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중에 특별히 아픈 사람 없고 부인도 있고 아이도 있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넓은 집도 있고...... 한 80%는 이룬 것 같은데?”
몇 년 전 퇴근 후 소파에 누워 TV를 보며 말하는 남편을 보며 뭔가 띵한 기분이었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은행 돈으로 산 것이나 마찬가지라 매달 원금과 이자를 은행에 이체하고 나면 허리띠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었다. 급여받기 무섭게 통장을 스쳐 지나가 현금이 늘 부족해 아등바등하며 사는데 저리도 태평한 소리를 하다니. 평소 같으면 속없는 소리 한다며 신랑을 타박했겠지만 이상하게 그날은 그 말이 다르게 다가왔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과정'은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밟는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결혼한 남자와 별 탈 없이 10년을 살고 귀여운 딸내미 둘을 낳고 기르는 과정이 내게는 소중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러다 보니 내게 없는 것, 더 있었으면 하는 것에만 포커스를 맞추며 살아왔다.
불만인 것들이 많았다.
동네 언니들은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집도 리모델링하고 주방가전도 싹 바꿨는데 나만 돈 없어서 조명 하나도 못 바꾸고 들어와 살았던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 리모델링하고 싶은 곳 하던가."
"돈이 어딨어? 그리고 내년에도 여기에 산다는 보장도 없잖아."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하지. 그럼 조명이라도 하던지."
"조명도 설치비만 25만 원 이상이야. 돈이 어딨어."
늘 이런 패턴으로 신랑과 대화를 나눴다.
이전의 나는 무언가 하고 싶어도 '안 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스스로를 괴롭혔다. sns에 등장하는 세련되고 깨끗한 집과 우리 집을 비교하며 한숨을 푹푹 쉬던 내게 그때 신랑의 말은 정말 예상외였다.
내가 만족할 집은 이 정도 되어야 할까?
“내가 결혼해서 아내가 있는 것도 신기하고... 퇴근 후 푹신한 소파에 누워 쉴 수 있고. 이 정도면 성공한 삶 아닌가? ”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인데 나는 그저 무언가를 바쁘게 살면서 계속 어딘가를 향해 올라가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서 있는 곳이 늘 불만이었고 부족해 보였고 못나 보였다.
시간을 쪼개며 바쁘게 살아야 한다니까 달리기만 했지 정작 내 마음이 원하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나아가기만 했다.
엄마, 아빠는 내게 늘 포부를 크게 가지라 했고 그걸 위해 매일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도 엄마는 내가 성공해야 더 많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으니 엄마가 열심히 기도 하겠다고 말한다. 엄마가 말씀하시는 '성공'이라는 것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말하겠지? 하지만 40대에 들어선 기간제 교사에게 돈 많이 버는 길은 없어 보인다. 어릴 때부터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올라가야 하니 매일 성실하게 살아야 하고 최선을 다해살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산 나로서는 남편의 마인드가 참 부러웠다. 문득 이 남자랑 결혼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된 날이었다. 물론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나는 언제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자신을 다독이며 살아갈 수 있을까? 아직 나는 자라지 못한 어른 아이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