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강박증

프롤로그

by 빙하



"엄마, 음량 짝수로 맞춰달라니까. 나 홀수에 두는 거 싫어하는 거 알면서."

"12랑 13이랑 뭐가 다른지를 모르겠네. 나참."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이게 무슨 대화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음량을 짝수로 맞춰? 홀수에 두는 걸 싫어한다는 말이 어떤 뜻일까. 사실 깊이 있게 이해할 만한 대화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TV 음량을 홀수가 아닌 짝수로 맞춰 달라는 내 나름의 부탁이니까.




여기까지 부연 설명을 마쳤을 때쯤 몇몇 사람들은 나를 보며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저 사람 강박증이 있나? 맞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주 사소한 강박증을 달고 살아왔다. 의사도 아닌 내가 강박증이란 정의를 내려가면서 '사소하다'라고 표현하는 게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살아가는 데 큰 문제가 없으니까. 나에겐 사소함의 범주에 속했다.




가끔 친구들과 강박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었다. 그럼 친구들은 하나같이 입 모아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강박증에 대해 쏟아내기 바빴다. 누가 어떤 부분에 어떤 식으로 집착하는지는 친구들 나름의 사생할 이기에 구구절절 풀 수가 없지만, 이 브런치엔 내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충분하다는 건 특정 행동과 사물에 집착하는 증상이 나에게 여럿 있다는 게 되기도 하겠지만, 난 정말 여기에 대해 할 말이 너무 많다.








강박증의 뜻을 찾아보니 강박증이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생각이나 장면이 떠올라 불안해지고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질환'이라고 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난 나름의 합리화를 시작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에 포인트를 두고 말이다. 내가 타인의 일상에 해를 입히지 않는다면 내가 가진 정도의 강박증은 유연하게 끌고 가도 되지 않을까. 꼭 고쳐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만 몇 년, 그럼에도 의문으로만 남긴 게 몇 년, 서른을 넘긴 지금에 와선 이젠 잘 모르겠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데 나도 일종의 버릇인 셈인 이 강박적인 증상들을 못해도 여든까진 가지고 가지 않을까. 그렇다고 여든에 프리덤을 외치며 해방감을 느낄 거라고 기대하는 건 또 아니다. 앞으로 내가 쓸 이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사람이 생기기만 한다면, '나만 이런 게 아니야'에서 오는 안도감만으로도 프리덤은 충분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