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딜레탕트 Feb 20. 2022

메타버스의 시대에서
'가상'의 거장을 만나다

<살바도르 달리 展> 전시 후기


<살바도르 달리 展 > 포스터 (출처: 인터파크 티켓)


흘러내리는 시계, 초현실주의 예술가 그리고 강렬한 콧수염으로 유명한 '살바도르 달리' 답게, 과연 '평범하지 않은' 그만의 독특한 작품을 초기 작품부터 전성기 시절의 작품까지 폭넓게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전시였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 있는 '초현실적' 세계관을 달리의 그림뿐 아니라, 그가 연출한 영상(영화) 등 다양한 형식과 작품들을 통해 감상할 수 있었으며, 그간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했던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세계의 시작과 확장을 엿볼 수 있었다.


"내가 다른 초현실주의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야말로 초현실주의자라는 것이다."


<꿈속의 현실, 현실 속의 꿈>

그의 작품을 보면 "무의식의 세계의 현실화" 혹은 "내면의 실제성" 등, 실제 하지만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은 것들을 현실로 끄집어내려는 노력이 느껴진다. 이는 달리가 초현실주의 작가로 분류되는 이유이자, 그만의 고유한 정체성이기도 한데,  '광적'이거나 '편집증'적이라고 묘사될 정도로 달리는 피상적인 것들에 가려진 실제를 들여다보려는 것에 '진심'이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초현실주의'라는 단어의 추상적인 느낌만큼이나,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처음 보면 가장 먼저 모호하거나 난해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느껴지는데(앙드레 브르통, 르네 마그리트 등 대표작가들의 작품이 그렇다.), 반면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은 예상외로 '직관적'이고 '명료' 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Galatea of the Spheres (1952)' (출처: Dalí Theatre-Museum)


달리의 작품은 형체가 왜곡되어 있거나 편집되어있어 실체를 정의하기 힘들지만, '꿈'이나 '상상'의 세계를 묘사하고자 하는 분명한 목적성이 있으며, 반복되는 상징 또한 빈번하게 사용되어 작품의 심상을 이해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은 편이었다. 무엇보다 달리의 작품은 모두가 공감할 만한 보편적인 '상상'이라기보다는 '달리' 그만의 세계임이 너무나 확실해서 그림이 주는 난해한 감정은 추상적이라는 느낌보다는 독창적이라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의 그림은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형상으로 그려진 '상상'의 세계지만, 구두, 개미, 시계 등 형상의 근간은 분명 '현실'에 기초하고 있어, 그의 작품 세계는 생각보다 익숙하게 다가온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소재로 가려져있는 실제를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달리의 작품이 현대미술의 문 앞 어딘쯤에 있는 작품으로 느껴졌다.


"선택할 수 있다면 하루에 2시간만 활동하고 나머지 22시간은 꿈속에서 보내겠다."


<내적 세계의 현실화에서 이중 연상에 대한 편집증으로>

작품과 인터뷰 등을 통해 '꿈'이라는 소재가 그의 작품 세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쉽게 알 수 있는 만큼, 그의 작품은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다만, 그 꿈은 대부분 건조하고 황폐하며, 고통과 죽음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기분 좋은 꿈이 아닌, 악몽의 이미지에 가깝다. 


'Soft Construction with Boiled Beans (1936)' (출처 : PhiladelphiaPhiladelphia Museum of Art)


실제 하지만 실제 하지 않는 것, 봤지만 보지 못한 것, '꿈'이라는 개념의 주는 이중성과 모순은 무의식과 내적 세계에 광적으로 집착한 '달리'에게 당연하게도 가장 중요한 모티브였을 것이다. 


다만, 비현실성에 대한 심상을 간결하지만 뚜렷한 화풍으로 전달하던 1930년 대의 초기 작품과는 다르게, 1940년대부터의 그의 작품에는 중첩된 이미지가 주는 '이중성'에 지나치게 집착되어 있어, 오히려 그 해석의 여지를 제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시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 그의 대표작으로 가장 유명한  '기억의 지속'이 주는 복합적인 감정이 그의 후기 작품 세계에서는 점점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그의 후기 작품에는 이미지의 '이중성'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느껴졌다.

그의 작품이 역동적으로 느껴졌던 이유는 하나의 이미지에서 '두 가지'가 '보였기' 때문이 아니라, '수만 가지'의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개인적으로는 그의 초기 작품이 더욱 감명 깊게 다가왔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의 그림 속에서 '여백'은 점차 사라지는 반면, 그 빈자리를 죽음과 고통에 대한 '오브제'로 가득 채워지는 것을 보면서 그의 인생이 빛을 향해가는 것이 아닌, 고통과 회한으로 가득한 어둠을 향하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나의 최고의 야망은 살바도르 달리가 되는 것."
"나는 이상하지 않다. 나는 단지 평범하지 않을 뿐이다."


<죽음으로부터 태어난 사람. 살아있기 위해 죽음을 그리는 사람>

사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은 작품은 그의 그림이 아닌, 전시의 입구에 있는 '달리'의 생전 인터뷰 영상이었다. 


해당 영상에서 달리는 달리 자신의 이름 '살바도르'가 사실, 자신이 태어나기 3년 전 먼저 태어나 죽은 형의 이름이었다는 것을 밝히며, 자신은 살아있음을 가족과 세상에 증명하기 위해 '평범'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즉, 그는 곧 죽은 형의 '죽음'을 물려받았으며, 동시에 부모의 '우울'과 '상실'을 품은 채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 지금보다는 사산아, 조산아가 많았을 시기에 태어났기에 그 세대라면 한 번쯤은 있을 법한 에피소드지만, 전시를 바디 감상하고 나서는 그의 출생 배경이 사실상 모든 작품에 각인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달리의 모든 작품세계에 각인되어있는 '죽음'과 '시간'이라는 테마는 그가 '살바도르'로서 실존함과 동시에 죽은 자의 이름을 물려받은 '죽은 사람'인 역설적인 상황에 기인한다. 


'50 Secrets of Magic Craftsmanship (1948)'의 일부 (출처: Dali Theatre-Museum)


그의 작품에는 반복되어있는 소름 끼치는 눈동자가  빈번하게 등장하며, 심지어는 당시 추상주의 거장들과 자신을 여러 분야로 나누어 점수를 매기고 평가까지 한 '평가표'까지 존재한다. 비현실적인 작품을 창조하는 '초현실주의' 예술가임에도 불구하고 '괴짜', '별종'으로 불렸을 정도로 남 눈치 안 보고 살았던 그였지만, 동시에 타인의 사람의 시선과 평가에 민감했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무성영화배우의 미모와 필적할만한 수려한 외모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진에서 그는 언제나 과장된 표정을 짓고 있으며, 그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치솟은 콧수염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삼았다. 유쾌해 보이고 경쾌해 보이는 그의 언행과는 다르게 죽음에 대한 이미지로 가득 찬 작품이 말하듯, 사실 '살바도르 달리'는 평생에 걸쳐 그가 특별하고 유일무이함을 증명하고자 몸부림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NFT의 시대가 '대체 불가'한 예술 감상의 의미>

달리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전시였던 것과는 별개로, 예술계에서 불고 있는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 토큰) 열풍 속에서 예술 감상의 의미를 느끼게 하는 전시였다.


전시를 마치고 나면 대개 출구에 위치한 기념품 샵, 혹은 굿즈 샵에서 전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나 전시를 기억할만한 것들을 구매하는 개인적인 습관이 있는데, 실물 크기의 포스터나 도록을 챙겨서 사면 좋겠지만 사고 나면 둘만한 곳도 없고 무엇보다 가격이 부담스러운 관계로 보통 '엽서'를 가장 많이 사는 편이다. 


전시의 감동과 감상을 조금이나마 길게 느끼고자, 혹은 소장하고 싶은 마음에 엽서를 구매하지만 막상 집에 돌아가 엽서를 들여다보면 그때의 감상이 떠오르기란 쉽지 않다. 당연히 아무리 고해상도로 인쇄되었다 한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엽서를 통해 작품을 두 눈으로 직접 봤을 때의 감동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지만, 유독 '유화' 작품에서 이러한 괴리가 심하게 느껴지며, 작품에 압도되는 것 같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을 인쇄된 엽서로 담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번 전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은 작품은 'The Broken Bridge and the Dream(1945)'인데, '부러진 다리와 꿈'이라는 제목처럼 부러진 다리 위를 오르는 존재가 있으며 부러진 다리 끝에서 승천하는 영혼과 이를 인도하는 천사 같은 존재가 보이는 한편, 아래에는 다리에서 떨어진 존재 혹은 오르려거나 오르지 못한 영혼들과 계시록의 기사들이 혼재되어있다.


그림 속 '삶과 죽음', '천국과 지옥' 등이 주는 모순된 이미지부터, 부러진 다리, 단절된 희망을 쫓는 인생의 허망함 혹은 찬란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감동적인 심상이 물론 인상적이었지만, 유화가 주는 질감과 색도가 단연 압도적이었다. 이는 평면적인 이미지 파일, 엽서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실제 그림 작품만이 줄 수 있는 영역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처음 봤을 때의 강렬한 인상을 엽서 한 장으로 느끼기엔 너무나 부족하다.


사진과 현대미술의 등장으로 '개념'과 '현상'의 경계는 무너져 '개념의 예술화'가 일반화되었다. 현대미술이 캔버스와 프레임을 벗어나 개념의 예술로 확장되었다고는 하더라도, 그것을 감상하는 공간은 분명 제한적이었으며, 작품이 작품으로서 '실제' 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제는 '가상'의 것이 '가상' 그 자체로 예술이 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으며, NFT라는 작품의 형태로 예술의 개념이 확장되고 있다.


고전 미술만큼이나 현대미술을 좋아하고 지지하며,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갈망하는 예술의 역동성이야말로  시장의 성장과 좋은 예술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러한 시류를 지지하는 입장이지만, 동시에 '고전'이 갖는 의미와 가치가 빛을 내는 시기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종이책의 수요가 점점 늘어나고 전자책이 서점 시장을 장악하지 못한 것처럼, OTT 플랫폼의 유행에도 불구하고 IMAX으로 재개봉 한 '듄'과 '덩케르크'가 전일 매진된 것처럼, 특정 형식과 형태로 존재해야 가치가 있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달리의 작품 속 '꿈'이 그러하듯, '새로운' 것, '최신'의 것, 혹은 '힙'하다고 평가받는 요즘의 것들 또한 과거와 현실에서 비롯된 것들이며, 그렇기에 '본질'과 '클래식'이 더욱 가치 있으며, 더욱 주목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 몇 년 지겨울 정도로 '가상'과 '메타버스'에 열광하는 세상 속에서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을 통해 가상과 상상 그 자체의 '본질'과 '의미', 그리고 예술 시장의 방향성에 대해 곱씹어 볼 수 있는 여로모로 감상할 거리가 많은 좋은 전시였다. 


* 전시 장소 :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디자인전시관
* 전시 일정 : 2021.11.27 ~ 2022.3.20 (10:00 ~ 20:00)
* 전시 가격 : 성인(20,000 원) / 청소년 (15,000 원) / 어린이 (13,000 원)
매거진의 이전글 평범한 공간 속 낯선 활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