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자유이용권

by 빙하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이 주제가 던져졌을 때 바로 떠오른 건 '엄마'였다.



난 너무나도 답이 뻔히 나와있는 사람이었다. 엄마 앞에서 만큼은 벌거벗은 원숭이가 된다고 해도 부끄럽지가 않았다. 부끄러움은 어느 누구의 몫도 아니며, 엄마 앞에선 누구보다 나다웠다.




나이 치고는 이직을 자주 한 편이었다. 첫 번째 회사는 일이 너무 많아서, 두 번째 회사는 체계가 불안정해서 등등 나름의 이유가 있어 회사를 옮기다 보니 지금 정착한 곳이 다섯 번째 회사였다. 누구나 그렇듯 멀쩡하게 잘만 다니던 일자리를 박차고 나올 땐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특히 가족, 그중에서도 부모님의 시선이 가장 두렵다는 건 2030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첫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을 무렵, 엄마가 나를 어떤 식으로 바라볼지에 대한 시선이 가장 염려스러웠다. 엄마가 나를 무조건적으로 포용해 주기를 바랐지만 때론 당근보다 쌉싸름한 채찍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기에, 일단 가면을 쓰고 내가 이 회사를 나가고 싶은 이유에 대해서 그럴듯하게 포장을 했다. 이건 일종의 꽃꽂이 같기도 했다. 괜찮아 보이는 꽃들을 주변에 우수수 꽂아 일단 볼품없는 것부터라도 가려보려고 했으니 말이다.




구구절절 맥락 없이 뱉어내는 내 말을 듣던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너 맘대로 해. 너가 그만두고 싶음 그만두는 거지.




그래도 더 다녀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이나 왜 남들처럼 버티질 못하냐 따위의 말이 아니었다. 일이 많다는 이유로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 건, 인내가 부족한 나다운 결정이었다. 회사 체계가 불안정해서 그만두는 건 합리화를 잘하는 나다운 결정이었다. 그 뒤에 이어진 세 번째, 네 번째 퇴사 역시 각각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만 전부 나였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엄마는 그때마다 늘 같은 반응이었다. '너 맘대로 해.' 나는 이게 일종의 방관이나 무심함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엄마는 내 딸이 가진 강정을 알고 있는 것만큼이나 약점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어떤 포인트에서 퇴사 버튼이 눌렸는지 쯤은 쉽게 간파했을 테고, 그게 나다운 결정이었기에 존중을 해준다는 게 엄마의 진심이었을 거다.








첫 번째 퇴사를 기점으로 줄지어 이어지는 이직의 순간에서, 난 더 이상 엄마에게 그럴듯한 포장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엄마한테 '엄마 나 그만둘지도 몰라'라고 카톡을 휙 던진다거나, 퇴근하면서 엄마아아악! 곡소리를 내며 들어와 '회사 그만두면 나 욕할 거야?'라고 한다거나.



가장 최근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둘 때는



엄마 나 또 발동했어. 나 알지? 프로이직러인 거.




당시 엄마 반응은 무척이나 뻔하면서도 웃겼다.



빙하야, 또 시작됐냐. 맘대로 해라 맘대로.




또 시작됐냐, 이 말에서 변덕스러운 나에 대한 지긋지긋함이 느껴지면서도 결국은 너 답다 정말~ 못 말리겠네 못 말리겠어, 라는 식의 수긍이 너무나도 투명하게 보였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그냥 웃었다. 퇴사를 결심하고 마냥 웃어버리는 것도 엄마 앞이라서 가능한 행동이었다.




엄마가 내게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들 만큼이나 나도 엄마 앞에선 그 누구보다 투명해질 수 있었다. 난 인내가 없고 변덕스럽고 핑계도 많은 타입이다. 때로는 짜증도 많이 내고 화를 못 참을 때도 있으며 내 생각이 옳다고 이기적으로 밀고 나갈 때도 많았다. 슬픈 드라마를 보며 우는 것도, 갑자기 엉덩이를 이리저리 흔들며 이상한 춤을 추는 것도, 발가락으로 따봉 하는 걸 보여준다며 맨발을 코 앞에 들이미는 것도 엄마 앞에선 모든 게 가능했다.




오늘도 난 거실 한가운데 널브러진 채로 '아무것도 하기 싫어'를 외치는 중이다. 가장 나 다울 수 있는 곳에서, 가장 나 답게 만들어주는 사람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