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이면, 아빠는 커튼을 걷어 제치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벤쵸스 베스트 앨범’ 레코드판을 올리고 첫 번째 곡 ‘헝가리 무곡’이 흘러나오는 순간, 경쾌하게 총채를 흔들며 곳곳의 먼지를 떠는 것으로 청소를 시작하셨다. 늦잠을 자고 싶은데, 이불 속까지 파고드는 찬 기운과 익숙한 음악에 나는 잠이 덜 깬 채로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이불을 개고 청소를 도왔다.
열린 창으로 들어오던 찬 바람, 주황색 커튼을 뚫고 오던 주황색 햇살. 아빠가 짙은 올리브색 기다란 손잡이를 손에 쥐고 회색 술이 달린 총채를 여기저기 두드릴 때마다 공중에 떠다니는 뿌연 먼지들은 햇볕을 받아 주황색으로 빛이 났고, 헝가리 무곡을 따라 춤추듯 공중에 떠다녔다. 그 사이에서 나는 음악에 맞춰서 빙글빙글 돌았고 아빠도 어깨와 허리를 흔들어가며 박자에 맞춘 총채질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아빠랑 내가 부딪는 순간이 오면 나를 꼭 안아주셨다. 아빠와 함께 춤추던 시간에 공중에 떠돌던 먼지들을 보면서 나는 먼지도 빛이 난다는 것을 알았다.
“아빠는 왜 맨날 이 노래만 들어?”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야.”
“왜?”
“신나고 흥겹잖아. 자유로운 거 같기도 하고.”
총각 시절,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춤추던 흥 많은 우리 아빠. 아빠는 월요일 새벽이 오면 내면의 흥을 꾹꾹 눌러 접어 가슴 속에 넣었다. 바람처럼 울렁이는 집시 영혼을 등에 진 채로, 음악 대신 기계음이 시끄러운 회사로 매일 나갔다. 일평생을 한 직장에 아주 올곧게.
여섯 살 이전의 나에게 ‘일요일’은 눈물이었다. 엄마가 오기 전, 나는 큰 집과 고모네 집을 전전하며 지내다가 시골 부여 할머니 곁에 가서 오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기억이 많지 않다. 다만 외양간에서 소를 보며 그 앞에 앉아서 돌로 땅에 그림을 그리던 기억, 아빠를 기다리다 잠든 밤 그리고 아빠가 다녀간 흔적을 보여주듯 머리맡에 놓여있던 바나나킥과 새우깡 몇 봉지를 보며 종일 울던 ‘일요일’이 전부였다. 엄마가 오고 나서 내 인생은 색채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요일’의 기억이 알록달록한 색으로 다시 덧칠되었다.
가끔 몸이 지치고 마음이 어지러운 밤에 누우면, 어릴 때 집안의 풍경이 보인다. 엄마는 이모가 준 빨간 공 모양의 의자에 앉고(그 시절은 빈백이라는 이름을 몰랐다. 그냥 공 의자라고 불렀다.) 그 앞에 바닥에 내가 앉아 있었다. 엄마는 듬성한 빗과 참빗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내 긴 머리를 예쁘게 만져주셨다. 가끔은 중국 무협 드라마에 나오는 어여쁜 낭자들 머리를 해주셔서 학교에 가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마론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으면 엄마는 버리는 옷을 잘라내어 바느질로 인형 옷을 만들어 주셨다.
흑백으로 된 낡은 가곡집을 펴고 노래를 가만가만 불러주셨다. 엄마가 가져온 세계 명작 전집은 자주색 딱딱한 표지에 글자가 빼곡했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했다. 세로로 읽어 내려가는 방식이 신기해서 나는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그저 글자를 읽고 싶어서 그중 한 권을 늘 뽑아 들고 다녔다.
엄마는 아빠가 회사에서 가져온 이면지에 눈이 부시도록 예쁜 공주를 그려주셨고 나는 12색 지구 색연필로 색칠하다가 가끔 36색을 사달라고 졸라보곤 했다. 입이 심심하다 할 때는 냉동실에 얼려둔 인절미를 꺼내서 팬에 데운 다음 눌어붙은 인절미에 설탕을 솔솔 뿌리고 포크로 쿡 찍어서 돌돌 말아 인절미 사탕을 만들어 주셨다. 팝콘을 뻥 튀겨서 놀라움을 알려주기도 했다.
대부분의 저녁은 아빠가 간식을 손에 들고 퇴근하기를 기다리고 주말엔 아빠와 책을 읽거나 청소를 한 게 대부분이다. 그나마도 아빠가 나에게 책을 읽어주는 게 아니라, 아빠는 아빠가 좋아하는 과학책이나 동물책을 읽고 나는 그 옆에 나란히 붙어 앉아서 동화책을 읽었던 기억들.
그저 그런 사소한 기억들이고 그때 무슨 얘기를 했는지 전혀 기억에는 없지만 그 따뜻한 분위기는 낡은 전등의 노르스름한 빛과 같은 색을 가지고 있어서 눈을 감으면 언제든지 그 안온함을 느낄 수 있다.
가끔 옛 생각이 나서 엄마, 아빠에게 “있잖아, 그때 그랬잖아!”하고 얘기를 하면, 두 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하신다.
“몰라, 기억이 안 나.”
아주 사소한 그 기억들은 때로는 서운하고 미울 때도 있고 어떤 기억은 다소 궁상맞기까지 하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은 따뜻하고 행복하다.
나는 연락을 부러 챙겨하는 성격이 아닌데 이제는 많이 표현하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요즘이기에 얼마 전에 뜬금없이 엄마에게 문자를 보낸 적이 있다.
‘엄마, 오늘 머리 빗는데 옛날 생각 나더라고? 엄마가 나 어릴 때 이쁜 머리 많이 해줬잖아!’
‘그랬나? 다른 건 생각 안 나고 네가 잘 앉아 있던 건 기억난다. 그게 이뻤지.’
‘내가 기억나! 그런 거 하나씩 생각하면 기분이 너무 좋아! 엄마 고마워요. 사랑해!’
‘뭘 해준 기억이 없어서 미안하기만 한데....... 우리 딸 사랑해!’
내 어린 시절 최초의 기억은 무릎에서 시작한다. 딱히 좋을 것 없는 기억 탓인지, 아니면 운동신경이 없는 내 몸뚱이 탓인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나의 무릎은 꽤 오랜시간동안 굽은 채로 살아왔다. 마흔이 넘어 나의 상처를 내가 파헤치기 시작한 때와 늦은 나이에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 시점이 겹치면서 의도치 않게 나의 무릎은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이제 나의 무릎은 제법 곧게 펴진다. 운동신경이 보통 사람들보다 많이 둔하고 기본기가 없었지만, 잘하기보다는 꾸준하게 스트레칭을 해 온 결과이다. 물리적인 몸뚱이와 눈에 보이는 형체로 나타낼 수 없는 삶이 참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든 다시 아프고 오그라들 수 있지만, 나름의 의지를 가지고 차곡차곡 펴가면 된다. 아프면 좀 쉬어도 되고.
정작 부모님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조각난 시간 들이 지금 나에게 힘을 주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느꼈으면 좋겠다. 어느 날, 살아가다가 몸과 마음이 어딘가 굳고 쪼그라드는 날, 엄마와 읽은 그림책 한 권, 아빠랑 축구공을 차는 시간,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다 같이 고기를 구워 먹는 저녁 한 끼, 바람 솔솔 부는 저녁에 아이스크림 하나씩 손에 든 산책길 등을 떠올리기를.
살아가는 일이 생각보다 힘든 순간이 있지만, 또 살아가는 데에는 그리 대단찮은 게 필요한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를...... 그렇게 마음에 따스함 한 조각 지니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