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할아버지

나의 위그든 아저씨

by 아란

바삭한 밀가루 속에 달콤한 팥을 품고 있는 붕어빵은 겨울의 일등 간식이다. 오가며 붕어빵을 볼 때마다, 그리고 한입 베어 물 때마다 생각나는 분이 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살아오는 동안 가끔 내 지난 기억을 두드리는 분. 바로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 후문 옆 담벼락 모서리에서 붕어빵을 파셨던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쌍꺼풀이 또렷하고 눈썹이 짙었으며 코가 오똑하고 얼굴선이 날렵했던 분이었다. 어릴 땐 몰랐는데 커서 기억을 떠올리면 ’진짜 미남이셨구나!‘싶다.


그 당시 붕어빵은 하나에 100원이었다. 늘 모자란 용돈이었지만 학교를 오가며 붕어빵을 종종 사 먹었기에 할아버지랑 제법 안면을 트고 지냈다. 쉬는 시간에는 낮은 담장 너머로 손을 내밀어 붕어빵을 사 먹었다. 가끔은 붕어빵이 아니라 할아버지를 보기 위해 갔다. 아니, 사실 꽤 자주 갔다. 어릴 때 나는 소심하고 잘 울어서 친구가 거의 없었다. 또래들과 어울려 지내기보다는 혼자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며 보내는 시간이 많은 외톨이였는데 어쩌다 보니 붕어빵 할아버지랑 나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나는 단짝이 된 할아버지에게 종알종알 많은 얘기를 했다.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아주 시덥지 않은 얘기들을 제법 많이 나누었다. 할아버지는 낡은 라디오 하나를 작게 켜두고 붕어빵을 구우면서 나의 그 사소하고 별것 없는 얘기들을 하나하나 모두 들어주셨다. 엄마한테 혼이 나도 붕어빵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혼자 놀다가 심심해도 찾아갔다. 할아버지는 내 표정만 봐도 “엄마한테 혼났지?”하고 알아채셨고, 기운이 없어 보이면 “배고프냐?”하고 물어봐 주셨다. 붕어빵을 사 먹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할아버지랑 얘기하는 즐거움이 훨씬 더 컸다.


가끔 할아버지는 내게 공짜로 붕어빵을 주셨는데 나는 그 붕어빵을 한 번도 사양하지 않고 덥석 받아먹었다. 붕어빵을 정신없이 먹다가 손가락을 같이 앙! 깨물면 천천히 먹으라며 내 앞에 한 마리를 더 놓아주시던 분. 외롭던 어린 시절, 그분은 나에게 작은 햇살이었다.


학교는 시장을 오가는 길목에 있었다. 그래서 시장을 가려면 꼭 붕어빵 포차 앞을 지나야만 했다. 그렇게 그곳을 지나갈 때면 엄마는 붕어빵을 한 봉지씩 사주셨고 할아버지는 빠지지 않고 꼭 덤을 주셨다. 나는 그 한 마리의 ‘덤’이 할아버지랑 나의 친밀함의 표시인 거 같아서 엄마 앞에서 우쭐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봄이 되고부터는 붕어빵 포차가 한동안 닫혀있곤 했다. 며칠 후에 다시 할아버지가 나와계실 때 안부를 여쭈면, 그냥 “바빴다.”라고만 하시고 다음 날이면 또다시 닫혀있는 일이 반복됐다. 할아버지는 기운이 없고 우울한 표정으로 나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붕어빵 포차가 아주 길게 닫혀있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계절 간식 아니던가. 어릴 때는 그런 걸 몰라서 나는 마냥 닫혀있는 포차 주변을 어슬렁거리곤 했다. 6학년이 되어 친구들과의 시간에 바빠지니, 그 자리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포차도, 매일 나와 이야기하며 웃던 할아버지도 서서히 잊혀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랑 시장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그 붕어빵 포차가 있던 골목 사거리 한복판에서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술에 취해서 대자로 바닥에 누워계셨다. 옆에는 소주병이 뒹굴고 있었다. 얼굴은 붉으면서도 검었다. 감은 두 눈 옆의 주름은 더 움푹패여 보였다. 다문 입이 다시는 열릴 것 같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붕어빵 할아버지가 죽은 건 아닌지 겁이 덜컥 났다. 다가가지 못하고 엉엉 울면서 그 옆에 서 있는데 어른들이 몰려오고 엄마가 뒤로 나를 잡아끌면서 그냥 지나쳐왔다.


소문은 무성했다. 아들이 보러오지 않고 버렸다고도 했고 전과자라는 얘기도 있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화가 났다. 그 사람이 누구든, 과거가 어떻든 간에 나에게는 따뜻한 미소를 나누던 친구였다. 어린아이의 사소한 얘기를 들어주시고 진지하게 대답해 주시고, 뜬금없는 엉뚱한 질문을 받아주시던 분. 공부 열심히 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들으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분이었다. 거기서 붕어빵 장사를 하시면서 누구에세 험한 말 한 번 하시지 않고 해를 끼치지 않으셨다. 그 후로 다시는 뵙지 못했지만 어쩐지 나의 마음 한 조각이 늘 거기에 머무르는 느낌이었다.


잘 계시는지. 그때 힘들었던 시간을 잘 지나오셨는지. 늘 마음 한 곳에 아프게 지내시는 그 분. 어린 꼬마 친구를 무시하지 않고 항상 따뜻하게 들어주시고 웃어주시던 그 미소가 선해서 나의 마음 한구석에 오래오래 웃고 계시는 분이다. 당신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아실는지 모르겠다. 그 꼬마가 이제 커서 아들을 둘이나 키우는 아줌마가 되었다는 걸 상상이나 하실까.


할아버지가 내게 남겨주신 유산이 있다. 지난 겨울, 30분을 기다려 산 붕어빵을 들고 신호등 앞에 서 있을 때였다. 다 팔려버린 붕어빵을 사지 못해 엉엉 우는 아이와 그 아이를 달래느라 안절부절인 아이 엄마와 나란히 서게 되었다. 내가 산 붕어빵이 마지막이었던 듯하다. 요즘 험한 세상이라 행여 낯선 사람이 주는 음식이라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용기 내어 말을 건넸다.

“붕어빵 먹을래?”

내 소심한 제안에 아이와 엄마는 몹시 놀란 기색이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거절했지만 그들의 대답에는 고마움이 묻어났다.

“저도 충분해요, 괜찮으시면 아이 줄게요.”

내가 건넨 붕어빵을 기꺼이 받아준 아이와 고맙다고 말해주는 아이 엄마 덕분에 나까지 행복했다.

또 한 번은 분식집에서 내가 다른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학원 수업 후에 배가 고파서 떡꼬치를 사러 온 한 아이가 카드 오류로 결제가 되지 않아 난감해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슬그머니 다가가 그 아이의 떡꼬치를 대신 결제해 주었다. 할아버지는 이런 기꺼운 마음을 내게 남겨주셨다. 별거 아닌 일들이어도, 어린 마음에는 지금 눈앞의 작은 것이 간절한 순간들이 있다. 친절을 받은 아이들이 나를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호의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마음을 이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늘 따뜻함으로 기억되는 붕어빵 할아버지처럼.



(*위그든 아저씨는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 속의 인물이었다. 어린 아이의 버찌씨를 돈으로 받고 동심을 지켜주었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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