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라X콩 뉴엠파이어> 영화 리뷰
2014년 <고질라>의 성공적인 리메이크 이후 워너브라더스의 괴수유니버스, 즉 ‘몬스터버스’의 팬덤은 꾸준히 커져왔다. 고질라의 세계관에 킹콩, 그리고 루머에 그치긴 했지만 <퍼시픽 림>의 거대 로봇들까지 참전한다는 소식까지 들려왔었다. 워너브라더스의 ‘몬스터버스’ 프로젝트가 10년의 세월 동안 이어져 올 수 있던 건, 당연한 이야기지만 괴수 장르를 사랑하는 소수의 팬들 뿐 아니라, 일반 관객들까지 만족시켰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쏟아져 나오는 괴수 전설이나, 일본식 괴수 명칭들이 등장할 때는 다소 당황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기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생명체들이 세계 각국의 유명 도시들을 배경으로 액션을 펼치는 장면은 여타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육중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개인적으로는 고질라와 킹콩이 각각 처음으로 등장했던 2014년의 <고질라>와 2017년의 <콩:스컬 아일랜드>, 두 편의 영화는 재밌게 봤었지만, ‘괴수 장르’를 본격적으로 영화화했던 2019년의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부터는 다소 아쉬웠었다. 타이탄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킹 기도라’라던가, ‘모스라’와 같은 괴수들이 별다른 설명도 없이 등장하는데, 원작의 이야기나 설정을 모르는 관객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친절하게 느껴졌으며, 거대한 괴수들의 싸움 외의 모든 것들을 포기한 듯한 단조로운 연출은 지루함을 느끼게 했었다.
안타깝게도 이번에 개봉한 <고질라X콩: 뉴 엠파이어> 또한 이전 작품들의 단점은 고스란히 답습하면서, 몬스터버스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몇몇의 장점마저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아쉬운 영화로 느껴졌다.
킹콩의 세계관에서 묘사되었던 지구 아래의 또 다른 세계, ‘할로우 어스’의 모습은 나름 매력적이었다. 현실의 세상이 뒤집혀 있는 것 같은 모습이라던지,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가는 정글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 초반부는 꽤 나 즐겁게 볼 수 있었다. 문제는 영화에서 펼쳐지는 대부분의 액션이 이 ‘할로우 어스’를 배경으로 펼쳐진다는 것이다. 괴수들의 실제로 ‘거대’하다는 것을 체감하기 위해서는 그 크기를 비교할 수 있는 요소들이 필수적인데, 모든 것들이 거대한 할로우 어스 속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다 보니, 그 거대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 초반 늑대형태의 괴물들과 킹콩이 충돌하는 장면은 괴수가 아닌 동물 두 마리의 격투를 보는 기분이 들었을 정도다.
그렇다고 영화 후반부 클라이맥스 장면에서는 아쉬움이 없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도 않았다. 고질라와 킹콩이 한편이 되어 영화의 빌런 ‘스카 킹’과 싸우는 장면은 가장 화려하고 압도적이었어야 했지만, ‘스카 킹’은 자신이 부리는 괴수를 이용해 전투를 이어가는 게 대부분이었고, 그마저도 별다른 쾌감을 주진 못했다.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은 사실상 괴수 4마리의 전투가 펼쳐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힘’이나 ‘육중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도끼를 들고 싸우는 킹콩,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에만 의존하는 고질라 등, 모습만 괴수일 뿐 싸우는 방식은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전의 영화들에서 느낄 수 있었던 땅과 하늘이 울리는 거대한 전투와 비교하면 대단히 아쉬운 액션이었다.
이러한 괴수나 로봇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들에서 항상 지적받는 인간들의 역할 또한 아쉬웠다.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괴수들의 결투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인간의 역할은 ‘관찰자’ 일뿐이다. 그렇지만 할로우 어스, 즉 지구 아래의 세상에 거주하고 있던 ‘이위족’이라는 인간들이 등장하면서 인간은 ‘관찰자’가 아닌 주인공이 되고자 한다. 원작의 설정을 알고 있다더라도 전부 이해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이위족의 역사 내레이션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라졌다는 괴수 모스라를 의식 한 번으로 부활시키는 장면은 너무나 유치하게 느껴졌다. 괴수 장르에 개연성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지만, 관객을 이해시키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도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망스러웠다.
분명 어떤 관객들에게는 고질라와 킹콩을 한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 자체가 만족스러운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할리우드의 거대 영화사에서 막대한 자본력을 투입해 만들어낸 결과물을 감상하는 태도로 본다면 워너브라더스의 ‘몬스터 버스’ 영화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밸런스 잡힌 영화라고도 볼 수 있겠다.
다만, 인류를 위협하는 악의 괴물들과 맞서 싸운다면서, 지구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대도시만 골라서 싸운다는 모순이나, 사실상 레슬링 경기를 관람하는 것과 같은 ‘사람’ 같은 어설픈 액션, 생사가 오가는 위기 속에서 시덥지 않은 농담이나 주고받는 가벼운 인간 캐릭터들이 등장해야 하는 것이 괴수 장르라면, 앞으로도 이 장르를 재밌게 즐기기는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