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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덩유니 Jul 07. 2019

딱 한 권의 책만 추천하라면요

진짜 딱 이부분만 읽어봐.

책을 좋아하여 친구들과 종종 책 추천을 하거나 선물하곤 하는데, 올해 내가 꾸준히 추천하고 있는 책은 김영민 교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이다. 나도 추천받아 읽은 책인데, 그 자리에 있는 다섯 명 정도가 그 책 정말 좋죠? 라고 이야기하길래 그정도일까 하는 마음에 사서 읽어보았다. 


그리고 이 잔잔하고 차분한 유우머에 반했다. 보통 읽은 책을 기록하는 공간은 브런치가 아니라 (브런치는 내가 쓴 글에 키워드 검색이 안되니, 이 구절 이 단어 어느 책에서 봤더라, 싶을 때 기록하는 용도로는 어렵다) 개인 블로그에 따로 정리해놓는데 그 중 일부는 브런치에도 기록.





나는 책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부분을 나중에 기록해두기 위해 쪼그맣게 접어두는 나쁜 버릇이 있는데, 이것이 나쁜 버릇인 이유는 첫째, 일단 책을 상하게 함에 있고, 둘째는 빌린 책의 경우 무심코 접었다가 아이고 죄송합니다 하며 펴야하는 데에 있고, 셋째는 나의 그런 버릇을 알게된 남편이 내가 읽는 책을 따라다니며 내가 접어둔 부분만 쏙쏙 읽는 것이 꼭 나의 카드들을 속속들이 들킨 것 같은 일종의 패배감이 들기 때문이다. 변태같으니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지난주에도 그것만 따라다니는 것 내가 분명히 봤다. 


무쪼록 이 책의 경우 낄낄깔깔 웃으며 접다보니 책 아랫부분이 두꺼워질정도로 많은 부분이 접혀서 그냥 책을 다 스캔 떠둬야하나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그 중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 두 구석을 뽑는다면, 이 기준은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이 부분만 읽어봐봐 너무 재밌어"라고 할 부분은, 아래와 같다. (아빠가 나에게 물려준 버릇인데, 내 친구들 그러려니 잘 읽어준다. 고맙다 친구들아)





1


손에 든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아직 채 녹지 않았을 때, 나는 K교수의 수업을 들었다. 어느 날 손을 들고 물어보았다. 지금까지 공부해보신 결과, 잘했다 싶은 일 하나하고, 후회스럽다 싶은 일 하나를 이야기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 생각하면, 당돌하고 건방진 구석이 있는 질문이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국내외 소설을 닥치는 대로 아주 많이 읽은 것은 잘했다 싶고, 철학공부를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체계적으로 못 한 것은 후회스럽다고. 다시 물었다. 읽으신 소설 중에서 최고의 것, 두 종만 추천해주십시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둘 다 반드시 다이제스트가 아닌 무삭제 완전본을 읽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 무렵 수업 시간이 끝났다. 강의실 밖으로 따라나가서 다시 물었다. 그 책들 다 원어로 읽어야 합니까. 이 사람아, 그걸 다 어떻게 원어로 읽나. 번역으로 읽어야지. 


톨스토이나 프루스트가 인기 있던 시절은 아니었다. 나는 먼저, 어린 시절 계림문고 다이제스트로 읽은 기억이 있는 <전쟁과 평화> 완역본을 찾아서 읽었다. 분량이 많았으나 재미있었고, 일종의 역사철학서라는 사실에 놀랐다. 그 덕분에 호화로운 시간 낭비의 맛을 아는 몸이 되었다. 정신의 사치에 입맛을 다시며, 나는 모아둔 용돈으로 정음사에서 나온 완역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집을 샀다. 재미가 없어서 다 읽지 못했다. 그래도 졸업 이후 그 책을 즐길 수 있을 때까지 꾸준히 시간을 낭비했다. 젊음같이 귀중한 것을 '기꺼이' 낭비해버리는 것은 나름 쾌감으로 가득한 일이었기에. 이제 시간을 너무 많이 잃어버린 나머지, 급기야 머리에 탈모가 진행 중이고, 몸은 근육을 잃어버린 망국의 슬픔으로 폐허가 되었다. 이제 자기만의 사적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쓸 때가 되었다.





2


개돼지 사태 관련해 교육부가 할 일

 

(이 글은 한국일보 칼럼에서도 볼 수 있어 전문을 가져왔다.)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99%의 사람들을 개돼지처럼 취급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교육부 간부답게 이 나라 교육을 온몸으로 보여줬다. 그 세대 고교시절에는 교련교사, 체육교사가 종종 선글라스를 끼고 수업에 임했다. 줄을 잘 서지 않는다고, 교련교사는 때로 몽둥이를 휘둘렀고 체육교사는 직접 날아차기를 하곤 했다. 대부분의 수업시간에서 국정교과서를 암기식으로 가르쳤다. 이런 환경 속에서라면 막말을 일삼는 공무원이 배출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이 사태가 보여주는 교육현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나라 교육은 사실을 존중하는 과학적 태도를 양성하는 데 실패했다. 신분제를 공고히 하자는 주장은 신분제가 현재 존재하고 있음을 전제하는 말이다. 그러나 헌법 11조에서 명시하고 있듯, 명시적 ‘제도’로서 신분제는 이 나라에서 이미 철폐됐다. 따라서 그의 주장은 사실에 충실하지 않다. 미국에서는 흑인이 정치적으로 높은 지위에 올라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발언도 현재 미국대통령이 흑인이라는 사실과 충돌한다.  


둘째, 논리적 사고력을 기르는 데에도 실패했다. 자기 자신은 신분상승 하고 싶어 하면서, 동시에 신분제를 공고히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적으로 들린다. 해명을 요구하는 기자에게 자신의 논리를 추가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가 논리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면, 쌍권총은 한 자루다, 장총은 짧다는 식의 모순적 발언을 일삼지 않았을 것이다.


셋째, 공감 능력을 유지시키는 데조차 실패했다. 맹자가 말했듯이, 우물에 빠지는 어린아이를 보면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그는 “구의역에서 컵라면도 못 먹고 죽은 아이”에 대해 측은지심을 느끼는 것은 위선이라고 말한다.


넷째, 고전 교육에 실패했다. 그에게 고전 교양이 있었다면, “민중들을 개돼지 취급해야 해”라고 말하는 대신, 로마의 시인 데키무스 유니우스 유베날리스의 말을 빌려 “민중을 통치하는 데는 빵과 서커스면 족하지”라고 점잖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는 국회에서 식은땀을 약간 덜 흘려도 됐을 것이다.


다섯째, 수사법 교육에 실패했다. 그에게 학교에서 익힌 수사법 소양이 있었다면, “개돼지 취급을 해야 한다”와 같은 상스러운 비유 대신 “나무늘보 취급을 해야 한다” “개미핥기 취급을 해야 한다” “코알라 취급을 해야 한다”같은 상대적으로 참신한 비유를 구사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는 직장에서 좀 더 천천히 파면 당했을는지 모른다.


여섯째, 토론 교육에 실패했다. 한국 사회가 신분제도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상식에 도전하려면, 그에 합당한 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를테면 정실자식이 사생아보다 낫다는 상식에 대해,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 나오는 에드먼드는 이렇게 외쳤다. “사생아가 비천하다고? 사생아는 자연스럽게 불타는 성욕을 만족시키다가 생겨난 존재이니, 지겹고 따분한 침대에서 의무 삼아 잉태된 정실자식들보다는 낫지!” 학교에서 시험답안 암기에 급급했던 세대는 막말을 하는 데에는 익숙해도, 주장의 논거를 제시하는 데는 취약하다. 만약 그가 에드먼드 정도라도 되는 논거를 제시했다면, 헌법적 가치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국무총리는 이번 일을 공직자 기강 해이로 규정했는데, 이는 일회적인 공무원의 입조심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사태는 지속적인 공직자 막말 대잔치의 일부이며, 이 나라 교육 현황과 무관하지 않다. 하필 사태의 당사자가 교육부 간부였으니, 교육부는 차제에 국민을 개돼지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정책적 소신을 분명히 표명할 필요가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교육부는 해당 교육부 간부가 관계했다는 교과서 국정화 사업을 포기하고, 대신 고전, 수사학, 토론, 과학, 논리교육, 공감능력 진흥 방안을 제시하기 바란다. 인간의 말을 하는 공직자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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