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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로 Sep 15. 2022

맨발로 여름을 밟고

만평

발이 몇 개쯤 더 필요해. 겨울에도 양말 신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여름이 오면 환호할 일이다. 아무 거리낌 없이 맨발에 가까운 상태로 어디든 쏘다닐 수 있다. 가벼운 샌들은 여름만 되면 발에 이식한 수준. 동네 도서관과 단골 술집들을 뱅뱅 돌아다니며 발등에 하얗게 뙤약볕의 끈 자국을 새겼다.


봄에 멀리 여행을 다녀왔으니 이번 여름은 조용하게 보내기로 했다. 친구들이 산으로 바다로 떠난 사진을 보며 소파에 누워 꼼질거렸다. 깨끗하고 말랑한 맨발의 감촉을 만족스레 즐기면서. 독서는 시간과 고독이 필요하다. 비가 많이 쏟아지거나 감기 기운이 있거나- 친구들을 만나러 고생스레 나가고 싶지 않은 그런 날이 알맞다. 올여름은 오래전에 읽었던 고전들을 다시 읽어야지- 하면서도 가끔씩은 바닷가 모래를 엄지발가락으로 후벼파고 시원한 진흙을 뭉개는 상상을 하곤 했다.



제주도 민박집 마당에서 내가 먹던 소시지를 탐내던 귀여운 들개, 생각지 못한 편지, 방향을 헤매다가 들어선 비포장도로를 떠올린다. 숲을 걷고- 별을 보며 잘 알지도 못하는 별자리들을 대충 읊어대고- 맛집을 기어코 찾아가서 경건하게 사진을 찍고- 그러다 녹초가 되어 빨랫감을 잔뜩 이고 지고 세상의 수많은 집 중에서 내 집을 찾아 열심히 돌아오는- 여기까지 하자. 여행은 나의 아늑한 소파에서 마저 하기로 한다. 캔맥주를 따고 읽던 페이지를 더듬으며 꼼지락꼼지락.


맥주나 더 사러 가자. 여름 밤거리는 느긋하면서도 활기가 있다. 뒷짐지고 개를 산책시키는 할머니, 뛰어다니는 아이들, 깔깔대며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여자들 사이로 걸어간다. 어쩐지 상쾌한 기분이 든다 했더니 미세하게 식어버린 바람이 발끝에 감긴다. 가을이 바람에 실마리를 실어 온다. 이제 슬슬 겨울 코트를 장만할 때인가. 올겨울엔 그걸 입고 젊은이처럼 두둠칫거리며 만평에 가야지. 지난겨울에 미리 설레던 여름을 대충 살면서 또 어쩔수 없이 다음 계절에 설레고 있는 나, 방구석 모험가는 책을 펴고 조용히 겨울의 따끈한 정종 생각에 빠져든다.



-장르 : funk, soul, disco, rock, 가요

-볼륨 : 대화가 가능한 정도

-플레이 포맷 : vinyl only

-신청곡 : 불가


-인스타그램 @manpyung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9-4 2층

-02–0104-7559

-월, 화요일 휴무


<JoJo’s comment>

머리가 조금 복잡한 날, 어디로든 가고 싶어서 터덜터덜 걷다가 목이 마를 수 있다. 음악도 고플 수 있다. 합정동에서 당인리 발전소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단출한 만평의 간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커다란 디제잉 데스크가 눈에 들어온다. 컬렉션의 양은 많지 않지만 퀄러티는 훌륭하다. funk나 disco 장르의 음악이 자주 플레이 되어 춤을 추기도 좋은 분위기다. 두 개의 턴테이블을 왔다 갔다 하며 부지런히 디제잉을 하는 디제이를 뒤로하고 시원한 칵테일을 한잔해보는 것도 좋다. 가만히 바에 앉아 잘 엄선된 음악을 듣다보면 아무런 생각이 없어진다. 오늘만큼은 만평에서 홀가분한 저녁을 보내보자. 파티를 원한다면 비정기적으로 개최되는 하세가와 요헤이, 타이거 디스코 등 로컬 DJ들의 특별 디제잉을 노려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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