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겸손이 뭐길래!

칭찬을 받아먹자.

by 글로다움

책임감 강하고 모든 일에 완벽을 기하는 엄마와 '좋은 게 좋은 거지'하며 늘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는 애주가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성향으로만 따지면 아빠를 더 닮았다. 어릴 적 나의 모습을 떠올리면 집에서는 순종적인 성격이지만 밖에서는 왈가닥스럽고 놀기 좋아하는 초등학생이었는데 친구들과 달리 먼 중학교로 입학하면서 낯을 가리는 소심한 소녀로 변해갔다.


귀 밑 3cm까지만 허용되는 학교 규정 때문에 촌스러운 단발머리에 튼튼한 하체를 가진 나는 객관적으로 나쁘지 않은 외모였다. 식탐은 있었지만 평균 키와 몸무게를 지닌 평범한 체형의 학생.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내가 가장 뚱뚱한 편에 속해 있어 늘 44 사이즈를 유지하는 엄마와 딸에 대한 기대가 높은 아빠는 내 외모를 두고 자주 충고를 하셨다. 집 앞 슈퍼 갈 때조차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변신하는 동생과 달리 당당히 잠옷바람으로 슈퍼 외출하는 나는 집에서는 패션 감각 떨어지는 칠칠이로 통했다.


집에서 '우리 딸 예쁘네.'란 말을 거의 들어본 적 없던 탓에 학창 시절 누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한다고 하면 ‘에이 아닐 거야’, '나한테 장난치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 누군가 다가오려 하면 벽부터 쳤다.

"그만 먹어. 그러다 살쪄."라는 말을 자주 들었던 나는 대학생이 되어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 덕분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내게 편하고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입어서 그런가? 아니면 대학이라는 환경 변화 덕에 바뀐 건가? 아무튼 학창 시절과 달리 외모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들으면서부터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다. 예전처럼 거울을 봐도 스스로 비난하지 않게 되었다.


“엄마. 나 나가면 못생긴 얼굴은 아니라는데 왜 예쁘다는 말 안 해줬어.” 농담을 섞어 묻고 싶었던 질문을 엄마에게 던졌다.


“거만해질까 봐.”

“어?”

“칭찬해주면 거만해질까 봐. 겸손하게 크라고 그랬어.”


예상치 못한 답변이라 잠깐 멍했다. 30년 넘게 위축 들어 살았던 이유가 '겸손'이라니.......


생각해보면 외모 이야기에 국한된 게 아니다. 엄마는 칭찬에 인색했다. 다음에는 더 열심히 하라는 말씀은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지금 잘하고 있다는 인정은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겸손을 아는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였다는 엄마의 답변이 참 허무했다.

'칭찬 좀 남발해주지... 그래도 내 주제 파악은 했을 텐데.' 하며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그때부터였을까?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으면 “아니에요.”라고 말하기보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칭찬을 감사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냥 보상심리처럼 겸손이라는 사회적 미덕 아래 소심해졌던 어릴 적 나를 달래주듯 '칭찬'을 보약처럼 꿀꺽 받아먹었다. 상대방이 속으로 얼굴 두껍다고 욕할지 말지는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내 아이들에게도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누군가 칭찬해주면 그냥 기분 좋게 감사하게 받아들이라고.

(물론 아부와 칭찬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아야겠지) 무분별한 칭찬도 좋지 않지만 무작정 숨기기만 하는 칭찬도 아이에게는 좋지 않다. 애정 있는 칭찬은 결과에 상관없이 아이에게 전해주자.

'겸손' 그깟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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