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왕족출신의 부기장과 같이 비행할 기회가 있었다.
키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첫눈에 보기에도 이곳 왕족의 외모에 유니폼을 입었음에도 로열 패밀리의 기품이 느껴졌다.
이날 나는 브리핑실에 미리 도착해 있었는데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기장님, 같이 비행하는 00입니다. 지금 커피숖에 들렸는데 원하시는 음료가 있으면 같이 사가려고요."
이렇듯 그는 배려와 겸손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럼에도 처음 몇 시간 동안은 귀족도 아닌 왕족출신이다 보니 평상시와는 다른 약간의 긴장감이 흘렀다. 귀족출신과는 이전에 몇 번 비행을 해본 적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긴장이 조금씩 무뎌지고 있던 차에 나는 결국 가장 하고 싶었던 사적인? 질문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내가 사적인 질문이 있는데..."
그가 나를 바로 돌아보며
"네. 물론입니다. 괜찮습니다."
다행스러웠다. 전혀 꺼려하지 않는 털털한 느낌이다.
"태어나 자신이 왕족이란 걸 알았을 때 이 일 말고 좀 더 쉬운 길이 있다는 걸 알았을 텐데 왜 굳이 조종사가 되었던 거지?"
몇 초간의 침묵이 있었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예전에 제 아버지가 살던 이곳은 지금처럼 호화로운 곳이 아니었죠. 저는 아버지와 그의 아버지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베두인족의 가치를 이어받았다고 생각해요. 단 한 번도 제 위치를 이용해 특별한 대접을 받고자 시도해 본 적이 없어요. 앞으로 있을 기장승급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편법을 쓴다면 당장 소문이 날 겁니다. 저뿐만 아니라 저희 집안에 큰 수치가 되는 것이고요. 전 그런 일을 용납할 수 없어요. 이것이 저 또한 제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가장 큰 가치이고요."
호기심 때문에, 여기에서 한 발 더 들어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네에게 이번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은데. 자네처럼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 이번생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얼까?"
이건 그의 인생관을 물으려던 의도였다.
그가 나와 얼마나 다른지를 캐묻고 싶어 하는 나의 사적인 호기심이다.
의외로 그의 입에서 이번엔 대답이 바로 나왔다.
"우린 그때그때마다 그 당시의 목표를 이루며 사는 것이라고 봐요. 나중에 더 나이가 들면 어떤 다른 목표를 가질지 모르지만 지금 저의 목표는 기장이 되는 것이고요."
우문현답이었다.
이런 걸 대나무의 교훈이라고 부른다.
대나무가 한 번에 너무 길게 가지를 뻗기보다는 적당한 크기에서 매듭을 지으며 성장하는 것처럼 사실 우리 인생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