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큼 미용실로 달려간 나
그의 시선이 자꾸만 내 눈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위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한참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얇은 입술을 꾸물 거린다.
"너의 진짜 머리카락 색이 더 예쁠 것 같아."
"진짜 머리카락 색?"
그러고 보니 밝은 갈색으로 염색된 내 머리카락은 길게 늘어져 가슴선까지 내려와 있고, 머리 뿌리에는 빼꼼히 검은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두 가지 색이 혼재한 내 머리카락이 다시금 뿌리염색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검은색 머리카락은 차가운 인상을 보인다는 누군가의 충고를 듣고부터 줄곧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습관적으로 밝은 컬러의 염색을 지속해 왔다. 밝은 인상을 주기 위해 주기적으로 3달에 한 번은 미용실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염색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냥 습관으로 굳혀져서 별생각 없었는데 나의 머리색에 관심을 가져주는 10살 어린 미국인 남자친구의 이야기를 듣고는 아차 싶었다.
진짜 내 머리카락 색을 본 적이 언제였더라?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줄곧 염색을 했으니 십몇 년 이상을 끊임없이 색을 입히는 행동을 반복했었다. 다음날 나는 미용실로 달려갔다.
"평소처럼 뿌리염색 해드리면 되죠?"
젝스키스 은지원 덕후인 디자이너 선생님의 물음에 나는 재빨리 대답했다.
"아니요! 오늘은 반대로 하려고요. 제 뿌리색에 맞게 나머지 머리카락을 염색해 주세요!"
의아해하며 나와 잠깐 눈을 맞추는 선생님에게 밝게 웃어 보였다.
우리는 동년배로 머리 하는 날이면 시시콜콜 좋아하는 연예인 이야기며 공연 예매하느라 힘들었다는 둥 삶이 뭔지 신세한탄도 하고 서로 허리가 아프고 팔이 아프고 수다를 나누는 사이였다. 내가 싱글맘인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는 내가 왜 머리색을 밝은 갈색에서 검은색으로 바꾸는지 주절주절 설명을 늘어놓았다.
"선생님, 제가 부모님이랑 함께 8살 아들 키우잖아요."
"그렇죠, 아들 잘 크고 있죠?"
"네네, 그런데 선생님. 저 남자친구 생겼어요."
"엄마야! 진짜요?"
"남자친구랑 이야기하다가 진짜 제 머리색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냉큼 달려왔어요!"
2018년 여름을 기점으로 나는 진짜 내 머리카락 색 앞에 다시 마주했다. 오늘도 역시나 거울 앞에 서면 진짜 내 머리색을 바라본다. 그는 나의 진짜 모습을 꺼낼 수 있게 늘 세심하고, 다정하게, 천천히 나에게 말을 한다.
다른 사람 눈에 친절하게 보이고 싶어서 머리색을 바꾸는 수고도 애써 참아냈던 나는 이제 온전히 나에게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를 만나고부터......