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불행을 원해

by 보라구름

요즘은 최대한 멍 때리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애쓰는데 이동 중에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을 만지는 대신 잠시나마 아무것도 안 해보기, 퇴근 후 습관적으로 텔레비전이나 팟캐스트를 켜지 않음으로써 무언가를 보거나 듣는 행위 중단하기. 대략 이 정도다.


그냥 잠시만이라도 행동을 멈추면 수면 아래로 잠겨 있던 것들이 천천히 조금씩 떠오르는 것을 느끼게 된다. 대체로 샤워 중일 때 이 생각들이 제대로 위로 올라와 발견이 되곤 한다. 이제는 인연을 끊어버린 한 상대방이 이따금 꿈에 나오곤 한다. 아마도 무의식 어딘가에서 기억들이 뒤엉켜 굴러다니는 모양이다. 바로 저 인연에 대한 생각도 그러하다. 어느 날 샤워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상대방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던 적이 있던가? 사이가 좋았다고 여겼을 무렵에도? 언뜻 떠오르는 대답은 '없다'였다. 나는 지독한 질투와 시기심으로 가득 찬 인간이라 가까운 상대방의 행복조차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안타까운 사람인 걸까? 그런 나를 인정해야 하나? 고개를 떨구고 하던 샤워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한참 일상에서 여느 날과 다름없이, 업무를 하다가 읽던 텍스트에서 그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내가 딱히 그 상대방을 도가 지나치게 질투하거나 시샘해서가 아니었다. 돌이켜보니 그 상대방은 자신이 잘 나갈 때, 바쁠 때와 그 반대일 때 완벽하게 다른 태도로 굴었다. 우울하고, 되는 일이 없고, 세상 비참할 때는 나를 찾았고 내가 없으면 안 되고,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는 말을 울먹이면서 했다.


하지만 그 반대일 때는? 아무리 일정을 맞춰보려고 해도 만날 약속을 잡기가 힘들었고 어쩌다 잡은 약속도 번번이 당일에 깨버렸다. 내가 사는 동네 바로 앞까지 와서도 자기 볼일만 보고는 문자 하나 남기고 가버렸고 그렇게 방치되어버렸다. 방치되었던 그 시기는 하필 내가 지독하게 외롭던 시기였다. 그것은 내게 각인이 되어 나는 자동반사적으로 불행을 원했던 것이다.


이제는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이므로 더 이상 너의 불행을 원할 이유도 없어졌다. 솔직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의 불행을 원했다. 예전처럼 그렇게 죽도록 불행해져서 벼랑 끝에 내몰려서 울면서 나를 찾아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었던 거겠지.


너의 행복을 빌어주고 싶지도 않지만 더는 너의 불행을 원하지도 않는다.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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