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건 2022년 겨울이었던 것 같다. 창밖은 스산하리 만큼 고요했고, 거리는 어제 내린 비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장작 화로 앞에 앉아 단단한 호두 나무를 잘게 쪼개 넣은 후, 나무가 내는 타닥타닥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마른 나무들이 타며 노랗고 붉은 불길을 만들어 냈다. 때때로 보석처럼 빛나는 작은 불똥들이 튀어 오르며, 깜깜한 정적속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차가웠던 몸이 이내 화로의 열기로 따뜻해 졌을때, 볼을 타고 미지근한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옆에서 티비를 보고 있던 남편은 훌쩍이는 나를 보며 걱정된 표정으로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화로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만 절레 절레 흔들었다. 그러자 남편은 아무말 없이 다가와 젖은 강아지 처럼 축 쳐진 나를 안아 주었다. 타국에서 느끼는 이질감과 무력감, 고향에 대한 그리움,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 일상과 회사에서 겪는 고충, 그리고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인한 불안감까지 …. 끈적하고 불편한 생각들이 나의 마음 한켠에서 얽히고 섥혀 있었다.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 처럼 내 마음의 집에 들어와 앉아 있었다.
“나 아무래도 우울증인 가봐…” 하고 나는 남편에게 입을 열었다. 그는 나에게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당신처럼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의욕이 없어. 잠을 자고 나도 새로운 것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없어. 그래도 당신은 그렇지는 않잖아” 남편이 해주는 말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타지에서의 지난 몇년간의 삶을 되돌아 보면 그 시간은 나에게 끊임없는 생존의 투쟁이었다. 지금까지는 거친 환경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 열심히 살았지만, 앞으로는 나 자신을 잃어 버리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지쳐가는 나를 보며 화가 났고, 스스로를 한없이 자책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30년 넘게 나고 자란 나는, 2017년에 느즈막이 유럽 대륙으로 건너 왔다. 한국에서의 삶이 가끔 갑갑하게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헬조선’을 생각할만큼 끔찍하지는 않았었다. 나는 그저 더 늦기 전에 인생에서 큰 도전을 한번쯤 해보고 싶을 뿐이었다. 독일어와 네덜란드어를 배웠고 (*독일은 독일어, 현재 사는 벨기에 북부는 네덜란드어를 사용한다.) 직장도 한국-독일-벨기에로 옮겨 다녔다. 자유와 자립적인 삶을 지향하기 위해 유럽으로 왔지만 나는 그 대가로 맵고, 달고, 쓴 경험들을 해야만 했었다. 비탈진 언덕 위에 뿌리를 내리려고 안간힘을 썼던 시간들이었다. 한국에 있을때 처럼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거나 친한 친구들에게 조차 일상의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스스로 결정 해야만 했다. 더듬거리는 언어로 은행에서 계좌를 열고, 기차를 타고 다른 도시까지 가서 면접을 보았고, 고시원 처럼 작은 공간에서 살아 보기도 했고, 식재료를 사기전에는 잔액을 먼저 확인 해야만 했던 시간들도 이었다. 그렇게 지난 몇년을 가늘지만 억척스럽게 황량하고 거친 유럽에서 버텼다. 단순하게도 물질적으로 풍요로워 지면, 타지의 고단함이 극복될 것이라는 공허함을 쫓으며 살았다. 나의 존재를 증명하기위해서 더 열심히 일했고,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으로 괴로워했다. 나의 몸뚱이는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했고, 회사에서 눈치를 봐야만 했으며 성격은 더 독해져야만 했다. 하지만 유럽에 캐리어 달랑 하나만 들고왔을때 보다, 내가 가진 짐은 한트럭이나 늘었는데도 나는 행복해 지지 않았다. 인생은 그저 고단함과 고통의 연속 인 것 같았다. 한국에서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손바닥 만한 작은 하늘을 보며, 내 인생은 왜 생각처럼 잘 굴러가지 않을까 하는 한탄을 했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유를 갈망해 해외에 나왔지만, 결국 사는 곳을 바꾼다 해도 마법 같은 일은 내 인생에 벌어지지 않았다. 내가 나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바꾸지 않는 이상, 나는 어디에 살아도 그저 신세한탄만 하는 구겨진 인간이었다.
어느날 그리스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을 읽다가 나의 생각이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술 한 잔, 구운 밤, 처량한 작은 화로, 바다 소리 등 행복이란 얼마나 단순하고 검소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느꼈다. 다른 건 없어요“ 라는 구절 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인 조르바는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확실성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의 순간을 최대한 즐기라고 말한다.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충만함을 느끼라고 말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집중하고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스스로에게 부드러워지고 나 자신을 용사하는 연습을 해야만 했다. 나는 매일 시행착오를 겪으며 힘들어진 나의 마음과 몸을 나 스스로 토닥여 주었다. 끈적한 생각을 덜어내기 위해 아침에는 찬물 샤워를 했고, 건강한 식재료를 찾아 음식을 요리하는 횟수도 늘어났다. 운동도 시작했고, 나의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상담도 시작했다. 봄이면 마당에 튤립을 심었고, 여름에는 가족과 2주정도 긴 휴가를 떠나 잠시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책을 실컷 읽었다. 가을, 겨울에는 집 한구석에 취미 활동들을 할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그곳에서 도자기 배우고, 뜨개질, 그림을 그리며 길고 긴 어두운 터널을 지나갔다. 매일의 일상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지만, 그날 느꼈던 고단함과 상처는 그날 저녁 스스로에 대한 마사지로 완화시켰다. 그러다 보니 점점 탄력이 생겨, 내가 바라보는 나는 꽤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졌고, 내가 하는 일들 하나 하나가 의미있게 생각되었다. 매일 스스로에게 되네었다. 인생에서 고통은 늘 상승곡선만 그리지 않고, 언젠간 그 상승 곡선이 하강하는 날이 오게 마련이라고.
가수 박효신의 ‘야생화’라는 노래처럼 야생화같은 내 인생도 봄이 오면 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메말라가는 땅 위에 온몸이 타 들어가고, 내 손끝에 남은 너의 향기 흩어져 날아가. 멀어져 가는 너의 손을 붙잡지 못해 아프다. 살아갈 만큼만 미워했던 만큼만. 먼 훗날 너를 데려다 줄 그 봄이 오면 그날에 나 피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