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으로 23년차. 윗 층 태권도 학원의 쿵쿵대는 소리, 커다란 구령.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각종 질문, 아우성, 웃음소리. 학부모들과의 면담, 전화 응대. 창문을 열면 학원 차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가 내뱉는 부르릉 소리. 좋은 것이든, 듣기 싫은 것이든 온 종일을 '소리'에 노출되어 살아온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음악도 듣지 않고, TV나 라디오를 켜지 않고 살아왔다. 필요한 순간에 떠오르는 음악을 찾아서 듣고 꼭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를 찾아서 볼 때가 아니면 어떤 매체도 차단하며 살아왔다.
나에게는 정적이 필요했다. 그나마 내가 견딜 수 있는 건 클래식 음악이었다. 단조롭지만 깨끗한 피아노 소리,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바이올린 소리, 묵직한 첼로 소리 그리고 때로는 잘 어우러진 협주. 내가 음악에 대한 어떤 지식을 알지는 못하지만 내가 느끼고 받아들이는 그것에는 가사가 없었다. 가사가 없는데 감정이 읽히고 마음을 달래준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진짜 음악이었다. 스트레칭 삼아, 라는 명목으로 발레는 선택한 데에는 클래식 음악의 이유도 한 몫했다.
다른 운동을 많이 해보지 않아 특별히 비교할 만한 레벨은 못되지만, 발레야말로 그 무엇보다도 정직한 운동이다. 호흡 하나, 손끝 하나 흐트러지면 바로 티가 났다. 동작 하나를 제대로 익히는 것에 어떤 꼼수도 없다. 그냥 정말 안되면 될 때까지, 오늘 안되면 내일은 되겠지, 백 번 해서 안되면 이 백 번 하다보면 되겠지.
이런 최우직함으로 하나씩 하나씩 하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방법이 없는 것이 발레다. 그래서일까. 언어를 공부하고 언어를 가르치는 나의 직업과도 너무 닮아 있는 운동. 나는 그 정직함에 다시 한 번 매료 되고 있다.
부드러운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구부렸다 폈다, 손끝에 집중하는 나의 시선 하나까지 온전히 내 몸에 집중하는 그 시간은 어느 것과도 견줄 수가 없다. 그런 사이에 발레 원장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항상 제자리로 돌아오세요! 다음 동작을 나아가려면 반드시 제자리를 거쳐서 지나가야합니다.”
그 말에 나는 마법처럼 중학생 시절의 나를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다가가서 잘못된 옷 섶을 잡아주고 뻗친 머리칼을 넘겨주듯 어린 나를 찬찬히 살펴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나의 뒤를 볼 일이 없었다. 정확하게는 뒤를 살펴 볼 여유가 없었다. 나 스스로를 살피지 못하고 악착같이 달리기만 했다. 그 ‘악착같이’에는 방향이 없었다. 방향이 없는 무한 질주는 나를 지치게 만들 뿐이라는 걸, 그나마 젊음이 있었기에 여기까지라도 왔다는 걸 나이 마흔을 넘기고야 깨달았다. 다음 동작을 위해서는 반드시 처음 시작점을 거쳐서 바른 자세에서 다시 나아가야 한다. 그 연결 사이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 레슨 때마다 듣는 말이지만 휘청이는 나의 몸은 제 자리를 쉽게 잡아주지 못했다.
‘나의 제 자리는 어디였지?’
음악에 맞춰 동작을 하나하나 연결하면서 나는 발레가 내 삶에 던진 질문을 받아들고 몸도 마음도 중심잡기가 힘든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원래 나의 자리로 돌아와야만 새로운 동작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은, 덮어둔 상처를 다시 꺼내어 긁히든 패이든 정확하게 마주하고 방향을 다시 정하라는 아우성처럼 들렸다. 그런 날은 스트레칭 동작을 더 오래하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아이들이 잠든 새벽에 노트북을 열어 그 아우성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건강하게 흘린 땀이 몸을 개운하게 하는 것처럼 나의 고여있던 감정들을 몸에서 몰아내는 그 시간에 완전히 몰입했다가 마무리가 되고나면 그 바스라진 마음의 틈새가 정돈되는 느낌이다.
그렇게 하루 하루 늦된 취발러의 동작을 쌓아가면서 나는 뒤늦게 무릎을 펴고, 제 자리로 돌아오는 연습을 계속 하고 있다. 다시 굽어지고 다시 휘청이더라도 이제는 펴질 때까지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설 때까지, ‘될 때까지’ 하면 된다는 걸 깊숙이 알게 된 요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