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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jay Dec 29. 2020

상처는 고통의 연장이 아닌 치유의 증거

개똥 철학자의 가출 (5)

스무 살 청년들은 밝고 활기찼다. 대학들은 이미 방학을 시작했는가 보다. 몇 개월 만에 돌아온 대학생들과 고향에 남은 친구들이 오랜만에 모인 듯했다. 예닐곱 되는 20살 동갑내기들은 서울에서 갑자기 여행 온 남자애가 신기한 듯했다.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동갑이니 말을 놓자고 했다. 머쓱하게 그러자고 했다. 2살 많은 청년들과 말을 트고 친구를 먹었다. 거짓말이 점점 눈덩이가 되어 일이 커질까 걱정이 됐다. 어쩌다 보니 충주에서 세 번째 숙박을 하고 있었다. 꼬리가 길면 밟힐지도 모른다. 다음 날 일찍 다른 도시로 떠날 계획을 세웠다.


월악산에서 만난 아저씨들의 주먹밥 때문이었을까? 두 번째 가고 싶은 곳을 정할 수 있었다. 치악산. 이름도 비슷한 그 산에 가보고 싶어 졌다. 치악산은 강원도 원주에 있었다.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원주로 향했다. 원주 역시 난생처음 가보는 도시였다. 원주에 도착하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이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들었던 뉴스에서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 했었다. 계획 없이 떠난 여행에 날씨 따위를 고려할 틈은 없었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우산은 챙겨 왔다. 일기장이 젖으면 낭패라서 큰 비닐을 반으로 갈라 등에 멘 가방을 덮었다. 그리고 작은 우산을 쓰고 원주 시내를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도심에서 돈 한 푼 없는 가출한 청소년이 갈 곳은 없었다. 빗줄기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어딘가 비를 피해야 했다. 지하상가였는지 지하도였는지 지하로 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비를 피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 몇 번째 계단이었을까? 낡고 오래된 계단에 고인 물에 발이 미끄러졌다. 크게 다칠 뻔한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몇 칸의 계단만 헛발을 디디며 위기를 모면했다. 미끄러지는 순간 아랫니와 윗니가 얼마나 심하게 부딪혔는지 잘못하면 혀가 잘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도의 숨을 내 쉬며 내려왔는데, 입 안에 뭔가 작은 알갱이가 걸리적거렸다. 이가 깨졌다. 조금 전에 이가 부딪혔을 때 위쪽 앞니 끝 부분 안쪽이 깨져 있었다. 크게 티는 나지 않았지만 평생 써야 하는 이가 부러진 것은 충격이 컸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인생 다 포기하고 가출했으면서 이가 조금 깨진 것은 너무나 속상해했던 내 모습이 참 우습다. 인생이 다 부질없는데, 이 조금 깨진 건 왜 리 의미 있는 것이었는지... 지금도 그 앞니는 치료를 하지 않고 살고 있다. 평생 이 관리도 잘하고 치과도 자주 다녔지만 잘 티도 나지 않아서였는지 치료를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치과 의사들도 내 앞니를 치료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혀 끝에 닿는 앞니 안쪽의 껄끄러운 느낌은 언제나 나를 그날 장맛비에 혀가 잘릴 뻔했던 그 아찔했던 순간으로 데려다준다. 내 몸에 여전히 남아 있는 가출의 흔적이랄까.


사람들은 누구나 몸에 뭔가의 흔적을 가지고 산다. 수술 자국, 누군가가 던진 돌에 맞아 머리에 난 땜빵 자국. 그리고 어떤 상처들은 왜 생겼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 보이지도 않는 마음의 자국들은 평생을 괴롭힌다. 내 몸에 남긴 이 상처들은 나를 아프게 했지만 나를 치유하고 성장시켰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마음 속 상처들은 왜 반복해서 나를 병들게 하고 또 다른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데 사용되는 것일까?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는 고통의 연장이 아닌 치유의 증거이다.
 

내 마음에 생긴 고통들과 상처들은 내가 성장하고 성숙해 가는 증거다. 그 흔적들은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힘을 가지게 된다. 내가 그날 장맛비 내리는 원주를 배회하며 만들었던 상처가 나를 성장시켰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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