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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 Aug 18. 2016

걸리버  여행기

아침이다.

특별할것 없은 매일 똑같은 하루.

일어나 출근하고 적당히 일하고 퇴근.

또 그냥 잠들고 다시 아침.

숨이 막혔다.


"저기 과장님 제가 몸이 너무 아파서 그런데 오늘 하루 만 쉴께요.. 죄송합니다"

과장이 또 전화기에 대고 잔소리를 한참 한다. 듣기 싫다.

"네...네...죄송합니다"

눈을 떴을때  짜증났었던 모든것 들이 회사를 하루 쉰다는 연락을 하고 나서는 모두 사라지는 듯 했다.

사람 참 간사하다.


"아..어디를 가볼까?"

신이 났다. 외출 준비를 하고 오랜 만에 느끼는 여유를 즐기려 집을 나섰다.

사람이 많지 않고 조용하면서도 혼자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을 가고 싶었다.


"하긴..평일 수요일 어딜가도 조용할꺼야.."


홍대로 갔다.

골목의 구석구석에 숨어있을 조용한 커피숍을 찾고 있었다. 빨간 간판이 예뻐보이는 조그마한 커피숍에 들어갔다.


"에스프레소 한잔이요.."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친구다. 출근도 하지 않고 어디에 갔냐고 하면서 아침부터 전화기에 대고 큰소리다.


"그냥 .. 아침에 일어났더니 내가 걸리버 여행기의 걸리버가 되서 소인국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그래서 아주 작은 커피숍에 왔어.난 지금 소인국에 온 걸리버야"


나의 이야기에 또 엉뚱한 소리를 한다고 한참 잔소리다.


"야...끊어. 나의 황금같은 시간을 너에게 방해 받고 싶지 않아"


전화를 대충 끊고, 창가로 들어오는 햇빛을 온몸을 느끼고 있었다. 그 따사로운 햇빛이 참 좋다.


"안녕하세요..."

따스한 햇살에 살짝 잠이 들었나 보다. 나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네?"

"자리가 없어서요..그냥 합석하겠습니다...에스프레소는 다 식은것 같네요..."

"아...네...."


이 상황이 당황스럽다.

주변들 둘러보니 그 사이  작은 커피숍 안의 몇 안되는 테이블이 다 차 있었다.


"아............."

"하시던 일 마저 하세요.. 그럼 다시 잠에 들어야 하나?"

처음 본 남자가 나에게 장난을 걸어오지만 왠지 싫지 않다.

"아..그래야 할까요? 이제 잠에 깨서 뭘 할까 조금 고민 좀 해 봐야 겠습니다."


책이라도 한권 들고 올 껄 그랬나 싶다.  앞에 남자는 무언가를 열심히 노트에 그리고 있었다.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 빤히 쳐다 보다 남자에게 물었다.


"뭐 하시는거예요?"

"아..스케치 중입니다."

"스케치요?”

“네. 그녀가 살 집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아..그녀요?”

"네. 그녀가 살 집의 거실을 디자인 중입니다."


순간 얼굴이 달아올랐다.  낯선 남자가 말을 걸어왔고, 이런 적은 삼십 평생 처음이여서 나름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며, 특별한 로맨스를 살짝 기대 했나보다.


“하..하..하...왠지 실망하시는 눈빛이네요?”

“아...네? 참...나...”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원래 그렇게 자기 멋대로 생각하시나요?”


그냥 아무 말 없이 웃는 남자를 보면서 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음..내가 왜 이러지..

그렇게 한참 그 남자는 노트에 스케치를 했고 나는 그냥 창밖으로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재치에 반했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 스케치를 하며 혼잣말 인지 아니면 나에게 하는 이야기인지 모르게 남자가 이야기를 했다.


“아...저기요!  저랑 장난하세요? 저기요..혼자 그녀 생각 많이 하시구요..저는 이만 가야겠습니다. 나의 즐거운 휴가를 이상한 사람 때문에 망치고 싶지 않네요.”


근데 참 이상하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못했다.

 왜?

계속 그냥 민기적, 민기적 하며 앉아있다.

참나.....


“왜 안 가세요?”

“아...참...나...뭐...그..............냥......”

“오늘 그냥 똥 밟았다 생각하시고 앉아 계시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 한데... 이래봐도 꽤 잘생기지 않았나요?”

“저기요...그런 미친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세요? 거울을 안 보고 다니시나요?”

"아...네...."


남자는 답을 하는 둥 마는 둥 다시 자신의 일에 열중을 하는 듯 했다.


창가에 비치는 남자는  턱선이 얇고 오똑하고 날까로웠지만 온화한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계속 창가에 비치는 남자를 바라보며 문뜩 그 남자의 그녀가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이 남자의 사랑을 받는다면, 어떨까?  

괜한 상상을 해 본다.

남자는 또 그녀의 이야기를 한다.


"그녀가 햇살을 받으며 잠이 든 모습은  꼭  잠자는 숲 속의 미녀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깨워야 할 것 같았습니다."

"전 깨기 싫었는데요"

"아...그런 더 주무시던지... 하하하"


기분이 더 나빠졌다.

뭐라 대꾸를 하기도 그래서 그냥 말없이 창가를 바라보면 남자의 그녀가 어떤 여자일지 생각했다.


긴머리?

짧은 머리?

날씬할까?

하얀 피부?


"검은 머리에 검은 눈, 하얗고 빨간 입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꼭 당신처럼..."

"네?"

시계를 보던 남자는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다.

"늦었네요..저는 이만 가봐야 겠습니다"


일어서는 남자가 나에게 스케치 한 종이를 접어 건냈다.


"함께 앉아 있게 해준 대가 입니다"


종이를 펄친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햇빛이  들어오는  넓은  창이  있는  거실..

그리고  쇼파에  기대어  있는..

나같은..여자..



"이 사람 미친거 아니야."

그리고는 나는 벌떡 일어나 짐을 챙겨 그 남자를 따라갔다.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나는 당신이 미친 변태라고 생각했어?"

"급했어.."

"응"

"어찌 됐던.. 넘어왔으니 된거 아니야?"

"응"


난  지금  햇살이 잘  드는  큰  창이  있는

거실바닥에..

그와  누워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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