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사기 결혼이야.
결혼 후 남자는 달라졌다.
첫 아이를 낳고 신랑에게 가끔 하는 말이 있다.
“이건 사기 결혼이야.”
소개팅으로 처음 만난 날부터 식장에 손 잡고 서 있기까지 딱 1년을 연애한 우리는 365일 중에 360일을 만났다. 성실하게(?)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공이 컸다. 남편은 평일이면 대중교통으로 퇴근 후 집(개봉동)으로 가서 차를 가지고 대치동(나의 근무지)으로 왔다. 나의 퇴근 시간에 맞춰 데이트를 위해 재출근한 것이다. 한강 데이트를 한 후 야탑까지 함께 이동한 우리는 아쉬우니 동네 한 바퀴 손잡고 산책했다. 이 코스는 거의 매일 반복되었다. 주말은 내가 사는 동네로 와서 시간을 함께 보내는 등 전적으로 나에게 다 맞춰주는 사람이었다. 신앙심도 깊고 성실해 토요일 오전 느지막이 일어나 전화로 뭐하냐고 물어보면 책을 읽거나 등산 중이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당시 내 이상형은 지적이고 부지런한 남자였는데 신랑이 꼭 그랬다. 다정했고 센스도 좋아 기념일은 물론 아닌 날에도 작은 선물(팬시점에서 파는 안마봉, 필기구 등)을 종종 챙겨주었다. 대화를 나누면 아는 것도 많았다.
그때는 눈에 콩깍지가 씌어져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런.
하지만 결혼 후 부지런한 남편의 모습은 사라졌다. 아니 결혼식부터 다른 사람이었다. 주례 내내 식은땀 흘릴 정도로 힘들어하길래 '긴장할 사람이 아닌데 이상하네. 어디 아픈가?' 걱정했는데 밤새도록 게임하느라 잠을 자지 못해 몸이 축난 것이었다. 신혼여행 가서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산에 다녀오는 것은 그대로였지만 그 외는 다른 사람 같았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무뚝뚝했고 독서를 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중에 '내가 전화할 때 종종 책 읽고 있다고 했잖아. 근데 요즘에는 왜 독서를 전혀 안 해?"라고 물어보니 그때 읽었던 책은 만화책이었고 만화책은 책 아니냐는 핀잔이 돌아왔다.
부지런하다고 생각한 남자는 결혼 후 증발되었다. 퇴근 후나 주말에는 소파와 한 몸인 남의 편을 보니 속에서 열불이 나는 것 같았다. 특히 둘째가 태어난 후로는 엉덩이가 더 무거워진 것 같아 잔소리가 자주 나왔다. 근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시간 나는 대로 아기띠로 아기 안고 서점으로 향했던 나와 달리 신랑은 책 한 장도 보지 않고 자기 계발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대화를 해보면 깊이가 얕지도 않다. 어떤 주제에 대해 말하다보면 말문이 막힐 예리한 질문을 곧 잘 던진다. 회사에서 '언어술사'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단다. 어디 가서 말로 지지 않는 나인데 유일하게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남의 편'이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신랑과 말로 싸우면 내가 진다.'고 말하면 믿지 못하다가 남편을 만나보면 '아. 네가 왜 그런 말 하는지 알겠다.'라며 수긍한다.
그렇다. 연애할 때는 알지 못했던 모습이 매일 같이 새롭게 등장하니 나는 사기 결혼당한 게 맞다. 결혼하고 3년간은 그게 너무 억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