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잘하세요
항상,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타입이다. 그래서 긴 연휴나 휴가, 주말이 되면 나름의 스케줄링대로 스스로를 채근하며 마음이 바쁘다. 계획대로 잘 굴러가지 않으면 조바심이 나고, 짜증이 나다가, 스스로를 다그치다 못해 경멸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그런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다.
우연히 10년 전쯤에 쓴 일기를 보게 되었는데 지금과 동일한 고민을 하는 걸 알게 되었다. 왜 글을 쓰지 못하는지 걱정하며, 써야 하는데 하는 근심이 한가득이었던 예전의 나와 현재의 나.
우울과 불안이 심할 때는 글을 쓰는 건 고사하고 읽는 것조차 버겁다. 아주 짧은 글도 집중해서 읽을 수 없고 먹고살기 위해 노동자로서 일을 할 때도 겨우겨우 집중해서 일을 하며 버티는 정도다. 역시 업무 중에도 집중하지 못해 아차, 하는 순간 사고를 치기도 하니 말해 무엇하랴.
그런 상황에서 글을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자책과 근심이 이어지는 걸 떠올린다면 도무지 마음 편할 날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스스로 다시 되물어보았다.
글을 왜 써야 하니? 이제는 마감을 치는 기자도 아니고, 글 써서 먹고사는 직업도 아닌데 글을 써야 한다니 이건 무슨 의무감이야?
창작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속에 품어둔 그 씨앗은 아주 어릴 때 심어둔 것 같은데 정말 나 스스로 온전히 그걸 원해서 심은 게 맞는지, 아니면 부모가 심어준 건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다만, 내가 소설이나 드라마 대본을 썼을 때 느꼈던 희열과 충만함을 기억하고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게 의무처럼 마음에 무겁게 남아서 나를 짓누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전히 나는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동기나, 선배, 그 외 직장생활에서 만났던 한 때는 같은 직장인이었으나 이제는 작가가 된 사람들의 소식을 접하면서 열패감에 빠져 스스로에게 힐난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비교하면 불행할 뿐이라는 것은 잘 알지만, 그걸 실천하는 게 쉽지는 않다. 한편으로는 심한 우울증으로 치닫지 않고 약물과 상담 치료로 잘 관리해오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특하지 않은가 스스로를 칭찬하다가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래서 너는 언제 쓸 건데 글? 하는 물음표를 담은 화살을 날려버리려고 벼른다.
다행히 그런 감정을 알아채고 활을 거두도록 달랜다. 게을러서 그런 게 아니야. 아파서 그런 거야. 그렇게 스스로에게 답을 하다 보니 어쩌면 이것도 왠지 변명하는 것 같고 구차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 다른 답도 추가했다.
게으른 거면 어떻고, 마음속에서 하고 싶은 의지가 끓어오르지 않는 거면 어때? 그게 뭐가 문제야? 정말 하고 싶어지면 그때 하겠지. 날 내버려 둬. 판단하고, 평가하지 마!
오, 그렇게 말하고 나니 마음이 전보다 한결 편해졌다. 그래서 지금 이 포스팅도 쓸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그 답을 던지기 전까지는 계속 초자아의 눈치를 보는 것 같고 변명만 늘어놓고 일 머리 없는 데다 게으른 후배 같은 느낌이었는데 말이다.
육아와 관련한 프로그램이나, 책을 보면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게 있다. 백 번 천 번 옳은 말, 옳은 방식의 양육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방식을 나 자신에게 적용해야겠다는 것. 믿고, 조건 없이 사랑하고, 기다려 주고, 언제나 지지하는 든든한 편이 되어 주는 것. 다름 아닌 나 자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