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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스쿨 김영학 Oct 02. 2018

담당자가 전문가가 되는 방법

How to에서 Why to로 사고의 확장

이 이야기는 제가 겪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도 전문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조직 안에서 이루기에는 제가 다녔던 조직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단, "어떻게 하지 말아야 하는가"의 방향성은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제 삶 속에서 실천하고, 이직스쿨을 오신 분들과의 화학적 작용을 통해 조금씩 완성 중입니다. 이 글은 전문가를 꿈꾸는 분들을 위한 일종의 '중간 보고서'와 같습니다. 




시작은 담당자였지만, 

모두들 전문가를 꿈꾼다. 


모든 이들이 전문가를 꿈꾼다. 기업에 처음 들어가서 맡게 되는 처음의 차리는 '담당자, 설레는 마음으로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한다. 서툴더라도 최대한 이전의 누군가가 하던 데로 따라서 하고, 선배들의 지도 아래 기쁜 마음으로 일을 받아서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조금씩 희망을 보지 못한다. 일을 통한 자기 성장을 위로 갈수록 느끼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매번 하는 비슷한 일의 반복과 연속, 지금 하는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채 시키는 데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잃어버린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을 하면서 느끼는 절박함은 일을 나에게 주는 리더가 보여주는 모습으로부터 온다. 리더는 나에게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설명 없이 그저 지시와 명령으로 일관한다. 


그러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지금 하는 일을 통해서 기왕이면 무엇이 될지 모르지만,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얻고 싶다. 흔하디 흔한 성경 구절처럼 시작은 미약할지언정 끝은 창대하고 싶다.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면 되나요?


기업에서 들어가서 우리가 맡게 되는 직무는 우리가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을 가리킨다. 물론 모든 직무가 '매뉴얼'화 되어 있어서 해당 기능 만을 수행하면 되는 간단한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 직무 정의만 나와있고, 그 직무를 수행하는 방법은 누군가로부터 전수받는다. 


전수도 열심히 받고, 그걸 내 것으로 만드는 것도 열심히 하면 충분히 먹고살 수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그랬고, 이전에 다녔던 직장에서 십여 년 앞서 입사하신 부장님이나 이사님은 최소한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끊임없이 '반복된 단련'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더욱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고, 그걸 통해서 누구보다 맡고 있는 일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자 노력했다. 마치 시대의 부름을 받고 격변의 시기에 갑자기 등장한 영웅인 것처럼, 조직과 리더에게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내 일의 전문성을 통해 보여주려고 했다. 


그래서 더욱 주어진 역할에 매진했고, 그 결과로 전임자 포함 그 일로부터 가장 전문성 있는 담당자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기쁘지 않았다. 그저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빨리 배워요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싫어서 계속해서 조직 안팎으로 다양한 일들을 벌렸던 것 같다. 내 실력을 증명할 수 있는 길은 그저 새로운 일을 완성도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이전 세대보다 지금의 세대들은 이른바 유사 이래 최고의 스펙이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다. 물론 기성세대가 보기에는 여전히 햇병아리 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어떤 세대보다도 많이 배웠고, 다양한 루트를 통해 얼마든지 원하는 정보를 취할 수 있고, 이를 활용하여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 수도 있다. 


크고 작은 유의미한 프로젝트를 펼치고, 때로는 창업에 가까운 수준으로 일을 하기도 했다. 돈이 되건 안되건 재밌어 보이는 일은 주어진 데로 하기 시작했고, 나이에 비해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본다. 일일이 나열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지금 앞둔 결혼을 뺀 나머지 경험에 있어서는 담대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아마도 누구보다 '빨리 배워야 한다'라는 일종의 강박이 작용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운동을 포함 각종 활동에 특별한 재능을 스스로 확인한 적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책상에 앉아서 생각하고,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논리와 이를 전달할 적절한 매개체를 개발하는 것뿐이었다.  




줄어들지 않는 불안감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안감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회상해보면, 그건 스스로가 느낀 불안감에 정면으로 대응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편 이기도 했다. 조직에 불만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당시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내 일에 대해서 적어도 조직의 테두리 안에서 '잘한다'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안감은 줄지 않았다. 피부로 다가오는 느낌은 나보다 앞선 경력을 밟으신 분들처럼 살면 그분들만큼 사는 것은 꿈도 못 꾼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점차 불안해져만 가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중심을 잡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나는 그저 힘없는 사람일 뿐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선배들에게 매달렸지만 답은 보이지 않았다. 그분들에게는 죄송스럽지만, 당시에도 지금도 전문가처럼 비추어지지 않았다. 답정너 식으로 '내 눈에만 전문가'로 보였고, 그 약빨 또한 수개월이 지난 후에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나보다 먼저 그 길을 걸었던 선배도, 이를 지탱해준 비즈니스를 만든 조직도, 그 누구도 불안감을 부추기기만 했지, 오히려 그 불안감을 해소시켜주지 못했다. 


전문가가 되기 위한 것이 Vision이 아닌 Dream에 머무르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는 나 자신이 비참했다. 




사고의 전환 또는 확장이 필요했다. 

How to에서 Why to로


군생활을 상급 부대에서 작전 및 교육 행정병부터 최근의 직장까지 십수 년 동안 조직에 있으면서는 잘 몰랐다. 담당자이기 때문에 주어진 목표를 어떻게 하면 조직에서 바라는 방법 혹은 리더가 바라는 모양새로 효율적으로 재창조할 것만을 고민했다. 


담당자로서의 생각의 틀은 늘 How to에 국한되어 있었고, 그걸 어떻게 효율적으로 해내는가에 따라서 내 성과와 조직 내 전문성이 입증되었다. 지금은 당연한 Why와 관련한 질문은 터부시 되었다. 


자연스럽게 운영의 묘를 획득하여 일의 효율성을 얻는 것은 쉬웠지만,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물론 그만한 권한이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늘 있을 법한 '미봉책'에 불과한 설루션을 내놓으면서 스스로의 한계를 체감했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연차가 쌓이면서 그것이 변하지 않고 굳는 것이었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생각의 변화가 필요했다. '방법론'만을 만드는 것보다는 그 방법이 왜 필요하고, 그것으로 인해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 쓰고 있는 방법 보다, 우리 비즈니스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Why라는 질문 류의 일상화


이른바 '진짜 전문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늘 Why라는 질문부터 스스로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먼저 그 길을 걸었던 전문가라 불렸던 분들의 패턴이 보였다. 그들은 '설명'에 능숙했고, 그 설명이 설득력을 지니면서 전문성을 획득했던 것 같다. 


우선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했고, 그 설명을 위해서는 어떤 사안이든지 'why'라는 질문으로부터 출발이 필요했다. 설명을 통해 증명할 수 있어야 했고, 증명한 내용을 통해 실제 실현 가능함을 보여줘야 했다. 그저 시키는 데로 일을 하는 담당자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시간은 흘렀고, 지금은 조직에 속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매 순간 다가오는 여러 이슈와 이를 들고 오는 이들을 향해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왜 그 일을 그렇게 하셨다고 생각하시나요?", "왜 스스로가 그 일에 적임자라고 보시나요?", "입사를 원하는 기업을 어떤 기준에 의해 선정하셨고, 그 기준은 왜 그렇게 잡으셨나요?" 등의 질문을 통해 이직스쿨에 오시는 분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증명도 할 수 있어야 진짜 전문가


하지만, 설명만으로는 부족했다. 논리적으로 흠결이 없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실질적 증명이 필요했다. 이른바 '입 전문가'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스스로 증명할 수 있어야 했다. '증명의 시대' 무엇이든 증명을 통해 스스로가 가진 전문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문서든 실제 만든 제품이든 서비스이든 실물이 없이는 스스로가 가진 전문성을 드러내기 쉽지 않다. 물론 조직에서 쌓은 실제 결과가 있다면 천만다행이겠지만, 만약 없다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시도는 기본이다. Why to로부터 출발하여 How to로 이어지는 사고의 흐름 속에서 전문성의 범위와 깊이를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담당자로서 한계는 있을 수 있다. 제한된 권한과 책임 속에서 다양한 역할을 요구하는 부당한 환경이 다소 발목을 잡지만, 그럴수록 원론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리더에게 맡고 있는 역할의 본질에 대해 물어봐야 한다. 이를 통해 진정한 가치를 얻고, 이를 바탕으로 설명과 증명을 넘어 '실증'의 단계로 진입해야 한다. 




담당자로부터 전문가가 되려면
'일하는 방법론'으로부터 
'일의 존재론'을 깨우치기 위해
Why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저 전문가가 되고 싶었고, 그 전문성을 입증하기 위해 다니고 있는 회사에 오래도록 근무해야 했고, 이 모든 것이 '경력이 곧 실력에 비례한다고 믿었던 시대'는 자연스럽게 저물고 있다. 전례를 참고하여 산다면 괜찮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자연스레 퇴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실력이 곧 성과를 만들고, 그 성과를 비슷하게 반복적으로 만들 수 있을 때 개인들이 차별화된 전문성을 갖는 시대'로 점차 변하고 있다. 경력에 상관없이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이들이 더욱 많이 나타나는 것은 이를 반증하는 여러 증거이다. 


과거의 전문가(리더)는 설명하는 사람으로 why to로부터 How to를 뽑아내는 이들이었다. 그로 인해 수많은 담당자를 만들어냈고, 그들은 Why to를 잊은 채 How to에 집중하는 것을 이전 전문가 그룹으로부터 강요당했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새로운 전문가, 담당자로 부터 전문가로 나아가는 이들은 How to로부터 Why to를 발견해내고, 여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증명까지 하는 이들을 지칭한다. 


새로운 전문가 그룹은 늘 일하는 방법론(how to)으로 부터 스스로 일의 존재론(why to)을 깨우치기 위해 나 그리고 남에게 질문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적어도 주변에 지켜보거나 교류했던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얻은 Impression은 그들이 일에 대해 탐구하는 태도였지 결코 지식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담당자는 시키는 데로 최선을 다해 리더와 조직이 바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이들을 지칭한다면, 전문가 혹은 이를 표방하는 이들은 스스로 일을 만들고 그 일을 통해 나 그리고 조직이 하나 되어 일을 하도록 만들어가는 이들이다. 포기하지 않고, 실질적인 증명을 만들어 가며 완성도를 높여간다. 




P.S

이를 위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마케팅과 비즈니스의 본질을 탐구하고 전파하는 일을 여러 방법을 통해 계속 벌이고 있다. 또한 이직스쿨을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적극적으로 이런 방향으로 코칭을 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 이런 영향으로 유의미한 변화를 겪은 이들이 나타나면서 보람을 찾고 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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