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에 대한 소고

by 창빈

이 글은 2013년에 발매된 라스트 오브 어스 1 편과 얼마 전 발매된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에 대한 중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아직 게임을 플레이해보시지 않은 분들은 주의해 주세요.















많은 게이머들의 혹평과는 다르게, 저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를 게임사에서 두고두고 레퍼런스 될 역사적인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의 스토리텔링이 어떤 점에서 저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는지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생각을 다룬 글입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 1 편은 미국에 좀비 바이러스가 발생한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딸을 잃은 남성 조엘이, 바이러스에 면역을 가진 엘리라는 아이를 통해 백신을 만들기 위해 파이어플라이라는 조직에 데려가는 여정에서 둘의 유대감이 쌓여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1 편의 결말로부터 4년이 지난 미국 와이오밍 주 잭슨에서 시작됩니다. 엘리는 어느새 성인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고, 비교적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애비라는 인물과 그의 일행이 찾아와 1 편의 주인공 조엘을 아주 잔인한 방식으로 살해합니다.


전작의 주인공을 후속작의 초반에 갑자기 죽여버리는 것이 제작사 너티독에게 절대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겁니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성공 여부를 떠나 전작의 팬들로부터 웬만큼의 비난은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만큼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효과적인 방식도 없기는 합니다. 게이머에게 아주 강력한 충격과 남은 부분을 플레이할 추진력을 주는 동시에 말이죠. 결과야 어찌 되었든, 이러한 방식은 게이머로 하여금 한 가지 의문을 들게 합니다.



애비는 조엘을 왜 그렇게 끔찍한 방식으로 죽였나?



이에 대한 궁금증을 뒤로한 채, 엘리는 조엘의 복수를 위해, 그리고 조엘의 동생 토미를 찾기 위해 시애틀로 향합니다. 오래전 조엘이 자신을 무사히 파이어플라이에게 데려가기 위해 수많은 좀비와 인간들을 죽였던 것처럼, 복수를 위해 수많은 살육을 저지릅니다. 여자 친구 디나와 함께 애비의 동료들을 찾아내어 심문하면서 애비의 행방을 쫓습니다. 그 과정에서 디나가 전 남자 친구 제시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혼란스러워합니다. 이 부분은 정말 묘했습니다. 좀비가 창궐한 세상에서도, 사랑을 나누고 복잡한 관계 속에서 괴로워하는 인간의 모습을 덤덤한 방식으로 풀어낸 것 같아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장면이었습니다.


여차저차 엘리는 애비가 머물고 있을 것이라 예상되는 어느 아쿠아리움으로 침입합니다. 하지만 그곳에 애비는 없고, 그의 동료 멜과 오언이 남아있었습니다. 둘을 심문하려던 찰나에 오언이 엘리를 공격하고, 엘리는 당황하여 둘 모두를 죽이게 됩니다. 그런데 아뿔싸, 죽은 멜의 배를 보고 엘리는 경악합니다. 그가 임신 중이었던 겁니다. 엘리는 그 자리에서 고통스러워하다 갑작스레 찾아온 토미와 제시의 손에 이끌려 디나가 머물고 있는 극장으로 돌아옵니다.


극장으로 돌아온 엘리 일행은 휴식을 취하던 중 애비의 습격을 받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시가 죽고, 토미 또한 무력화되어 엘리는 더 이상 가망이 없어 보입니다. 애비는 대체 어떻게 이곳을 알고 찾아온 것일까요? 이야기는 대체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일까요?


게임은 애비의 과거 시점으로 넘어가, 이제부터는 플레이어가 직접 애비를 플레이하게 됩니다. 이러한 시도는 퍽 놀라웠습니다. 엘리 입장에서, 즉 플레이어 입장에서 애비는 절대악이기 때문이죠. 악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일은 굉장히 중요한 일인 동시에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물며, 그 절대악을 플레이어가 직접 플레이한다니요.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다가도 금방 끝나겠지 생각했습니다만, 아니더군요. 과감하고, 어찌 보면 황당한 시도였습니다. 조엘의 죽음까지는 간신히 버티던 절대다수의 유저들은 이 부분에서 너티독에 대한 신뢰를 저버린 듯합니다. 저 또한 제작사가 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것인가에 대해서 수 차례 혼자 질문을 했고,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절대선과 절대악은 없다. 적어도, 좀비가 날뛰고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된 망한 세상에서는.



너티독은 선과 악의 경계가 사라진 사회를 상상했고, 어떻게 하면 플레이어로 하여금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느끼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듯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흔히 시도되지 않는 방식으로, 아주 훌륭하게 성공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유저는 애비를 플레이하면서, 애비의 조직과 대립하는 조직인 세라파이트에서 탈출한 두 아이 야라와 레브를 도와주면서, 플레이어는 혼란을 겪습니다. 이것은 너티독에 의해 완벽하게 의도된 혼란이자, 불편함입니다.



애비는 사실 착한 녀석인가?



또한, 애비의 아버지가 사실 4년 전 파이어플라이에서 유일하게 백신을 만들 수 있는 의사 (살아있는 사람들 중 유일하게 백신을 만들 수 있는 의사라는 표현도 틀리지는 않아 보입니다) 였고, 엘리를 수술하려 하던 중 조엘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이라는 것을 플레이어가 알게 되었을 때, 왜 조엘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였어야만 했는지 납득이 됩니다 (용서가 되는 건 물론 아니지만요). 하지만 이는 전작을 사랑했던 플레이어 입장에서 명백히 불쾌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전작의 주인공을 살해한 인물, 즉 플레이어 입장에서 절대악에 해당하는 인물에게 과거와 서사를 부여하는 동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셈이거든요. 또한, 애비라는 인물에게 이야기가 가미될수록 선과 악의 경계는 불분명해집니다. 사실은 엘리가 더 악랄한 것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요 (극장 전투에서 엘리의 함정 지뢰에 게임 오버당할 때에는 정말...).


이러한 착각은 극장 전투에서 애비가 승기를 잡았을 때, 디나와 앨리를 죽이지 않는 데에서 절정에 다다릅니다. 엘리는 디나가 임신을 했다며,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합니다. 비록 자신은 임신한 멜을 죽였더라도 말이죠 (인지하지 못했던 상태이긴 했지만). 결과만 놓고 보자면, 애비는 자신이 속했던 조직인 파이어플라이와 울프를 모두 잃었고, 자신의 아버지를 포함해 사랑하던 멜과 동료를 전부 잃었음에도, 엘리 일당을 전부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반면, 엘리는 조엘과 제시를 잃었지만 돌아갈 곳 까지는 잃지 않았고요. 이쯤 되면 정말 어렵습니다.



진짜 누가 나쁜 놈이야...?



시간이 흐른 뒤, 엘리와 디나는 아이를 기르며 평온하게 살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엘리는 여전히 조엘의 복수를 하지 못한 데에 대한 미련과 트라우마에 시달립니다. 타이밍 좋게 토미가 등장해서 애비가 샌타 바버라에 있다는 것을 둘에게 알려주고, 복수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망설이던 엘리는 결국 떠납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엘리의 심정에 공감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에서 유지태가 최민식에게 했던 한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복수가 다 이루어지고 나면 어떨까? 아마 숨어있던 고통이 다시 찾아올걸?



이제는 잃을 것이 더 많은 엘리는, 꼭 애비를 찾아 죽이고 말아야만 속이 후련했을까요? 어렵게 찾아낸 애비에게서 3대 운동 500kg 은 거뜬히 들 것 같던 장대한 기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오히려 당장 아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애비를 보고 엘리는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듯합니다. 엘리는 기둥에 묶여 있는 애비를 풀어준 다음, 애비가 정신을 잃은 레브를 데리고 도망가려는 것을 지켜만 봅니다. 그러다 문득 조엘이 애비에게 골프채로 맞아 죽는 모습이 다시 떠오르고, 이대로는 애비를 보낼 수 없다며 결투를 신청합니다. 엘리는 사실 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애비를 손쉽게 죽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이고 싶었을 겁니다. 조엘이 당했던 것처럼요. 결국 엘리는 애비를 제압하는 데에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왼손가락 두 개를 잃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애비의 목을 조르는 순간, 엘리는 조엘이 평온하게 기타를 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애비의 목을 놓아 살려줍니다. 애비가 자신을 살려줬던 것처럼요.



그 순간, 엘리는 나름의 구원을 얻었을까?



애비를 제압하기 전까지, 엘리가 기억하는 조엘의 마지막 모습은 죽기 직전의 피범벅이 된 얼굴이었습니다. 애비를 제압하고 난 다음에야 엘리는 피범벅의 조엘이 아닌, 무도회장에서의 해프닝이 있던 날 밤에 커피를 마시던 조엘과의 대화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엘리의 감정 변화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마다 분명히 다르게 느꼈을 부분이고, 너티독 또한 게이머들이 획일화된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게임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한 가지 확신하는 부분은, 엘리가 애비의 숨통을 끊기 일보 직전에, 순간적으로 무언가 중요한 감정 변화를 겪었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엘리는 순간적으로 애비에게서 과거의 조엘을 투영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파이어플라이로부터 자신을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던 조엘과, 레브를 지켜야 하는 애비. 만약 그때 애비의 목을 졸라 죽였었더라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레브의 죽음 또한 초래했을 것입니다. 그 말인 즉, 애비를 파괴하는 것은 결국 조엘을 파괴하는 것임과 동시에 엘리 자신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엘리는 용기 있고 현명한 선택을 했지요.


텅 빈 집으로 돌아온 엘리는 남아있는 세 손가락으로 기타를 잡고 조엘과의 대화를 떠올립니다. 자신은 병원에서 백신을 만드는 데 사용되어 죽었어야 한다고 조엘을 욕하지만, 조엘은 그런 엘리에게 되받아칩니다. 이 대사에서 저는 눈시울을 붉히고야 말았습니다.



"신이 그 순간으로 돌아갈 기회를 준다 해도... 나는 모든 것을 똑같이 할 거다."



라스트 오브 어스 1편의 막바지에서 너티독은 게이머에게 철학적 질문 (백신을 만들지 말고 엘리를 살릴래? 엘리가 죽더라도 백신을 만들어 세상을 구할래?) 을 던지는 것 같다가도 이를 고민할 여유조차 주지 않고 바로 답 (엘리를 살릴래!) 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파트 2의 전체적인 스토리텔링은 이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오히려 플레이어는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하고, 끊임없이 생각해야 합니다. 전작이 선사했던 통쾌함과 비교하면 상당히 불친절한 편이죠.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기성 게임보다는 오히려 문학 작품이나 예술 작품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너티독은 무엇을 하려 한 걸까?



저는 비디오 게임이라는 매체가 크게 오락으로서의 기능과 예술로서의 기능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 1편은 이 두 가지의 기능 모두에 충실한 아주 훌륭한 게임이었습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 또한 마찬가지입니다만, 특히 이번 작품이 이룬 예술적 성취는 제게 있어서 꽤 놀라웠습니다.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할 수 없는 입체적인 인물들과 꼬일 대로 꼬여버린 선악의 경계, 멸망 위기에 놓인 세상에서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는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을, 그리고 그 속에서도 이루어지는 사랑을, 게임이라는 매체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방식을 통해 끔찍하게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너티독은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세상의 풍경화를 그렸습니다. 그 속에 어떤 고정된 메시지나 교훈은 없습니다. 많은 위대한 문학 작품과 영화가 그런 것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