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위하여
오늘 같이 비행한 부기장은 호주 애들레이드 출신입니다. 가난한 집안의 3남매 중 아들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가구공장에서 목수로 4년간 일했고 그간 마련한 돈으로 준비해 본인 말에 의하면 운이 좋아서 꿈꾸던 항공대에 입학했습니다.
학자금 대출과 Part Time Job으로도 부족했던 훈련비용을 홀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메꾸어 주셨고, 그렇게 어렵게 비행 교육을 마치곤 첫 직장을 구하기 위해 단 220시간의 비행시간과 사업용 조종사 면장을 가지고 무작정 호주 북부 Darwin 근처의 작은 도시 Broome으로 향했습니다.
이곳엔 지금도 세스나를 운영하며 광산을 연결하는 작은 항공사들이 있는데 그는 무작정 그중 한 곳을 찾아가 약 두 달을 머물며 허름한 방 한 칸에서 중고 매트리스 한 장을 구해 먹고 자며 그 사이 허드렛일을 하며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다립니다.
어느 날 그중 한 항공사에서 사무실용 가구를 제작할 목수를 구한다기에 일단 무조건 일을 맡아 시작하였고 이틀째 되던 날 그간 유심히 그를 지켜보았던 Chief Pilot이 다가와,
“마침 회사에서 조종사 한 명이 필요한데 지금 자네 비행 실력을 좀 볼까?”라고 말하곤 그 길로 바로 Check 비행을 한 뒤에 채용합니다.
결국 그는 딱 이틀만 그 항공사에서 목수로 일한 샘이 됐습니다.
그는 4년 동안 호주의 원주민 ABORIGIN이 거주하는 ARNHEM LAND의 마을들을 연결하는 Single Pilot 세스나 210을 비행하며
그 자신 폭풍 속에서 두 번 죽을 고비를 넘겼고 또 비행사고로 두 명의 동료를 잃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21살 매우 영민했던 그의 후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 36살에 마침내 콴타스의 Q400 부기장이 되고 39에 에미리트의 보잉 777 부기장이 되었습니다.
대학 졸업과 비행 훈련에 들어간 은행 대출금을 상환하는 데는 자그마치 15년이 걸렸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작년에야 마침내 일을 그만두고 은퇴하셨습니다. 그는 나이 마흔 하나에 아직도 싱글입니다. 약 3년 뒤 45세에 그는 마침내 꿈에 그리던 보잉 777 기장이 됩니다.
에미리트 부기장 중에 이런 친구가 많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는 말은 바로 이들을 위해 준비된 것 같습니다.
아래 사진은 다윈에서 그가 몰았던 세스나 210 기종으로 2017년 폭풍 속에서 비행사고로 손실된 기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