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에 시계를 차고 나왔다. 2년전 생일 선물로 받은 중국제 스마트워치는 원래 자리를 잃고 오른손으로 넘어갔다. 원래 자리를 꿰차고 들어선 이 새로운 놈은 명품인가? ㅎㅎㅎ 깔끔한 새 시계처럼 보이지만 16년도 넘은 시계다. 인도에 처음갈 때 샀던 만원 짜리 전자시계는 일 년도 안돼서 고무 손목 줄이 끊어져 버렸다. 교체할 곳이 없었다. 일 년 만에 나온 태국 비자 여행에서 당시 형편으로는 거금(5-6만원)을 들여 이 시계를 샀다. 이후로 시계 줄도 서 너 번 교체했고, 당연히 배터리도 여러 번 교체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시계가 가지를 않았다. 수리점을 몇 군데 갔지만 오래돼서 못 고친다는 말만 들었다. 아쉬운 마음에 서랍에 고이 모셔 둔 지 수 년.
서랍을 열 때마다 제일 먼저 보이는 이 시계가 눈에 밟혔다. 내가 좋아했고 항상 내 몸에 붙어 있던 아이가 죽어 있는 것만 같았다. 시계를 뜯었다. 완전 소생 불가 하게 된다 한들 시도라도 해 봐야겠다 생각했다. 새 배터리도 넣어주고, 헐거워 보이는 부품에 텐션도 줘봤다. 그리고 하루를 기다려 본다. 처음엔 잘 가는 것 같다가 하루가 지나면 느려져 있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내가 뭘 건드린 걸까?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 지나도 시간이 느려지지 않고 잘 간다. 시계가 부활했다. 너무 오래돼 뒤틀려 버린 시계 뚜껑을 닫는데 또 한참이 걸렸지만, 여전히 잘 간다. 예수 부활의 기쁨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냐마는 하루동안의 부활의 기쁨을 누리기엔 충분하다.
새로운 것으로 더 효율적인 것으로 쉽게 교체해 버리는 세상이다. 이러다가 오십도 되기 전에 세상에서 나도 교체되어 버릴 것 같은 무서운 세상. 오래된 작은 시계 하나도 고쳐지니 새 것 이상의 가치와 기쁨을 준다. 우리 인간의 삶에도 잊혀지고 없어져 가는 귀중한 가치들이 있다.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 아니다. 함께 더불어 살았던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옛 것들이 다시 살아나기를 바래보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