소 사이에서 끊임없는 비교가 아닌, 거시 및 중장기적 입장에서 재평가해보는 것이다. 평가의 기준은 자신이 바라는 삶 속의 모습을 기준으로 하루, 일주일, 한 달의 삶을 돌아보는 것을 말한다.

하루하루의 삶을 보기 이전에 우선 삶의 방향성부터 보고, 삶 속에 일을 포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는 삶 속에 일이 포함된다는 가정하에, 스스로가 정한 행복의 컨트롤이 가능한 범주 안에서 일과 삶 사이에 '꼭 해야 하는 활동(must do)의 꾸준함'을 확보하는 것으로 당연히 Life과 Career를 평행 선상에서 보는 것을 말한다.


결국, Career(일)를 삶(Life)의 관점에서 조금 더 길게 바라보고, 매일같이 있어야 하는 활동은 삶 속에 추구하는 우선순위에 맞춰서 결정하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삶을 위해 매일 같이 우리는 어떤 활동을 해야 하고, 구체적으로 이 활동 중에 미래를 위한 투자 활동을 일부 포함하는 것이다.


Work & Life Balance의 균형, 스스로 나를 품기 위해서는 이 둘의 합이 필수적이다. 과연 지금의 현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가능한지는 현재로서는 가늠할 수 없다.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가 맞는지, 행복한 이가 부자인 것인지는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신의 성장을 꿈꾼다.


분명한 것은 대부분 누군가 이미 걸었거나, 함께 걷는 이가 있을 뿐이지, 나 또한 그러한 길을 걷게 되면 행복할지 말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모습을 위해 경쟁적으로 결정하기보다는 스스로가 품을 수 있을 만큼의 행복을 위한 '나만의 결정'이 필요한 시대이다.


또한 자연스러운 나만의 성장을 위해서는 타인은 그저 참고의 대상일 뿐이다. 타인과 비교하여 달성 불가한 Work & Life Balance를 무작정 좇기보다는, Hope to Life로서 삶을 진중하게 바라보고 관철하며 정진하는 것이 오히려 행복한 삶에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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