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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May 14. 2020

내성적인 사람들이 우성이 된 세상

다시 14일 자가 격리가 시작되었다. 평상시 같으면 300명 이상의 승객을 가득 채웠을 777-300ER의 객실에 중국에서 수입돼 벨기에로 향하는 방역용품들을 가득 채우고 7시간 30분의 비행을 마치고는 그곳에 이들 박스들을 하나하나 내리느라 그라운드 타임 Ground Time(지상조업시간)을 자그마치 3시간이나 보내고 나서야 어제 새벽에 다시 두바이로 돌아왔다. 이 비행을 위해 전날 새벽 6시에 일어났으니 꼬박 22시간 만에 집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두바이에 도착하고 이번까지 총 4번째 코로나 검사를 했다.


"당신은 콧바람이라도 쐬고 오잖아."

평소 아내가 비행을 나가는 나에게 툭 툭 내뱉던 이 불평을 마지막으로  들어본지도 조금 되었다. 지난 두 달간 내가 집 밖으로 나간 경우는 공식적으로 허용이 된 조종사 신체검사를 위해 채혈을 위해 회사 클리닉을 방문했던 단 한 번 뿐이었다. 줄어든 비행으로 인해 간신히 한 달에 두 번 벨리 프레이터 Belly Freighter (여객기를 화물기로 전용해 운항)를 운항하다 보니 비행을 다녀오면 자가격리 14일 그리고 다시 비행 그리고 다시 14일 이런 식이면 코로나가 종식되는 그 날까지 나와 동료 조종사들은 영원히 비행 외에는 집 밖을 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두바이에 사는 에미리트항공의 조종사들은 엔지니어들과 함께 회사의 컴퍼니 어커머데이션 Company accommodation(사택)에 머물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커뮤니티 Communitity(사택촌)도 약 2000천 채의 빌라가 들어선 오로지 에미리트의 기장이나 엔지니어 메니져급의 직원들이 모여사는 곳이다.

종종 이런 공동체 생활을 하다 보면 원치 않게 마음에 잘 맞지 않는 이웃이 걸리기도 한다. 서양인들 중에도 날마다 바비큐 그릴에 고기를 구우며 사람들을 모아 맥주 파티를 벌이는 이들이 흔하다. 이런 이웃을 두면 어쩌수 없이 같이 밤마다 어울리거나 아니면 정말 이사를 가야 하나를 고민하게 된다. 내가 동양인이고 내성적인 성격이어서만은 아니다. 서양인 동료 조종사 중에서도 이런 파티문화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새로 이사 오고 나서 정말 좋아. 주변에 매일 밤마다 시끄럽게 파티를 여는 사람들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성격에 안 맞는데 매번 초대를 거절하기도 미안하고 그렇다고 즐기지도 않는 일에 억지로 가기도 싫고."


코로나로 2달째 자가격리가 시작되면서 이곳 조종사들과 가족들의 일상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먼저 누군가 근처에서 파티를 할 때 마다 낮게 번지던 바비큐 그릴의 장작 타는 냄새를 더 이상 맡기 힘들어졌고, 호텔이나 리조트 를 찾아 시간을 보내거나  짐 Gym( 헬스장)에서 더 이상 호사스러운 운동을 사람들과 같이 할 수 없게 되었다. 궁여지책으로 나는 하루에 2시간씩 집안 키친과 거실을 오가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걷고 있다. 아마 대부분 조종사들이 어쩔 수 없이 비슷한 자가 운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변화된 세상에서 나 같은 내성적인 조종사들이 오히려 덜 타격을 입는 일이 벌어진다.  

어제 비행을 같이 한 스웨덴에서 온 동료기장 에릭이 키득거리면서 이런 말을 한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나의 삶은 사실 별 차이가 없어." ㅋㅋㅋ

지난주 전화통화를 한 나의 영국인 독신주의자 동료 기장 존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나 같은 사람은 사실 한 달씩 갇혀 있어도 전혀 답답하지 않아. 아주 익숙해.  쓸 때 없이 파티하는 남들 눈치를  볼일도 없고,  난 아주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친구야."

이 말을 듣고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친구, 자네 혹시 화성에 인류 최초로 이주해 살아볼 생각 없나?"


코로나가 바꾸어 버린 세상이 앞으로 적어도 1년 어쩌면 3년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이제 세상이 바뀌어 혼자 사색을 즐기며 글을 쓰고 책을 읽는 내성적인 사람들의 프라이버시가 어쩔수 없이 존중되는 신 세계가 인류앞에 펼쳐지고 있다.  

앞으로의 세상은 혼자서도 잘 견디어 내는 내성적인 사람들이 우성인 곳이 되지 않을까?


이 세상의 내성적인 친구들이여! 각자의 자리에서 잠시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져다준 이 역설적인 자유를 오늘도 만끽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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