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딸이었고, 엄마였다.
엄마 이야기는 쉽지 않다.
아무 일 없는 평범한 하루인데도,
엄마 말만 꺼내려하면
가슴 깊은 곳이 일렁인다.
나는 아직도 내가 엄마인 게 믿기지 않는다.
나는 엄마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했고,
엄마는 해줄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그 간극이 너무 커서
서로를 이해할 틈은 없었다.
나는 엄마가 되면서 어른이 된 줄 알았다.
밥을 하고, 아이를 챙기고, 집을 꾸리며
하루를 굴려 가는데
내 안에서 자꾸 어린 내가 울었다.
나 좀 봐줘.
사랑한다고 해줘.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먼저 딸이 되어본 적이 없었다는 걸.
나는 아직 엄마가 되지 못했고,
여전히 사랑을 기다리는 딸이었다.
두 존재 사이에서
나는 흔들리곤 했다.
나는 학대를 받은 것도 아니고
그렇게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것도 아니다.
다만,
조금 더 사랑받고 싶었던 아이였을 뿐이다.
한 친구가 말했다.
너네 집이 진짜 힘들었으면
너 지금보다 훨씬 엇나갔을 거야.
이 정도면 괜찮은 거야.
맞는 말이다.
다 내 몫이다.
그럼에도,
그 아이가 가끔은 안쓰럽다.
때로는 지금의 가정이 너무 따뜻해서
이런 생각이 스친다.
내가 이 행복을 받을 자격이 있나?
나를 치유하지 못한 채
사랑을 받지도 주지도 못했던 순간들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가슴이 메여온다.
지금도 안아달라 보챈다.
그러다 또 미안해한다.
나에게 싫증 나 아이에게 쏟아내던
감정의 잔해들은
다시 나에게 와 자책으로 쌓였다.
내 마음엔 아직도 파도가 인다.
미움과 사랑과 그리움이 뒤엉켜
물보라를 일으킨다.
억울하게도
상처 난 부인 옆에 선 내 남편.
못나고 모난 엄마에게 안긴 내 딸.
나에게,이런 나에게.
구멍 난 나에게.
어떻게 이런 행운이 왔을까.
놀랍다.
다행이다.
이런 사랑을 일찍 알지 못한 것이 못내 서럽다.
이게 사랑이구나, 나는 이제야 배운다.
딸이 부럽다.
너는 좋겠다. 아빠 같은 아빠가 있어서.
7살의 내가 말한다.
잠에서 깨 품으로 안겨드는 딸을 본다.
어쩌면 네가 어린 나일까?
사랑받고 싶어 짹짹거리는 아기새.
아무것도 모르고,
사랑 달라 짹짹거리던.
그런 어린 나.
원하는만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어른 나영이 되었다.
어른 나영이 어린 나에게 말한다.
나도 받고싶은 만큼 못 받았어.
너는 왜 받으려고 해!
너도 받으면 안 돼!
아니야, 나도 받고 싶었어.
너한테는 내가 줄게.
두 나영이 씨름을 한다.
딸은 씨름하는 엄마를 보고 자란다.
너는 커서 어떤 어른이 될까?
어떤 엄마가 될까?
엄마 나영과 어린 나영 사이에서
뒤죽박죽 하던 엄마에게
너는 무엇을 받고 무엇을 받지 못했을까?
나처럼 엄마를 원망하진 않을까?
오늘도 사랑 달라 지저귀는
나의 작은 아기 새.
부모가 된다는 것은
자신이 받지 못했던 사랑을 다시 마주하는 일이다.
무엇이든 느리던 내가
질풍노도를 겪던
서른으로 넘어가는 어느 날,
방문 앞에서 나는 한참 손톱을 뜯고 있다.
어렵게 문을 열고 나가 꺼낸 말은 그거였다.
“엄마…. 30만 원만.”
엄마는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없어.
아빠가 생활비 안 줘서 나도 없어.”
소파에 기댄 채 몸을 일으켜 보지도 않고.
무슨 일이냐 물어 보지도 않고.
나는 서운하지도, 화나지도 않았다.
그냥…. 아, 역시. 그랬다.
그게 전부였다.
나에게 가족은 기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가족에게조차 기대지 못하는 내가
마음 편히 쉴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늘 조마조마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누군가에게 소외되거나,
무리 밖에 서 있는 느낌만 와도
가슴이 조여온다.
관계에서 미세하게 밀려난 순간,
소파 앞의 나로 돌아간다.
불안하고 초라하다.
내 딸은 나와 다르다.
마음이 가득 차 단단하다.
세상에 대한 믿음이 있고,
관계로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으며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의심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 존재할 수 있던 나와는
전혀 다르게 자라 준 아이.
어떻게 이렇게 예쁘게 키웠어요?
기적 같은 일이다.
기적 같은 딸이 나에게 와
방긋, 이런 말을 건넨다.
엄마는 내가 엄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르죠?
딸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건
내가 엄마에게서 듣지 못한 문장이었다.
평생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딸아,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니?
나는 좀 덜 돌아왔을까.
엄마는 나를 완성하지 못했지만
나는 딸에게서 완성을 배운다.
엄마를 다 이해한 건 아니다.
다만 이제야 안다.
엄마도 아팠고, 서툴렀다는 걸.
부모를 용서하는 건 그들이 옳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이 완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누구도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니다.
나는 엄마가 되기 전에, 상처 난 딸이었다.
나는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을
내 아이에게 건네며
비로소 나를 치유하고 있다.
우리는 누군가의 엄마이기 전에,
여전히 누군가의 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