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

지나친 기대는 자녀를 힘들게 한다.

by 글로다움

우리 아빠는 큰 딸인 나를 늘 자랑스러워하셨다. 대학교 때 장학금을 타기 위해 독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고 취업 후에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6시 반에 출근길에 나서는 나를 보고 자신과 달리 성실한 딸이 대견하셨는지 어느 순간부터 술 한잔만 걸치면 말씀하셨다.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 걱정하지 말거라.”

“아빠는 지는 태양이고 너는 뜨는 태양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20대부터 30대 내내 들었다. 그냥 한 귀로 흘리고 못 들은 척하면 되는데 기대치를 알고 듣는 말이니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부담스러운 아빠의 말은 작년 마흔이 되면서부터 확 줄었다. 코로나 때문에 만나지 못해 듣지 못하는 건지 지금 일하는 직업이 아빠의 기준에 맞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스럽게 그 말을 듣지 않으니 편하다.

물론 그 뜻이 자식에게 힘을 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내 처지가 아빠의 마음에는 들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큰소리 칠 수 있는 대기업, 공기업에 다니면서 높은 연봉을 받는 모습을 원해서 나는 아직 만들어진 그릇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걸까? 자격지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빠는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늘 묻는 것은 '연봉', '직책', '회사의 크기'등일 뿐 내가 왜 그 일을 선택했는지, 잘 맞는지 등에 대해서는 질문하시지 않았다.


어떤 모습이 성공한 삶일까?

아이 둘 낳고 프리랜서로 독서 교육할 때도 "너는 뜨는 태양이지."를 언급하셨던 아빠. 나이 먹고도 그 소리가 좀처럼 편해지지 않았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내가 문제인 건지 고민이 되어 교회 샘터 모임 때 언니들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듣고 있던 사람들 모두 기겁했다.

“너 참 힘들었겠다. 진짜 부담스러운 말이잖아.”라는 말을 했다.

그때 나는 살짝 멍해졌다. ‘아... 이거 다른 사람이 들어도 힘들어할 말이구나.’ 그제야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짜증이 나고 싫어하는 내 모습이 열등감에서 나오는 감정이라 생각했는데 언니의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풀리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 괜찮은 거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내 마음이 정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 아빠에게 말씀드렸다. 좋은 의도여도 아빠의 그 말씀은 부담스러워서 싫다고, 안 듣고 싶다고 말이다. 아빠는 그런 의도가 아니라며 해명을 늘어놓으셨지만 한 번 더 단호히 거절했다. 나이가 드니 용기가 생긴 걸까? 아무튼, 나를 보호하고 싶었다. 더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난 내 안의 아이가 갖고 있던 무거운 돌 하나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아빠의 저 말이 진저리 나도록 싫었던 나는 아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잘하지 않는다. 아이를 위한 기도를 드릴 때도 건강하게 자라나고 작은 일에도 감사함을 느낄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게 해 달라고만 할 뿐 다른 사항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대신 우리에게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한다. 엄마가 꿈속에서 아기 천사로 본 너희들의 모습이 아주 예뻐서 우리 집으로 보내 달라고 생떼를 부렸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줬다. 엄마에게는 ‘선물’ 같은 존재라고 반복해서 말해준다. 아마 내가 부모님에게 듣고 싶었던 말을 내 자식에게 대신하는 것 같다.

부모의 마음이야 내 아이가 성공한 삶을 살기 바라는 것이 당연할 수 있겠지만 그 '자식을 위한다'라는 명분으로 괴롭히고 싶지 않다. '성공'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지도 모르겠고 그게 그렇게 좋은 것이라도 꼭 달성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것 또한 부모의 바람이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어른들의 기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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