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자율 사이, 적어도 점심 '시간' 만큼은 냅둬요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한다. 그리고 마주한 풍경은 낯설었다. 어떤 수업을 듣고, 하루 종일 어떤 일을 하며, 보낼지 스스로에게 자유가 주어진다. 그렇게 마주한 생소한 자유에서 우왕좌왕하는 이들도 있지만, 난 신이 나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곧 직장인이 되고, 그 자유는 다시 누군가가 짜 놓은 시간 속 굴레에 들어간다. 그것도 '밥 먹는 것까지' 말이다.
9 to 6 or 10 to 7
그 사이
「점심시간」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등교)을 한다. 아침을 먹고 안 먹고는 그때마다 다르지만, 늘 같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점심시간'이다. 정확하게는 '점심' 시간이 아니라, 점심 '시간'이다. 확실히 이것의 뉘앙스는 매우 다르다.
① 같은 메뉴의 음식을 같은 시간대에 즐기는 것, ② 모두 열심히 일했으니 그 시간만큼은 식사와 휴식을 하라는 것, ③ 일단 모두가 조직(장)이 정한 대로 따르는 것, ④ 늘 그 시간에 '점심'을 먹어왔으니 그대로 지키는 것 등 어떤 이유든 관계없다.
변하지 않는 사실은 그 시간에는 다른 행동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속된 그룹 모두가'밥을 먹으러' 간다. 학교에서는 누군가 정해놓은 메뉴대로 사육(?)을 당한다. 그냥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다. 그저 이를 묵묵히 따르는 수밖에 없다. 모두가 그러기 때문에 나도 그래야 한다. 그리고 아직 어른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단다.
그런데, 직장인이 되면 '어른에 어울리는 자율'이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냥 모두가 그 시간에 '점심'을 먹기 때문에, 점심시간이라고 명명하고, 그걸 그대로 따르는 것 같다.
심지어 모두가 함께 밥을 먹어야 한다고 해서, 규모가 큰 조직은 '구내식당'을 마련하여 거의 학교와 같은 시스템으로 직원들을 사육한다. 그 이외에는 팀 단위로 가서 가자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이 가장 저렴한 메뉴를 시키는 불상사가 나타난다. 그리고서는 '편하게 먹어' 이런 소리를 늘어놓는 것이다.
누가 정한지는 모르지만,
점심은 꼭 매일같이 챙겨서 먹어야 하는가.
먹는다면 모두 다 같이 먹거나, 같은 메뉴로 먹어야 하는가.
다 큰 성인인데, 타인의 끼니까지 걱정하는 것인가.
대체 왜 그러는 건지 알 수 없다.
왜 꼭 점심을 먹어야 하나요?
먹는다면
누구와 무엇을 먹어야 하나요?
누가 정한지도 모른다. 그저 옛날부터 그 시간에 '점심'이라는 것을 먹었고, 그러니까 점심을 먹어야 한다고들 한다.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른 채 혹시 그냥 남들 따라서 하는 대중의 심리가 반영된 행동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직장인은 점심 메뉴에 대해 고민한다. 직장인의 5대 고민 중에 '점심 메뉴'가 들어가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간혹 시트콤을 포함한 각종 예능에서 '점심 메뉴'를 가지고 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먹고사는 것이 반 이상인 우리 현실은 모두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메뉴만 고민이 아니다. 양에도 고민이다. 분명 '점심'이라는 말에 어울리도록 '마음에 점을 찍는 수준'으로 먹어야 하지만, 늘 배부르게 빨리 먹고, 배부른 배를 부여잡고 인근 커피전문점을 향한다. 그렇게 1~1.5시간이 무의미하게 흘러간다.
그렇게 업무에 들어와서, 바로 일을 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그러나 우리는 로봇이 아니다. 점심시간 동안 잠시 식혀둔 '생각의 엔진'을 가동하기 위해 나름의 웜업(Warm-up)을 해야 하고, 이전의 집중을 넘어 몰입된 상태로 나아가기까지 많은 방해를 넘어 다양한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직장을 다닐 때, 이런 부분의 '비효율'을 경험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런 부분을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어떻게 해서든 빨리 점심을 먹으면, 그다음 일에 지장을 주고, 천천히 먹으면 쉬는 시간을 갉아먹는다. 그리고서는 '시간 통제'의 무의미함을 깨달았다. 그 시간을 통제하는 것보다는 기분 관리가 필요했다.
효과적 점심(휴식) 시간을 위해
개인의 시간 운용을 존중
아무리 직장인이라고 해도,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할 수 없다. 그래서 가장 쉬운 시간을 통제함으로써 그들의 관리 영역 또는 영향력을 넓혀간다.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을 통해 근무시간을 통제하고, 중간의 휴식시간을 점심시간이라는 이름으로 부여함으로써 과도한 업무시간을 상쇄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런 부분이 어찌 보면 가장 익숙하고, 효율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특수성을 포함한 다양한 변수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멈추고(Stop), 시작(Start)하는 것에 스스로의 결정권이 있다. 하지만, 이에 유연하게 대응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실무자 레벨에서 일을 하며 느꼈던 불편함은 늘 '시간에 좇겨' 일을 한 것이다. 점심시간 전(평균 3-4시간)까지 어느 정도의 일을 하고 나서 잠시 쉬고, 다시 퇴근시간까지 남은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공식적 브레이크 타임 때문에 그날그날의 일과 관련된 다양한 상황과 타이밍이 다르게 진행되는데, 무조건 일괄적으로 맞춰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불편했다.
그래서 직책(권한)을 갖게 된 후, 점심 '시간'을 폐지했다. 대신에 이를 '개인 휴식 시간'으로 명명했다. 주어진 근무시간에 해당하는 점심(휴식)시간을 하루에 1~1.5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단, 몇 가지 주석을 달아놓았다.
출근하자마자 사용할 수 있다. 단, 연차 및 휴가 등의 개념과 다르기 때문에 연결ㆍ사용 불가이다.
사용하지 않았을 경우, 퇴근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
사용하지 않았을 경우, 축적은 안되고 연차로 전환 사용이 불가하다.
사용 시간대는 제한이 없다. 근무 시간 내에 사용하면 된다.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시간에 무엇을 하든지 자유(식사, 운동, 사우나 등등)이다.
각자의 사용 시간은 늘 공유해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지 의사표현을 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모두가 함께 밥을 먹는다. 그 목적은 회의 또는 회식의 개념이다.
※ 이외에도 몇 가지 특수 조항들을 넣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생각나는 것은 여기까지 정도이다.
어떻게 가능했는가
#1. 업무 성과는 투입 시간 대비로 측정 및 평가할 수 없다
대부분의 업무가 '특정 시간'을 투입하면 나오는 결과물 또는 늘 정해진 루틴(Routine)이 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높은 집중력과 몰입도를 갖고 작성해야 할 것들이기 때문에 '시간'을 기준으로 밀도 있는 업무 또는 성과물을 꿈꾸기 어렵다.
#2. 정해진 시간에 자리를 지켜야 하는 일도 아니다.
고객과의 약속된 시간에 주어진 업무를 늘 해야 하는 일이라면, 당연히 시간에 의한 루틴도 계약에 포함된다. 병원, 은행, 관공서 등 약속된 서비스 시간을 준수해야 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일반 회사의 Back Office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해당 사항이 없다. 주어진 시간에 그 일을 하기보다는 '언제까지 각각의 일을 하는 것'이다.
#3. 개인이 가진 좋은 흐름이 중요하다.
언제 올지 모르는 '좋은 흐름'이 변수였다. 늘 주기(점심시간 앞뒤의 시간)에 맞춰서 오면 좋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점심시간(12-13시)에 온다는 것이 아니다. 정해진 루틴 속에 집어넣어도, 시시각각 변하는 좋은 흐름을 '시간'때문에, 정확히는 없어도 되는 통제 요소에 의해 망치기 싫었기 때문이다.
가끔이지만, 좋은 흐름을 이어가면서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에 도달하면 하던 걸 내려놔야 한다. 옆자리 동료 또는 팀원들과 의무감에 가득 차 밥을 먹으러 가야 했다. 늘 그런 분위기에서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일이 잘되어간다는 것, 효과 및 효율적 측면에서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4. 뚜렷한 목적의식을 기반으로 한 개인별 목표가 합리적으로 할당되었다.
조직이 가진 목적성을 모두 공감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각자가 해야 할 목표들을 연결하고, 이를 수시로 체크했다. 실제로 현업에서는 다소 삐걱거릴 수 있지만, 적어도 각자가 언제까지 주어진 일을 해야만, 조직의 성과에 기여할 수 있고, 직간접적 영향력의 크기를 인식한 이후에는 자연스러운 협력이 만들어졌다.
#5. 시간에 의한 통제보다는, 자율성을 극대화하여 책임감을 드높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조직이 개인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그래서 가장 쉽지만 어려울지 모르는, '믿고 맡긴다'를 몸소 실천했다. 단순히 '시간'의 혜택을 주었지만, 그들은 더 큰 책임감을 느끼고 조금 더 효과적으로 일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스스로가 더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해 몰입하고 실행하며, 그렇게 겪은 시행착오를 다시 현업에 도입하려고 노력했다.
시간에 의한
통제보다는
통제하지만, 관리한다고 하고, 관리한다고 하고 통제를 하기도 한다. 개인, 조직 모두가 그렇게 '시간'에 구애받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모든 일을 세세하고 쪼갤 수 없다. 또한 모두가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에 의한 통제는 또 다른 비효율 가져올 수 있다.
예를 들어, 같은 일이지만, A는 1시간에 하고, B는 2시간에 한다면 A가 더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만약 그래야 한다면, 그렇게 해야만 잘해야 하는 속성을 가진 일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꼭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물론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입장에서 효율성을 간과할 수 없다. 다만, 일을 디자인하고 분배하는 입장에서 효율성만을 강조할 수 없다. 그 보다 앞서 뚜렷한 목적에 의한 관리를 통해, 각자가 알아서 움직여서 목적(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따라서, 이를 일괄적으로 시간에 의해 관리하려고 하지 말자. 오히려 그것이 무분별하게 통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기업의 목적이라 볼 수 있는 고객 및 그들과의 약속이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통제 수단일지 모른다. 고객과의 약속이 기업의 목적 및 목표이며, 이를 지키기 위해 효과 및 효율적으로 일 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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