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작가 '일곱 해의 마지막' 을 읽고
김연수 작가의 책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년에 출간된 산문집 '시절일기'를 구매는 해 놓았지만 아직 읽지는 못했다. 왜 김영하 작가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거에요'
이 소설은 시인 백석이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까지 북한의 주류 문단에서 쫓겨나게 되는 일곱 해 동안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아마 김연수 작가가 철저하게 조사했을) 당시 백석의 주변 인물과 사건들을 중심축으로 펼쳐지는데, 그에 덧씌워진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다. 이를테면, 이따금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풍경 묘사 말이다.
강쇠바람이 독골 깊은 골짜기를 가을빛으로 물들이면, 남쪽으로 트인 하늘로는 진청의 허공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졌다. (1963년 여름, 삼수. 227p)
놀랍지 않은가? 이런 문장들을 읽고 나는 속으로 '김연수 작가는 북한에 다녀와 본 적이 없을 텐데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쓰지...?' 같은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또한, 탄압을 받으며 괴로워하는 백석의 내면에 대한 묘사가 굉장하다. 아래는 당시 북한에서 당에 반대하는 작가들의 책을 각지의 도서관이나 개인에게서 모조리 빼앗아 불태워 버리는 일에 대한 서술이다.
그렇게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이고, 현실은 그 무수한 세계가 결합된 곳이다. 거기에는 아름다운 세계가 있고, 또 추악한 세계가 있다. 협잡이 판치는 세계가 있고, 단아하고 성실한 세계가 있다. 어떤 세계는 지옥에, 또 어떤 세계는 천국에 가깝다. 이 모든 세계가 모여 다채롭고도 영롱하게 반짝이는 빛을 발하면 그것이 바로 완전한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 한 권이 불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인 한 명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현실 전체가 몰락하는 것이다. (혜산은 봉우리 너머에. 190-191p)
무엇보다 압권인 것은 이 책의 마지막 '작가의 말' 이다. 몇 문장을 짧게나마 가져와 본다.
덕원의 신학교 악단이 연주하는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을 그가 들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기행 (백석의 본명) 은 1937년의 어느 여름날, 해변에 누워 이 곡을 듣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일들은 소설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소망했으나 이뤄지지 않은 일들, 마지막 순간에 차마 선택하지 못한 일들, 밤이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일들은 모두 이야기가 되고 소설이 된다.
(중략)
그런 그에게 동갑의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저 사랑을 잃고 방황하는 젊은 기행에게는 덕원신학교 학생들의 연주를 들려주고 삼수로 쫓겨간 늙은 기행에게는 상주의 초등학생이 쓴 동시를 읽게 했을 뿐. 그러므로 이것은 백석이 살아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자, 죽는 순간까지도 그가 마음속에서 놓지 않았던 소망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의 말, 245-246p)
정리하자면, 김연수 작가는 백석이 실제로 겪은 일련의 사건 위에 그가 했던 생각과 대화를 재구성하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상상을 선물한 셈이다. 존경과 경의와 사랑을 담아서.
그래서 나에게는 이 책 전체가 시인 백석을 위한 소설가 김연수의 러브레터로 읽혔다. 남의 편지를 읽는 것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닌데, 어째서 이 편지는 다 읽고서 눈물이 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ps. 이 책의 출판사는 문학동네인데, 최근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 관련 사건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 굉장히 실망했다. 권력을 가진 집단이 자신들의 힘을 선한 데에 쓰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들이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그것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음을 항상 경계했으면 좋겠다. 문학동네, 창비, 그냥 쿨하게 잘못했다 하고, 재발 방지 약속하고, 수상 취소하고, 책 회수하면, 당장 매출은 좀 떨어지고 흑역사 하나 남기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대로 어물쩡하게 넘기면 정말 안 될 일이다. 여기 임원들은 이 사건 이후로도 회사 직원들이 이전과 같이 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건가?
ps2. 김초엽 작가님께 무한한 지지와 존경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