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그가 떠났다.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그가 없는 동안 나는 오직 아이들의 안락한 보금자리로 살거라 마음먹었다. 말 대신, 그가 안심할 수 있게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 미국 주재원 소식을 접했을 때, 우리 세 모녀에게는 날벼락 같았다. ' 회사는 도대체 내 나이는 알기나 하고 결정한거야 ' 특히 중학생 딸은 가장 힘들어 했다. 우리는 며칠동안 얼싸안고 울었다.
아이는 말도 안통하는 새로운 환경에서 한국의 친구들과 소통하며 그 시간을 버텼다. 다시 돌아갈 준비와 함께 한국 공부도 놓지 않았다. 그러나 11학년이라는 학년이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걸림돌이 될 줄이야. 긴 가족회의 끝에 우리는 잠시 기러기 가족의 길을 택했다.
독립적이었던 나는 결혼 후 남편의 그늘에 안주하게 되었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아이들과만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큰 결정을 내리고 한숨 돌리는 듯 했지만, 몸과 마음을 준비해야 했던 일 년은 쉽지 않았다.
흔히 40대 이후,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만이 주말부부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런데 나는 이역만리 떨어져 사는 기러기라니. 시간이 흐르면 그도 아이들도 성장해 제각기 독립할 것이다. 나만 뒷바라지하느라 훗날 빈 둥지 증후군으로 힘들어하는 상황을 만들지 말자고 결심했다. ' 그래 지금은 우리 모두 성장의 시간이야, 우리에게만 주는 특별한 선물이 될 거야! '
오랫동안 품고만 있던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에게 ' 짜잔 ' 선물처럼 보여주고 싶었다. 다꾸(다이어리꾸미기의 준말)라는 나만의 독특한 콘텐츠도 있으니, 자신감도 차올랐다. 글을 쓰는 과정은 나를 찾는 불씨가 되어 주었다. 그러나 거듭된 좌절은 글과는 인연이 없구나 싶었다. 굳게 쥐고 있던 두 주먹의 힘도 풀리며, 모든 것이 날아간 듯 더는 도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책을 집필할 기회가 찾아왔다. 탈고할 즈음 나는 내가 쓰고 싶었던 것만 썼을 뿐 브런치나 독자들이 원하는 바에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두 번의 쓰라린 경험은 내 오만함을 꺽고 나를 바로 세운 시간이었다. 독자에게 한층 가까이 가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탈고 후 재도전했고, 하루가 채 안 돼서 합격이라는 기쁜 메일을 받았다.
합격만 하면 매일 글을 쓸 줄 알았다. 그러나 브런치 스토리라는 공간이 주는 힘이 생각보다 컸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SNS와는 다르게 더 신중해졌다.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이 무게감을 더해 글은 좀 더 정제되었다. 맘에 드는 글을 써놓고도 발행 버튼을 누르기까지 몇 번의 망설임이 필요했다. 결국 그해 가을 원하던 브런치북을 발행하지 못했다. 머뭇거리며 흘려 보낸 시간이 아쉽기만 했다. 그러나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비록 브런치북은 출판되지 못 했지만, 그 다음 해 한국문협 워싱턴지부에서 수필 부문으로 상을 받으면서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브런치 작가 3년 차인 지금, 작은 전시회를 계기로 다꾸 클래스와 공방 운영 그리고 워크숍까지 이어졌다. 한국의 도서관은 물론 2025년에는 미국 워싱턴주 세 개의 카운티 도서관에서 내 책이 대출되기 시작했고, 타국의 서가에 꽂힌 책을 보니 꿈이 현실로 실현되고 있음을 만끽했다. 현재는 미국 도서관에서 콜라주 아트로 가을 전시회 중이며, 시애틀문학의 구성원으로 3년째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성취보다 더 다가온것은 스스로의 호흡에 맞춰 내 길을 찾아 걷고 있는 발걸음이었다. 무겁기만 했던 두려움 자루가 점점 가벼워지면서 빛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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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 글을 쓰겠다는 다짐은 나를 한방향으로 이끌었다. 브런치가 아침과 점심을 잇듯, 브런치 플랫폼은 내게 문학과 예술을 아우르는 다리였다.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않고, 균형을 잡게 해 준 내 삶의 든든한 가교가 되었다. 나는 오늘도 나만의 색을 뿜으며 그 다리를 걷는다. 저 다리 뒤의 나를 기다릴 미래를 꿈꾸며.
#브런치 10주년 작가의 꿈
#그라시아와 함께 하는 빈티지다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