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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탓 Feb 09. 2020

잘 가

꼭 또 만나

이제는 노을이를 보내줘야 한다.

잊을까 모든 걸 기록하고

이제 정말

슬퍼하지 않기로 한다.


5월

석양이 유난히 예쁜 저녁이었다.

고향집에 내려갈 일이 없었음에도

노을이가 보고 싶어 굳이 친구의 이사를 도왔다.


한 달 만에 만난 노을이는

내 냄새가 반가워 폴짝폴짝 뛰었고

같이 놀자는 조카들을 뒤로하고

노을이와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엄마는 노을이가 산책만 나가면 짖는다고

위험하다며 놓고 가라고 했지만

나갈 생각에 벌써 온 집안을 뛰어다니는 아이에게

실망감을 안기기 싫었다.


엄마의 성화를 뒤로하고

우리는 봄 저녁으로 함께 뛰어나왔다.


저녁밥 짓는 소리가 동네에 가득했다.

날은 덥지 않았고

춥지도 않았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노을이와

노을을 바라보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우리 잠깐 쉬고 가자.


노을이를 옆에 앉히고

나도 가만히 앉아서

오늘은 정말 행복한 것 같다고 혼잣말을 했다.

웃어주기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더 자주 오겠다고 말하며 쓰다듬는다.


풀을 뜯어먹는 게 귀여워서

동영상을 찍었다.

아무리 불러도 카메라는 쳐다도 안보는 바보.

친구들한테 영상을 전송한다.


우리 아가 좀 보세요.

진짜 귀엽지?


이제 일어서자 하며 노을이를 불렀다.

주차장이었지만 차가 많이 다니는 길이어서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참이었다.


그 순간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에 놀란 노을이는

목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의 성화 속 급해진 손길이 꽉 묶지 못한

노을이의 목줄이

탁 하고 풀렸다.


언제나 그렇듯 목줄이 풀린 노을이가 달렸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난 목놓아 노을이를 부른다.

그쪽은 찻길인데

이러면 안 되는데

어쩌지 할 새도 없이

노을이는 뛴다.


저 먼 곳에서

달리는 노을이와 노을이 쪽으로 달려오는 차가

보인다.


나도 뛴다.

잡지 못할 걸 알면서

무능함을 뼈가 저리도록 느끼면서

아무것도 못할 거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면서

소리를 지르며 뛴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손발이 떨려 주저앉을 것 같았다.


노을이를 부르며 달리지만

절대

내가 먼저 노을이를 붙잡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불길한 기운을

제발이라는 단어로 밀어내듯

제발 제발

제발

제발을 외치며 노을이를 따라 뛴다.


노을아 제발 가지 마 노을아


내가 닿지 않는 곳에서

처음 듣는 비명소리가 들리고

세상이 잠시

멈췄다.


노을이가

절뚝거리면서 달려와 풀숲으로 숨는다.

차 주인이 멀리서

욕을 하는 게 들린다.


이리 와 이리 와 노을아 나와봐 제발

소리친다.

이미 장기가 다 터졌을 몸으로

나를 보더니 내쪽으로 터덜터덜

느리게 걸어온다.

그리곤 내 무릎에 주저앉아

나를 바라보며

숨을 헐떡인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119에 전화를 걸었지만

나에겐 세상이 무너지는 일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걸려오는 장난전화라도 되는 듯

딴 데다 알아보라고 하더니

전화를 끊어버린다.


입에서 피를 흘린다.

노을이를 흔들며 안된다고

안된다고 안된다고 말했다.


오늘따라 내 말은 하나도 듣지 않는다.

헐떡이던 심장이 멈춘다.

쿵쾅대던 가슴이 미동도 없다.

아직 누나한테 할 말이 남았는지

눈을 감지도 못한 채.

그 예쁘던 눈


눈물이 나지 않는다.

꿈일 거야.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머 죽었나 봐 한다.

나를 쳐다본다.

옷은 노을이 피로 물들고

따뜻했던 노을이가 식어가고

나도

같이

죽어가고 있었다.


노을이 눈을 감겨줬다.

눈물이 나지 않는다.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노을이가 죽었나 봐.

화내는 엄마 목소리가 파르르

떨린다.


엄마는

노을이가 없어지는 게 무서워

정을 주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이 무색하게

엄마는 매일 노을이와 누룽지를 나눠 먹으며

도란도란 드라마를 봤다.


그런 엄마한테

노을이가 죽었다고 말했고

엄마는 심장에서부터 목소리를 떨었다.


노을이를 안고 한참을 도로에 앉아있었다.

형부가 다가오는 게 보인다.

그만 일어나

얼른 일어나

묻어주자 좋은데 가게 해주자


그제야 눈물이 난다.

죽을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노을이는 여기 있는데

좋은 곳이 어딘데?


아빠 농장으로 가는 길 내내

죽은 노을이를 안고

목을 놓고 울었다.


아빠는 울지 말라고 했다.

아빠는 아빠가 더 슬프니까

울지 말라고 했다.


노을이를 아빠 품에 넘겨주며

나는 땅에 주저앉아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형부가

슬프지 말라고 했다.

내가 슬퍼하면 가족들이 모두 슬프니까

슬프지 말라고 했다.

슬프지 않는 건 어떻게 하는 거지


웃긴 소리라고 생각했다.

위로의 방법을 모르면

위로를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그 와중에 그런 생각이 드는 나한테

신물이 났다.


엄마가 붉다 못해 빨개진 눈으로 노을이 물건들을 치웠다.

좀 전까지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

아직 노을이 침도 안 마른 밥그릇

매일 앉아서 내가 가는 곳만 바라보던 방석

종량제 봉투에 담아버린다.


핸드폰을 열었다.

아까 보낸 영상이 보인다.

시간이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


노을이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도 노을이가 보이지 않는다.

원래 없던 존재처럼

어디서도 볼 수가 없다.


소파 가죽을

좀 더 물어뜯어놓으라고 할걸

이런 것들이 노을이의 유일한 흔적이라면

혼내지 말걸

코가 맵다 못해

눈이 터질 것 같이 눈물이 쏟아진다.


니트에서 이따금 노을이 털이 나온다.

노을이를 마주한 것만 같다.

그걸 뗄 때면

노을이가 떠나가는 것만 같아

차곡히 주머니에 모아둔다.


슬프지 말자 이제

눈을 감아도

그 거리에 서있지 말자 이제

그만하자 이제


노을이가 죽은 다음날

음식을 가운데 놓고는

아무도 먹지 못했다.


정을 주지 않겠다던 엄마는

밥을 먹으며

단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빨간 엄마 눈에서

눈물이 자꾸만 새어 나왔다.


슬픈 엄마를 보니 너무 슬퍼졌다.

형부의 말이 이해가 됐다.


슬픈 나를 보면 노을이도 슬프겠지

다른 강아지를 보며

마음껏 귀여워하지도 못할 만큼

매일 그립고 또 사무치고

가끔은 너무 보고싶어 가슴을 친다.


그래도

이제 우리 그만 슬프기로

하자.

그렇게 하자.


나중에 다시 만나.


꼭 그러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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